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업데이트: 21-12-14 13:49

법문 한자락

​여섯 번째 법문 한 자락...
관리자 | 조회 246
여섯 번째 법문 한 자락...
 
정선스님 發心記(발심기)
 
- 行者房(행자방) 下心(하심)은 나를 위해
 

 

 
이윽고 북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목어 소리가 나고 大鐘(대종)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또 다른 신선함으로 모든 마음이 평안하고 머리가 맑아지며 모든 번뇌가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잘못한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가고 부처님을 뵈오니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대종 소리가 끝나고 法堂(법당) 종소리가 내리더니 경쇠 소리에 맞춰 노전 스님의 청아한 염불 소리가 법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戒香 定香 蕙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光明雲臺 周徧法界 供養十方 無量 佛法僧
 

 
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나무아미타불!(목탁송)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 불법승
 

 
헌향진언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순식간에 마음이 몰입되면서 안과 밖이 한마음이 되고 무념, 무상, 무아의 경지를 맛보는 순간이었고, 번뇌가 없고 괴로움이 없는 여기가 바로 극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전생에도 이 자리에서 염불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와닿았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모두 처소로 돌아가 행자들은 경을 독경하고 시간이 되자 공양을 준비하기 위하여 공양간으로 갔었는데, 삼일 뒤부터는 삭발을 하고 저에게 주어진 소임이 공양미 씻는 일이었는데 선배 행자님이 시키는 대로 쌀을 씻고 소쿠리를 털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행자가 다가오더니
 
“행자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마 쌀이 몇 톨 떨어졌나 봅니다. 꾸중을 듣고 훈계하기를
 
“한 톨의 쌀은 농부가 흘린 한 방울의 결실이요 시주의 은혜인데 함부로 흘리면 어떻게 합니까? 떨어진 쌀을 모두 주워 먹으세요.” 그러더니 행자님은
 
“다음 생에 소가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나는 선배 행자가 시키는 대로 하수구에서 쌀을 주워 먹으니 온갖 생각과 망상이 들었습니다. 욱하는 생각이 불쑥 나오니 前生(전생)의 業(업)인가 봅니다. 공부하기 위하여 여기 왔지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해서 “과연 나는 여기서 있을 수 있을까 ? 화합할 수 있을까 ? ”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나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행자 방에서 일과를 참회하는 自恣懺悔(자자참회)를 하는데 自恣(자자)란 본래 冬安居(동안거)나 夏安居(하안거) 때 안거를 마친 대중들이 모여서 安居 期間(안거 기간) 동안 잘못된 부분을 참회하는 법회인데 행자 방에서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행자 여러분들이 경책을 받고 마지막으로 나를 호명하더니 낮에 쌀을 버린 것을 문제 삼아 죽비 삼배로 警責(경책)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런 소소한 문제로 경책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질 않았으나 금방 쓴웃음을 짓고는 머릿속으로 그 연유를 되뇌어 보았습니다.
 
잠시 후, 경을 가르치기 위하여 중강 스님이 들어와 自警文(자경문) 외우는 것을 점검하였습니다. 하루 세 줄씩 외우는데 나이 어린 우리 두 학생 행자도 학교 다닐 적에 한문 공부는 남다르게 잘하였는지라 잘 외워 바쳤습니다. 칭찬하는 행자도 있는 반면에 경책을 받은 행자님도 많았습니다. 자자 때 잘못된 일이나 중강 스님에게 지적당하는 이는 법당에서 백팔 배를 시키니 모두 잘할 수밖에 없지요.
 

 
며칠이 지나 잠을 청해도 오질 않아 뒤척이고 있으니 고향 생각도 나고 친구들 생각도 나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소리 없이 보름이 지나가는데 나이 어린 선배 행자가 다가와 묻기를
 
“행자님 아무리 생각해도 스님이 되기 위하여 입산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입산한 것입니까 ? ”
 
나는 말을 잘못하면 법당에서 백팔 배 내지는 삼천 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소리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럼 섭섭하지요. 저는 因緣法(인연법)을 깨달아 참 나를 깨닫고 부처가 되기 위하여 왔습니다.” 하고 큰소리치니
 
그 행자가
 
“그러시다면 내가 한번 부처가 되겠는지 근기를 시험해 보아야겠는데 잠깐 저리로 갑시다.“
 
그는 나를 데리고 石氷庫(석빙고)가 있는 창고 옆으로 데리고 가더니
 
“참 나를 알고자 왔다면, 부처가 되겠다면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내어 보시오.”
 
그의 위엄 가득한 소리에 내가 답을 못하고 있자 갑자기 나의 복부에 주먹 한 방이 날아왔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감정이 있었는지 그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불같은 성격에 가만히 있지 않지요. 어린 행자가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부처가 되려면 下心을 해야지 평소에 하심도 못 하면서 무슨 부처가 되겠다고 그럽니까? 참 나를 알고자 하면 하심부터 잘하시오.”
 
하면서 바람같이 사라졌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맞아 본 일이 없는데 어린 행자한테 맞으니 분하고 속도 상하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달래기 위하여 大寂光殿(대적광전)으로 가서 한없이 절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자 방에 써놓은 하심이라는 글이 지금 나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행자님이 아마 조사 스님의 후신인지 아주 위엄 있고 신심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이후 십여 일이 지나 어느 사이 방학이 거의 끝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향 생각과 학교 생각, 부모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친구에게
 
앞으로 이 생활을 계속할 건가를 물으니 나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구원병을 얻은 것처럼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가고 싶다. 그런데 돈도 없고 옷도 없는데 어떻게 갈지 생각해 보자.”고.....
 

 
행자 방에서 退房(퇴방) 할 때는 퇴방 식을 한다던데 당시에 행자님이 60여 분이 계셨는데 죽비로 한 대씩만 해도 60방을 맞아야 하니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야반에 도주하는 수밖에 없는데 돈도 없고 옷도 없어 고민이었지만 그래도 학교를 가야기 때문에 저녁 자자 시간에 원주스님과 반장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죽비 경책을 받는데
 
“중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야.” 하시면서 먼저 가신 행자 님보단 살살 경책을 내리시고 옷과 차비도 주셨습니다.
 
원주스님이
 
“출가는 장난삼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신중하게 생각하여 깨달음을 얻을 생각이 있으면 공부 마치고 다시 출가 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아마 여기 海印寺(해인사) 追憶(추억)이 오래 갈 것이라고 반장은 얘기하면서 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다시 학교 다닌다고 해서 행자들이 그래도 사정을 봐주었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걸어 나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행자들이 야반에 도주하는 일이 많았지요. 마을에 가서 차비 얻어 갔다는 얘기를 지나고 나서 많이 들었습니다. 우린 꾀가 없어 순진하게 이야기했죠.
 
다음날 우리는 일주문을 나오면서 해방감으로 인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불법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의 신선하고 아련한 향수와 같은 신비로운 것들이 항상 뇌리에 남아있어 훗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늘 아래 깊은 계곡 伽倻山海印寺(가야산해인사)에서
 
부처님 가르침과 極樂世界(극락세계)를 나는 보았네
 
오묘한 修行(수행)은 마음을 맑히는 단비와 같았고
 
玄妙(현묘)한 작용은 훗날 出家(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네
 

 

 
부처님 출가재일 법문
 
심허당 정 선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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