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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인형소개

[스크랩] 닥종이인형 작가 김영희의<사과나무 꿈나들이>
아트코리아 | 조회 1,330
 
김병희 <사과나무 꿈나들이>/ 마산문화문고 제공
 
닥종이인형 작가 김영희의<사과나무 꿈나들이>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꽃비 속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속삭이고 싶었습니다./ 내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나는 다섯 아이를 세상에 내보냈고, 그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두 번의 어린 시절을 보낸 셈입니다."
올해 회갑을 맞은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60). 그는 나이 육순에 접어들면서도 "조곤조곤, 소곤소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대체 그 나이에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많이 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 어릴 적 할머니들처럼 호랑이 담배 피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가 되며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조곤조곤 하고 싶다는 것일까.
아니다. 김영희는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행복의 탑을 쌓아 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꽃비의 엷은 가지럽힘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함으로 내 옆 친구를 바라보는 눈길, 그 따뜻한 눈길 속에 스며드는 행복을 지금까지 겪어온 세상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그런 이야기를.
"할매야! 재미난 이바구 좀 해도고."
나는 할머니를 조릅니다.
"오늘은 이 할매가 저바구를 할란다."
"아니대이. 이바구 좀 해도고."
나는 이야기 보따리를 흔들듯 할머니의 치마를 슬슬 잡아당깁니다.
"그라몬 이바구 저바구 다 해보자."
나는 할머니가 나와 말줄다리기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또 조릅니다.
"이바구만 해돌라 캤는디 무슨 딴 저바구는?"
"이 할매는 똑 잘라서 이바구만 못 하는 성미라 세상 돌아가는 이바구를 두리두리 돌려 저바구도 섞어 할란다. 옛날 옛적에......"
('매화골 이야기' 몇 토막)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닥종이 작가 김영희가 닥종이 인형을 소재로 한 에세이집 <사과나무 꿈나들이>(샘터)를 펴냈다. 이 책은 표제가 된 '사과나무 꿈나들이'를 비롯한 '천사의 한쪽 날개', '아빠의 꽃씨', '엄마의 장원급제' 등 모두 4부에 23편의 정감 어린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매미채를 든 아이

이 책에서 닥종이 작가 김영희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이바구 저바구' 다하는 할매로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마치 오래 묵은 민담처럼 조곤조곤 들려준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닥종이 인형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김영희 할매의 이바구 저바구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에 풍덩 빠져든다.
"할매야!"
"와?"
"이바구 좀 해도고."
"그러제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할매는 맨날 옛날 옛날 옛날이라네."
"그라문, 요새 요새 요샛적으로 바까 보까?"
할머니는 한 번도 내 말을 못 받아넘긴 적이 없습니다.
"요새 요새 요샛적에......"
숲 속 깊은 곳에서 새들의 노래 자랑 대회가 있었습니다.
대회를 닷새 앞둔 날부터 각처에서 내노라 하는 목청 좋은 새들이 줄줄이 대회장이 있는 숲속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는 가운데, 벌써부터 꾀꼬리의 목청이 가장 좋다는 평이 온 숲에 퍼졌습니다.
('뻐꾸기와 꾀꼬리의 노래 자랑' 몇 토막)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노래를 못하는 부엉이가 꾀꼬리에게 핀잔을 먹은 뒤 심사위원장인 황새에게 모기를 뇌물로 바쳐 노래를 잘 부르는 꾀꼬리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하자, 이에 억울한 꾀꼬리가 다음 노래자랑대회에서 심사위원장인 기러기에게 부엉이처럼 모기를 뇌물로 주었다가 탈락한다는 내용이다.
탈락 이유는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면 뇌물을 쓰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개성과 예술성을 열심히 닦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뇌물을 바칠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꾀꼬리는 뇌물을 바치지 않고 노래를 불러도 아무런 하자 없는 일등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제목이 참 이상하다. 이 내용만으로 볼 때는 제목이 '부엉이와 꾀꼬리의 노래 자랑'이 되었어야 하는 데도 분명 제목은 '뻐꾸기와 꾀꼬리의 노래 자랑'으로 되어 있다. 편집을 하다가 순간적인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더 심오한 뜻이 '뻐꾸기'란 말속에 숨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내 사랑하는 경식이가 작은 꽃씨를 부풀려 큰 꽃밭을 만드는 걸 보면 훌륭한 마술사 같아. 작은 것을 크게 키우는 힘과 끈기를 지닌 경식이를 보고 아빠는 감동했단다. 경식이는 훌륭하고 힘차게 아빠가 없는 자리를 메우며 잘 지낼 것 같아.
나는 편지를 읽고,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봉투에서 꽃씨를 털어 부드러운 흙 속에 묻었습니다. 머지않은 어느 날 꽃들이 피고, 그러면 아빠는 늘 꽃밭에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빠가 마지막으로 보낸 꽃씨들이 어떤 꽃을 피울까 하고 호기심에 부풀어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갈 것입니다.
('아빠의 꽃씨' 몇 토막)
이 글은 배를 타는 선장인 아빠가 이국의 항구에 도착하여 항구에 핀 들꽃들의 꽃씨를 털어 편지와 함께 아들에게 보낸다는 내용이다. 그때부터 아들은 그 꽃씨를 심으면서 무슨 꽃이 필까 궁금해 하다가 마침내 색색으로 피어나는 그 꽃들에게서 아빠의 음성을 들으며 아빠를 기다린다.
 
