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업데이트: 23-09-11 17:07

언론&평론

[작가의 눈] 창조를 짓는 파괴의 힘, 이세하의 예술혼
아트코리아 | 조회 121
조병준,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닮아 있으면서도 각기 다름이 경이롭다. 멈춰 있으면서도 서로 치달음이 일순간 경외다. 파괴, 그 몸짓으로 창작의 산물을 토해냈다. 영적 가치로 예술을 잇고 있는 인연의 모둠이 짙게 깔려 있다. 음색의 빛으로 몽실몽실 피어나는 한 인간의 고통과 행복의 흔적이 거기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미술 아니 더군다나 설치미술의 회화적 상상이 궁핍한 내가 바이올린을 타고 흐르는 ‘혼’을 내 어깨로 받으며 ‘행복’을 풀어놓기라도 하듯이 수사적 언어를 대동하고 개념적 물음에 이르게 된 건 순전히 작가 이세하의 힘이다. 고통을 덜어내고 행복을 쌓는 이세하의 예술혼을 담고 있는 ‘그 힘’이다.

그 힘은 파괴이자 창조다. 이세하는 그 창조적 파괴의 몸짓으로 서로들 인연을 쌓게 만들어 한 공간에 가둬놓았다. 공간에서 도망치려는 창작의 인연을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색에 실어 몸서리치도록 풀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몸짓으로 예술혼적 선율에서 널뛰며 춤을 추는 생명을 낳았다.

널뛰며 춤을 추는 생명을 이세하는 “나의 영혼은 편서풍”으로 명명하여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파괴인데 분명 창조인 이세하의 영혼을 가둬두고 있는 곳은 갤러리카페 ‘공감선유’다. 가둠의 미학 너머에 있는 대중의 발길을 이세하의 편서풍으로 이끄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고통과 행복의 중첩적 인연인 이세하의 영혼을 눈에 담고 어깨에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쯤 그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간에 갇힌 이세하의 힘이고 생명이자 영혼인 첼로 하나가 나를 압도했다. 분명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다. 어둠이 빛에 실려 몽글몽글 피어오르더니 회색빛으로 물든 문틈사이로 새어나가고 그 공간을 아르페지오네가 차지했다. 잿빛을 머금은 몽환적인 조명 탓이었을까. 1800년대로 훌쩍 건너간 나는 가난한 슈베르트가 쫓았던 음악적 세계를 상상했다. “기쁨도 평안함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간다.”던 슈베르트는 “슬픔은 또한 정신을 강하게 한다.”라며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단조를 작곡했을 것이다. 궁핍을, 시대에 대한 울분을 단조의 선율로 담아 불멸의 생명으로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다.

 

“작가 이세하의 창작 첼로나 바이올린군무의 함의를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에 중첩시킨 저 선율이 작가가 꿈꾸는 시간이고 자유가 아닐까”란 발칙한 상상력을 오롯하게 펼친 끝에 나는 폐쇄성을 거부하는 이세하의 예술혼이 담긴 생명을 하나씩 하나씩 세상으로 달고 나올 수가 있었다. 세상으로 달고 나온 그 생명을 여기저기 풀어놓으며 나는 이세하가 쌓고 있는 행복이 무엇일지 상상했다.

삶의 중년 즈음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그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이세하가 쌓고 있는 행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인데,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을 선율적 아다지오에 싣고 걸으며 음미하고 견줄 필요가 있다.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라고 단언하는 쇼펜하우어는 “너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흔들리는 삶의 중년에게 묻는데, 정작 그는 고통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철학자들이 행복에 관심을 가질 때, 쇼펜하우어는 고통에 매달리며 고독 속에서 행복에 이르는 영원한 시간과 자유를 찾고자 했다.

이세하의 작품들을 찬찬히 곱씹어보면서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을 갖다 대는 것은 오롯이 혼자 창작의 혼을 불사르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봄이다. 혼자의 시간만으로, 혼자의 자유만으로 쌓아가는 이세하의 행복을 헤아려봄이다. 창작행위를 통해서 불행의 선을 자르고, 불행의 담을 무너뜨리며 시간과 자유로 행복을 쌓아가는 이세하를 헤아려봄이다.

작가 이세하는 그렇게 인연을 쌓고 행복을 낳았다. 파괴함으로써 창작의 집에 이르는 여정인 이세하의 ‘나의 영혼은 편서풍’전(展)은 고독을 품은 자에게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행복 전시장이다. 영원한 시간을 선율에 태워 풀어놓은 이세하의 자유의 몸짓을 거기에 두고, 몽실몽실 피워냈던 이세하의 예술혼적 고통과 행복까지 거기에 고스란히 쌓아두고 마침내, 행복의 틀마저도 던지고 나온 작가 이세하는 시간과 자유의 선을 타고 훨훨 날아갔다.

 

추기(追記),

작가 이세하는 부안 태생으로 오랫동안 발로 누비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던 여행지에서 돌아와 현재는 부안군 백산면의 작업실에서 시간과 자유와 자연의 조화로움을 대동한 채, 행복의 틀을 새로 짜는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문학에 고전음악을 맘껏 비벼낸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행복에 이를 것만 같은 안도감이 밀려온다. 아마도 타고난 작가의 문학적 예술적 성정이 그 바탕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서울과 대구, 전주와 익산, 대전과 군산 등지의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작품전을 열었으며, 그의 작품에 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대중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에 퍼뜨려 나가고 있다.

-조병준,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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