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    업데이트: 22-12-20 09:50

언론

바람소리까지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는 박길자 화백_오마이뉴스(2009.11)
관리자 | 조회 1,834

바람소리까지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는 박길자 화백

동서양을 넘나드는 실험과 파격이 아름다운 동양화가



지난 10월 하순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화 구상회'의 정기전시회를 보기 위해 일찍 퇴근을 하여 그림 구경을 했다.



구상작가들의 모임이라 주로 산수화가 많고, 정물과 인물화가 약간이 있었다. 오래된 그림의 요법인 남종화나 북종화, 협여법이나 점여법 등이 사용된 고풍스러운 그림에서부터,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비구상에 가까운 작품도 여러 점 나와 있었다.

300점이나 되는 작품을 전부 볼 시간이 없어서, 잠깐잠깐 보면서 급하게 눈길을 오갔지만,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시장 중간에 걸린 동양화가 박길자 선생의 작품에서는 잠시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동양화 같지도 한국화 같지도 않은 느낌에 구상과 비구상의 구분도 거의 불가능한 작품, 전통적인 수묵담채의 기법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서양화가들이 많이 쓰는 아크릴 물감을 쓴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동양화적 필법과 서양화적 묘법이 절묘하게 조화된 그림이었다.




처음엔 어느 젊은 작가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시도록을 살펴보니 '한국화 구상회 회장 박길자'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아니! 구상회 회장의 작품이라면 보통 50~60대 중견작가의 작품이라는 말인데?' 참 의아했다.

전체적으로 자연 풍경을 담은 그의 작품은 파스텔 톤에 녹색과 하늘빛이 나는 청색을 많이 쓴 것이 밝고 화사했다. 작가가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도록엔 대전출신으로 개인전 5회, 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토요화가회 운영위원, 한국회 구상회 회장이라고 되어있었다. 전업 작가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중견작가다.



기존의 동양화의 틀을 깨고 있고, 색감이나 구성, 그림을 그리는 방식 등이 이렇게 파격적인데 구상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전업 작가라?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있어, 갤러리에 "박 화백을 뵐 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화랑 측에서는 "강동구 길동의 작업실로 방문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다"며, "전화 연락을 한번 해" 보란다. 그래서 나는 전화로 방문 약속을 잡았고, 짬이 잘 나지 않아 한 달이나 지나 지난 19일(목) 퇴근길에 박 화백의 작업실을 찾았다.

50대 중후반으로 되어 보이는 박 화백은 생각보다 젊고 미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답게 사방이 온통 액자로 장식되어 있었고, 간혹은 타인의 작품도 몇 점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급갤러리를 연상하게 했다.



동양화가다운 정결한 분위기에 깔끔한 작업실에는 그리다만 작품이 여러 점 있었고, 나는 1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지난 시기의 도록을 3개 정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전시회 무렵에 언론과 한 인터뷰 기사며, 단신기사도 읽어 보았다.

그림은 전반적으로 밝은 녹색과 투명한 파란색이 조화를 이룬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많아 좋았다. 도록도 100쪽이 넘는 장수에 차별화된 상급의 종이를 사용하여 고급스럽게 만들었고, 미술평론도 대가의 평을 받아 영문으로 번역까지 하여 외국인이 보기에도 편리하게 만든 것이, 이미 세계적으로 작품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의 도록을 살펴보면서 영문과 한글이 함께 쓰인 평론과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구분이 모호하고, 수묵화인지 아크릴 그림인지도 경계가 없는 것이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좋을 것 은 작품에, 마케팅 전략까지도 알차게 준비된 프로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작가에게서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보고,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의지도 배울 수 있었다. 보통 20~30년 전 자신이 처음 그림을 공부할 무렵의 습관과 작품 태도에 안주하는 작가들이 아직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중년 작가의 남다른 파격미가 느껴졌다.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수묵의 농담변화에 따른 공간적인 깊이를 중시함으로써 선묘중심의 전통적인 화법과 차별화된 산수화가 가능하게 된 것 같다. 공간적인 깊이를 중시한 그의 화법은 전래의 삼원법과는 확연히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전통과 현대, 형상과 비형상, 구상과 추상, 수묵과 채색이 기존의 질서를 해체시키고 있지만 안정적이다. 어쩌면 이러한 다양성과 특이함이 작품에서는 일관되는 통일성으로 나타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선구적인 힘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동양화라는 것이 자연의 틀을 멀리할 수 없는 작품들이기에 그의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철학적 관념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작품 하나하나에는 가슴 속에서 뿜어나는 열정과 감동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사물에 대한 관찰과 표현도 철저히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화단에서 기린아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누구에게나 보기 좋은 그림이면 잘 그린 그림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그림은 한 결 같이 보기에 좋고, 자연의 바람소리까지 하나 가득 담은 것들이라 마음을 편하게 한다.



나는 그의 작품 앞에서 한국화나 동양화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혁파한 독특한 미술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뭇잎이 전부 떨어진 감나무에서 붉은 감을 멀리서 발견하고 날아드는 까치처럼 나도 그의 그림 속에 둥지를 틀고 싶어졌다.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실험과 파격이 있는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든다. 바람소리까지 한 아름 품고 있는 자연을 그대로 닮은 그의 풍경화를 가지고 싶어졌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6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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