 
그런 어느날, 모처럼 휴가를 나온 아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먼바다로 떠난다. 아들은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펑펑 운다. 그런 어느 가을날, 아빠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한 줌의 재로 변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아들은 아빠가 마지막으로 쓴 편지와 꽃씨를 받는다.
아빠가 보낸 꽃씨를 심으며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그리고 그 꽃씨가 싹을 틔워 마침내 꽃을 피우면 그 꽃을 바라보며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아이. 이 글을 읽고 있으면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아빠가 없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그래. 역시 김영희는 '아이 잘 만드는 여자'임에 틀림없다. 또한 잘 만들어 낸 그 아이들에게 이제는 이야기 잘 만드는 할매가 되어 그 아이들을 더욱 풍성한 감성과 용기로 넘쳐나게 만든다. 그래. 어쩌면 그의 닥종이 인형들은 아빠 잃은 경식이가 심어둔 그 꽃씨가 피워내는 희망의 꽃인지도 모른다.
둥글고 넓적한 얼굴, 통통하고 짧은 다리, 실처럼 작은 눈 등 전형적인 우리나라 아이들의 모습을 정감있게 빚어내는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의 <사과나무 꿈나들이>는 '이야기 잘 만드는 여자' 김영희가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는 닥종이 인형 같은 그런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은 김영희가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옛날 옛날 한 옛날 이야기이기도 하고, 김영희 스스로 겪었던 요새 요새 요샛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영희는 먼지가 덕지덕지 낀 추억 같은 그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환상과 현실의 공통분모를 찾아준다.
한편, 지난 해 17일 첫 테이프를 끊은 '김영희 닥종이 인형전' 이 오는 25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2월15일까지 연장전시 결정!) 이 전시회에 가면 <사과나무 꿈나들이>에 나오는 여러 가지 닥종이 인형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닥종이 작가 김영희는 누구인가?    
5살 때부터 닥종이 예술에 빠져들어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는 1944년 해주에서 태어나 독일을 비롯한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지금까지 60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퍼포먼스를 가져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잘 알려진 예술가로 평가되고 있다.
5살 때부터 한지를 물들이고, 접고, 붙이며 닥종이 예술의 독창적인 길을 걸어온 김영희의 닥종이 인형에는 작가 자신의 60년 인생이 녹아 있으며, 한국 전통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수필집으로는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믠헨의 노란 민들레><밤새 훌적 크는 아이들><눈화장만 하는 아이><눈이 작은 아이들><책 읽어주는 엄마>가 있으며, 장편소설 <발끝에서 손끝까지>를 펴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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