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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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5    업데이트: 26-07-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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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내가 읽은 좋은 시(7) - 박숙이의 「장물 종재기 같이」
아트코리아 | 조회 27
장물 종재기 같이

박숙이

첫물은 사위도 안 준다는

애리애리한 봄 정구지 한 단을 사와가

이 친구 저 친구 생각하며 찌짐을 부친다

반죽이 잘 된 긴지 불판이 좋은 긴지

노릇노릇한 기, 팬을 한 손으로 잡고 휙 공중으로 던지니

을매나 잘 뒤집히는지

아따, 인생도 이리 한 번 후딱 뒤집히져 봤시면

종재기에 찍어 먹을 초장을 만드는데

어인 일로 장물 종재기 같이 생이 짜라빠진 친구가

퍼뜩 떠오르는 기라

전화를 걸어 뜨실 때 먹거러 퍼뜩 뛰어온나 카이

비도 오고 해서 재미로 점 백 원짜리 화투 치고 자빠졌다 카네

야야, 화투판 뒤집고 퍼뜩 온나 캐놓고

전화를 끊고 가마이 생각해 보이끼내

새끼대이처럼 밸밸 꼬인 니 인생도 마

전 뒤집듯, 화투판 뒤집듯,

확 뒤집어엎어 버렸으면 안 좋것나 이 문디 팔자야

짜라빠진 장물 종재기 같이 앞뒤가 희망 없이 까만기

생감자 씹은 듯 내 가심에 아려 와서는

찌짐 한 쪼가리 입에 뚝 띠 넣는데 고마

눈물을 뚝 뚝 뚝, 쏙 빼놓고 마는 기라

―『웃음이 파먹는 밥』(문학세계사, 2026)

<감상>

비가 오면 희한하게도 부침개 생각이 난다. 이 시의 주제는 친구 사이의 끈끈한 정, 즉 우정이다. 부추의 경상도 사투리가 정구지다. 정구지를 사와서 전(찌짐)을 부치면 남편이나 애인이나 자식의 입에 넣어줄 생각이 나야 마땅한데, 이 시의 화자는 운수가 사나워 영 인생이 안 풀리는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한다. 그랬더니 이 망할 년이 화투를 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판일랑 얼른 집어치우고 찌짐을 먹으러 오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처지가 여간 딱한 게 아니다. 자세한 사연은 시에 나오지 않는데 그 친구의 처지를 생각해보니 생감자 씹은 듯 가슴이 아려 와(실은 아주 써 입이 아려왔을 듯) 눈물을 뚝뚝뚝 흘리고 만다. 이런 친구라면 남의 편인 남편보다 낫다. 애인이 있다면 요구만 하면서 속 썩이는 애인보다 백 배 낫다. ‘종재기’는 ‘종지(작은 그릇)’의 사투리이고 ‘짜라빠지다’는 ‘낡다’의 사투리이다. ‘장물’은 사투리가 아니고 간장을 담그려고 소금을 탄 찬물이거나 간장을 탄 물이다. “장물 종재기 같이 생이 짜라빠진 친구”이니 매사 하나도 풀리는 게 없는 친구다. 이런 날 부추전을 해서 같이 먹자고 불렀더니 이년이 화투를 하고 있단다. 에라잇, 망할 년. 잘 났다 정말. 박숙이 시인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경상도 사투리가 사람을 쥑인다.



<시인 이력>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92년 상화시백일장 장원(대구문인협회 입회 특전),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99년 계간 문예지 《시안》으로 등단. 시집 『활짝』, 『하마터면 익을 뻔했네』를 냈으며, 대구문학상, 서정주문학상, 《대구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구문인대사전 편집위원. 2026년 대구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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