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    업데이트: 24-04-26 09:14

평론

Because I love you - 전창운(화가, 서울예술대학 명예교수)
관리자 | 조회 785
Because I love you
 

내게 이름 석 자만 떠올려도 기분 좋은 사람 중에는 박길자선생이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수수해서 좋습니다.
마음 씀씀이나 차림새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따라 다니면서 맡고 싶습니다.
인사동이나 어쩌다 야외스케치 길에서 만나도 언제나 집안에 오래된 가구를 만지듯 편안함이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 동네에 이웃해서 살았으면 딱 좋을 마음씨 넉넉한 아주머니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화우는 그를 보고 '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해 어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더 좋은 별명은 없을까 나는 연구 중입니다.
최근 그의 머리 패션을 보고 나는 크게 웃은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에게 잘 어울리고 좋아서였습니다.
머리를 팔레트에 팍 박았다 놓았다나, 보랏빛 브리지에 묶어 올린 뒷머리 채는 영락없는 마오리족 사촌으로 본다면 큰 결례는 아닐는지요.
어쨌든 수수함 때문인지 구수한 맛 때문인지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붙습니다.
몸에 커다란 자석을 달고 다니는가 봅니다.
 
박길자선생은 확실히 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몇 해 전 봄철인가요. 화우 일행과 함께 팔당 쪽으로 야외스케치를 나갔었을 때였습니다.
비는 계속내리고 모두는 식당 안에 들어서 그리는 둥 하는데 박길자선생은 그 집 창호지 문에 진달래꽃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에만 매달려 있을 그 때에 그는 그 집 문짝에 필묵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그때 보여준 여우자적하고 넉넉함이란 사임당 신여인 보다는 한 수 위로 놓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박길자선생을 호박잎에 비유해 보고 싶습니다.
무성히 뻗어나가는 호박잎을 보면서 둥글고도 커다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도 상상해 보지만 그에 앞서 호박잎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내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야겠습니다.
바로 그 초록빛이 박길자선생 같다는 생각입니다.
연둣빛 여린 잎으로 시작해서 짙푸른 초록을 지닌 큰 잎으로 한 여름 때악볕과 맞서 오는 일이 오직 커다란 호박을 만들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누런 떡잎으로 슬어져가는 과정은 영락없는 인생의 행로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얼굴 없는 여인으로 사셨던 우리들 고향의 어머니와 다를 바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 이것은 박길자선생이 오늘 창작의 길에서 창상(創傷)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과도 같다 하겠습니다.
나는 이번 전시에 내놓을 그의 작품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옥수수, 고즈넉한 농가, 바다풍경 등 실경산수의 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정받고 싶은 필요성이랄까,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랄까, 화면을 빈틈없이 채워나가야 안심이 되는 작업으로부터 서서히 그 틀을 벗어나려는 강한 충동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에너지입니다. 창상의 아픈 흔적이 피 튀기듯 보였습니다.
결코 여백이라고 보아서는 아니 될 여유의 미학이라고 보아야 좋을 새로운 공간 설정을 과감히 열어가고 있는 것을 속 시원히 보았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실경수묵담채로부터 서서히 진경산수로 향하는 그의 몸태질이었습니다.
전경을 통해 후경의 환상을 거머쥐는 예술의 진수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보아 기분 좋았습니다.
건물의 피뢰침처럼 가끔 그림 속에서 작고도 희미하게 교회가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떤 은유에서 일까요.
늘 이웃과 사랑으로 함께 하며 그림 달란트를 통해 세상을 환하게 하라는 은총과 책임의 인식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섯 번째 여는 그림 잔치에 구름처럼 몰려올 구경꾼 위에 하나님의 크신 영광의 빛이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박길자선생을 만드시고 그의 그림은 당신이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이것이 바로 '보시기에 좋았다' (God saw all that he made, It was very good)
박길자선생의 호박잎 같은 수수함은 창상을 견뎌온 전사(戰士)의 위장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듭 여섯 번째 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
 
전 창 운 (화가, 서울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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