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업데이트: 21-12-14 13:49

법문 한자락

​아홉 번째 법문 한 자락...
관리자 | 조회 269
아홉 번째 법문 한 자락...
 
정선스님 求道記(구도기)
 
도 터지는 날 後篇(후편)
 

 
我有一卷經하니
 
不因紙墨成로다
 
展開無一字하니
 
常放大光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목탁송)
 

 
아유일권경하니
 
불인지묵성로다
 
전개무일자하니
 
상방대광명이로구나
 
..............................................................탁!탁!탁!(주장자)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펼쳐 열어 보니 한 글자도 없는데
 
항상 큰 광명을 놓는구나
 
.....................................................나무아미타불!(목탁송)
 

 

 
나는 은사 스님이 계시는 조실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은사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큰스님, 자금광이 육문에 비친다고 하였는데 자금광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너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다 해도 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좀 더 의단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거라.”
 
은사 스님은 그러고 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머리가 터지는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하여,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고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걸망을 지고 정처 없이 전국을 두루두루 구름처럼 떠돌며 행각을 시작하였습니다. 때로는 빈집에서, 때로는 산 위 정상에서 바위 밑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참선도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미타불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단연코 깨달아 자금광을 보겠다고 원을 세우며 마음의 각오를 다지며 수행 정진을 하였습니다.
 

 
또한 당대의 선지식(자운 큰스님, 서암 큰스님, 월산 큰스님 등)을 만나 수행의 見處(견처)를 점검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경계가 일어날 때 선지식을 만나 자문하고 참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식을 친견하더라도 진정한 깨달음은 자신이 이루는 것이지 누가 대신하여 이루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려 시대 나옹화상이 이르기를 “밥은 내가 먹어야 배가 부르지 남이 먹는다고 내 배가 부른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행각을 하고 선방을 다니면서 머리가 터져 나가는 듯한 괴로움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선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정진도 해보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백산에 있는 한 스님이 도인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고 돌다리를 지나 서너 시간을 들어가니 산속 양지바른 산 밑에 하나의 초막집이 보였습니다. 나는 단숨에 달려가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초막집에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이 산 지 오래되었는지 거미줄이 얼기설기 처져 있었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고 산짐승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습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내려가려고 해도 내려갈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고 처량한 생각이 드는데 “도가 무엇이길래 이 고생을 하는가?”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 가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순간이고 어쩔 수 없이 오늘 밤은 이곳에서 쉬기로 작정을 하고 대충 잠자리를 정리하고 앉아서 어두워지고 있는 산속의 정경을 바라보며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미타불이 어디에 계시는가?”
 
“자금광이 어디에서 비치는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고 정진을 계속하던 그때, 한 마리의 박쥐가 날아오더니 처마 밑에 있던 매미를 채어 가면서 초음파 소리를 질러 고막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면서 머릿속에서 섬광과 같이 일어나는 불빛을 보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안과 밖이 환해지는(內外明徹 내외명철) 것을 보았습니다. 한밤중인데도 바깥 경계가 훤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위가 환해지면서 밤과 낮의 경계가 육근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허망한 작용임을 깨달았습니다.
 

 
해 떨어져 어두운 고산의 계곡에서
 
섬광과도 같은 불빛을 보았네
 
적막한 산중은 칠흑같이 어둡건만
 
하늘 위 허공의 별들은 보석같이 빛나고
 
달은 깊은 산 푸른 봉우리에 오르는구나…
 

 
나는 태백산에서 육근이 청정하고 안팎이 밝아지는 깨달음을 얻고는 이 깨달음을 점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깨달음의 인가를 받기 위해 은사 스님이신 고암 큰스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때도 밤이 깊었습니다.
 
“큰스님 제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네가 깨달은 것을 내어 보아라.”
 
“이것이 제가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주먹을 앞으로 쥐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큰 스님은
 
“그것 말고 다른 것을 보여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래도 주먹을 더 불끈 쥐고 앞으로 내어 보였습니다.
 
“네가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미는데 손을 펴고 내미는 것이 옳으냐? 주먹을 쥐고 내미는 것이 옳으냐?”
 
“펴고 내미는 것도 옳고 주먹을 쥐고 내미는 것도 옳습니다.”
 
“그렇다면 주먹을 펴고 내미는 것도 옳지 않고, 주먹을 쥐고 내미는 것도 옳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일어서서 저 달을 손으로 꽉 잡았습니다.
 
"이것입니다."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큰 스님께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무언가 본 모양인데 일러라."
 
나는 큰 스님께 절을 하고 시구를 일러바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게송이 나왔습니다. 큰 스님의 인가 게송도 푸른 달빛 아래 活句(활구)를 치면서 저와의 법거량 문구로써 나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祕傳(비전) 중에 비전인지라 지금은 세상의 절 문중에 내어놓지 못한 점 이해 바랍니다. 혹시 시비와 시샘이 있을 수도 있기에 그러합니다.
 

 
큰스님과 저와의 법거량. 선 문구는 다음에 먼 훗날 언젠가 인연이 있을 때
 
세상에 제3탄 求道記編(구도기편)을 내어놓겠습니다.
 

 
要見本眞嚒아
 
尋不見 覓不見하니
 
十二時中遶身轉이로다
 
省得嚒!............................................................喝!
 

 
요견본진마아
 
심불견 멱불견하니
 
십이시중요신전이로다
 
성득마!
 

 
근본 眞如自性(진여자성)을 보고자 하는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나
 
하루종일 몸에 지니고 굴리고 있다.
 
알겠는가?
 

 
法身體若太虛空하며
 
性道元來總一同하도다
 
.....................................................나무아미타불!(목탁송)
 

 
법신체약태허공하며
 
성도원래총일동하도다
 

 
법신의 체는 태허공과 같으며
 
성품과 도 또한 원래가 하나이다
 

 
부처님 성도재일 법문
 
심허당 정 선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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