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    업데이트: 22-06-03 11:33

언론&평론

주름의미학 작품평론
아트코리아 | 조회 234
주름의 미학 The Aesthetics of wrinkles ; 박선경 개인전
 
양 준 호 (미술사박사)
 
 
 
주름에 의미 있는 감성이 있다. ‘주름 잡는다’와 ‘주름진다’는 서로가 갖는 의미 차이가 크다. 주름이 지는 그 ‘주름’은 없어야 할 구김으로 생각을 한다. 시간은 머물지 않고 지나가고, 존재는 그대로 ‘머물렀어면’ 하는 상황으로 서로에 맞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는 것과 머무르는 것은 겹쳐지거나 주름을 이루어 많은 의미를 만든다. ‘주름진다’는 지나간 연륜의 흔적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아 변화한 모습을 관조하려는 심리도 있을 수 있다. 주름은 시간 속에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생물의 한계를 알려주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주름 잡는다’는 의미에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을 넘어서 자신의 의지를 만들어간다는 뜻으로 사용한 주름의 미학을 주장한다. 
작가는 주름의 감성으로 온전한 의미의 전면 회화(all of painting)에 들어섰다. 화면으로 넓은 광목을 사용한다. 화면을 바닥에 길고 넓게 펼쳐서 깔고 작업을 한다. 준비한 물감을 풀어 놓고 화면 속으로 들어간다. 화면이 자연스럽게 작가를 감싸는 모습이다. 화면 속에 직접 들어가면 눈으로 관찰하며 보던 세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물감을 뿌리고, 던지고, 밀고, 흩거나 휘저으며 화면 속에서 마음을 풀어간다. 화면 밖에서 대상을 화면에 구성하는 작업 방식과는 크게 구분이 된다. 자기 삶의 구조 속에서 작가만의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화면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드러난다. 화면 밖에서 바라본 것과 차이가 있다.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직접적이냐와 느슨한 일이냐, 자신이 관계한 일이냐와 관계가 없는 일이냐의 차이일 것이다. 자신이 포함이 되면 교감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작가의 내적 자유는 방식에서 일어나 예술 행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자유로운 모습이 예술의 힘이라고 공감하여 작업을 시작해서 그 자유로운 방식을 의논하거나, 찾고 교감한다. 자유로움 속에서 행위의 의미가 화면에 강하게 배여 진다. 자유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강한 책임의 관계를 보며 깨어 있어야 자기의 모습을 온전히 얻는다. 
우연한 매력으로 보이는 주름도, 의도하지 않게 자리 잡은 주름을 찾는데도 구상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제멋대로 만든 주름은 전체 속에서 편하게 자리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름을 막 잡으면 되기 보다 주름은 내적 형식이 필요하다. 그 형식이란 자기로부터 남에게 다가서는 것, 이런저런 자본의 가치관과 차별을 벗어나는 노력에 있다. 
작가는 작업 준비 과정을 자기 수양같이 한다. 긴 사색으로 모든 생명에 공감하고 그 생명의 귀중함에 다가서려고 채식 식단을 실천한다. 모든 관계가 연기(緣起)라는 것에 주목하고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살핀다. 살아있는 생명은 마음에 자리한다. 생명은 습생과 순환이다. 그 순환으로 이어지는 주름을 나타내려고 한다. 주름은 공간을 넓히는 방법이며 옆으로 아주 조금씩 맞물려 중심을 옮겨가면서 자기의 모습을 화면 속에 있을 때를 상상한다. 그리고 서로를 기억으로 연대할 힘을 준비하는 방식이 이 시대를 읽는 방식이다. 
식물의 삶은 환경에 잘 적응하여 상상할 수 없는 시간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식물 중 나무의 생명력은 튼튼하다. 그리고 척박한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뿌리내리는 일은 삶에 질서를 지우는 일이다. 하나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질서는 중요하다. 그 질서의 노력은 지금의 삶의 옥죄는 기술로서의 압박일 수 있다.
줄기 식물 형태의 생명력은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데 아래•위라는 질서를 넘어 옆으로 혹은 자신이 자리 잡은 모든 자리의 방향을 활용한다. 그래서 확대할 곳으로 더욱 민감하게 위치를 옮기면서 활동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생명의 의미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생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는 나무의 구조가 한 줄기에 한 뿌리 형태여서 깊이 있는 자신의 삶을 잘 유지하겠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삶은 변화하는 사회에서 가볍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주어진 환경에서 고정된 구조에서 어떻게라도 벗어나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공평한 표면을 의지하면서 삶을 압박하는 틀을 넘어서 서로를 의지해서 움직여 이동해야 한다. 삶의 모습을 확산하고 공감하는 연대 노력은 필요하다. 이러한 리좀 구조(rhizome structure)가 필요할 것이라는 들뢰즈의 사고처럼, 작가는 자신의 태도에 몰입하고 변화에서 연대를 찾는 작업 방식을 만들고 있다. 작품에서 질서 지우는 일을 넘어서서 서로가 감성으로 연대하는 방식이 어떠한 인간의 행위 방식이며, 삶은 풍성할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작품에 담으려는 노력이다.
평소 작업을 하는 작가의 내면은, 힘든 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가 간과하고 놓쳤던 서로에 대한 배려나 연대를 담은 작품 전시이다. 자연의 모습, 작가의 모습이 서로 결합하여 그 동안의 삶에서의 자신의 성장을 느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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