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업데이트: 21-12-14 13:49

법문 한자락

​네 번째 법문 한 자락...
관리자 | 조회 275
네 번째 법문 한 자락...
 
우리 몸속에 부처님이 계신다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着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시고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며 還至本處하사 飯飼訖 收衣鉢하시어 洗足已 敷座而座하시니라
 
.....................................................나무아미타불!(목탁송)
 
(금강경 제1 法會由因分 법회유인분)
 

 
이시에 세존이 식시에 착의지발하시고 입사위대성하사 걸식하시고 어기성중에
 
차제걸이하며 환지본처하사 반사흘 수의발하시어 세족이 부좌이좌하시니라
 

 
마침 세존께서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음식을 얻어먹었다. 그 성안에서 차례로 공양을 마치신 뒤 본 곳으로
 
돌아오시어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탁!탁!탁!(주장자)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총림에서는 큰방에서 조실스님 중심으로 종무 7직, 선방 스님과 학인스님이 다 함께 발우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판스님이 공양물을 돌리고 加飯(가반)을 하고 나면 공양게를 念誦(염송)하고 위로는 부처님으로부터 귀신들에게 이르기까지 헌식을 하고 공양게를 마친 다음, 조실스님이나 주지스님께서 자리를 펴고 앉으신 자리에서 간단한 한담 내지 수행의 見處(견처)를 말씀하시면 대중들은 다 같이 예를 갖춰 傾聽(경청)합니다.
 
때로는 오늘의 산중 공사를 논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시절이 참으로 행복했고 그곳이 바로 부처님이 건설하신 莊嚴 寂滅宮(장엄 적멸궁, 극락세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본문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엄격한 규율 속에서 威儀(위의)를 갖추고 법식과 禁制(금제)에 의해 수행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공양이지만 이 속(행, 주, 좌, 와, 어, 묵, 동, 정)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 신앙생활에 어떤 규범을 제시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잡아함경 걸식편에 나오는 것인데 역발상적인 생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느 날 부처님께서 공양하시기 위해 탁발을 나가셨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이웃 마을에 축제를 하는 날이어서 음식을 공양하시는 불자님이 마을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빈 발우를 들고 제자들과 함께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부처님을 바라본 마음속의 마귀가 “왜 밥을 전혀 얻지 못하는가?, 어떻게 온종일 굶을 수 있는가 ? , 다른 마을로 돌아가라!, 내가 음식을 얻도록 해주겠다.”
 
고 유혹했지만 부처님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지금 설령 음식을 얻지 못하였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그래도 이 시간이 즐겁다. 나는 法悅(법열)을 양식으로 공양을 삼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겁고 기쁘다.”라고 마귀와 싸워 마음의 평정을 얻었습니다.
 
차제 걸식은 탁발하는 집을 정해놓고 차례차례로 7가식(家食)으로 정해져 있기에 부잣집은 들르고 가난한 집은 건너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하냐 하면, 부잣집은 자비를 베푸는 복을 짓게 하고, 가난한 집도 베푸는 복을 지어 적선함으로써 다음 생에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인연을 맺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규율에 따르면, 한번 찾아간 집을 또 들르면 법에 어긋나서 사시에 공양하고 오후에는 금식하여야 합니다. 그 시절은 그랬습니다.
 

 
위 걸식 경에서 본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나 스님들이 때로는 탁발이 안 되기도 하여 굶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죄질이 아니라면 적당히 규율을 어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인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부처님이 계시니까요.
 
자신을 속일 수는 없지요. 눈으로 보는 것이나 귀로 듣는 것이나 마음 씀이나 그 작용은 業識(업식)에 따라야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눈도 다스려야 되겠으며 귀도 마음도, 그러니까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를 다스려야 되겠습니다.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어찌 입으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으며 행동과 마음을 함부로 쓸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천시하면 부처님도 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보면 입도 부처님 입이요, 눈도 부처님 눈이요, 마음에도 부처님이 있습니다.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 그 말을 새겨 보면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이 증명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은 작은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를 방치하면 精神的 淨潔性(정신적 정결성)이 마모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 자리에 앉으셔서 선정 삼매에 드셨는데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그때 부처님께서 무슨 話頭(화두)를 가지고 앉아 계셨을까?
 
산승은 여러분들에게 화두를 드립니다.
 

 
선정 삼매에 드셨던 뜻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 눈을 감고 결가부좌해서 부처님처럼 선정 삼매에 들어봅시다.
 
............................................................................................으악!
 

 
波亂月難現하니 室深燈更光하나니라
 
파난월난현하니 실심등갱광하나니라
 
.....................................................나무아미타불!(목탁송)
 

 
파도가 어지러우면 달이 나타나기 어렵고
 
밤이 길수록 등불은 더욱 밝아지도다.
 
...................탁! 탁! 탁!(주장자)
 

 
불기 2553년 8월 27일
 
해인사 도솔암 암주 심허당 정 선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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