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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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46    업데이트: 21-11-04 13:00

효자 남편
아트코리아 | 조회 573

 효자 남편

- 박숙이-

  
그가 춤을 춘다. 초를 다투는 어머니 앞에서, 기억을 더듬거리는 영하의 어둠 앞에서, 하던 일을 내던지고 와 너울너울 춤춘다. 뭐 얻어걸릴 게 있다고, 아이비 덩굴처럼 벽 속까지 파고든 암 덩어리 앞에서, 어머니 웃으시라고, 한 번 더 어머니 눈 떠 보시라고, 장롱 속의 숫기 없는 바지저고리를 꺼내 입고서, 촛농 같은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늙은 아들이 학 되어 활개를 활짝 펼친다.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 아들이 춤추고 있잖아요. 어머니 장남 춤추는 모습 좋아하셨잖아요. 그래그래, 우리 장남 잘도 춤을 추는구나, 감은 눈으로 아들의 행위를 느끼면서, 그렁그렁 웃음 지으면서 고향 산천 어디 메쯤, 적막 속으로 추억 속으로 떠나가고 있는 어머니, 그 와중에도, 에미는 이 집 맏며느리야 하시며, 당신 피붙이 같은 물 날린 순금반지 하나를 이 손가락에 더듬더듬 끼워주신다. 

줄 거라고는 이거밖에 없구나, 시집와서 참 고생 많았었구나, 당신 떠나는 날 겨울 선산에 오를 적에, 지독시리 아끼느라 안 입고 깊이 넣어둔 두터운 빨간 내의 꼭 입고 오란다. 참, 바람 같던 모진 세월, 고부간의 묵은 정이 칡뿌리처럼 안으로 깊이 파고든 것을 느낀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어머니의 비명은 온 혈관을 타고 도는데, 엄마 밥! 학교에서 막 돌아온 당신의 끈인 장손이, 춤추는 제 아비와 피고름 짜고 있는 어미 등 뒤에서, 밥 달라던 그 말을 도로 꿀꺽 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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