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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뉴시스아이즈 선정 '이 주일의 화가' - 손만식 2008-03-18
아트코리아 | 조회 1,149


【서울=뉴시스】

※이 기사는 국내 유일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74호(3월24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격렬하게 소들이 싸우고 있다. 육중한 몸을 부딪치며 박투를 벌이고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나라 재래시장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소 싸움의 모습이다. 그 소 싸움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작가가 손만식이다.

손만식의 고향이자 주거지가 경북 청도이다. 청도는 바로 그 소싸움 경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어려서부터 장날만 되면 소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보아온 손만식의 주요 화두가 소싸움인 것은 당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래적인 우리나라의 소, 순박하고 우직한 것 같으면서도 싸움에 임해서는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용맹을 그는 사실감 넘치는 필치로 표현해낸다.

그의 소는 화려하지도 날렵하지도 않다. 혼신으로 서로 부딪치는 정공법만 알고 있을 뿐이다. 기교나 잔 재주가 필요 없는 순수한 힘의 대결, 어찌 보면 참으로 정직한 싸움이다. 그 점은 손만식 작가 자신과도 오버랩 된다. 그는 그만큼 그림의 주제인 소를 닮은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그렇다. 등장하는 소처럼 그는 순수한 심성과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작업 역시 그렇다. 어찌 보면 등장하는 소는 단순한 소가 아닐지 모른다. 그 소들은 의인화된 대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앞 뒤를 돌아보지 않는, 어쩌면 지금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인간상을 그는 대상을 통하여 찾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소에게도 감정과 기분이 있다. 소 울음을 들어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비감스러운지 느꼈을 것이다. 겁 먹은 소, 화가 난 소, 고집을 부리는 소, 두려움에 떠는 소,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하는 소, 어쩌면 소 역시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만식의 소싸움을 보면 생존을 위하여 치열하게 분투하는 인간을 떠올린다. 그 소에게도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있다. 마치 그것은 인생의 상징적 축약도이다. 물론 손만식은 처음부터 그런 비약적 논리로 소를 그린 건 아닐 것이다. 연륜을 더 하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되면서 그의 그림 역시 어떤 상징의 승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손만식은 소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다. 정물, 과일, 풍경 그림에도 능하다. 특히 감 그림과 호박 그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잘 그린다. 지난 1월 LA아트페어에서도 그의 감 그림은 비싼 값으로 미국인들에게 팔렸다. 그것도 많은 경쟁자들을 만들면서 말이다.

그런 범주에서 본다면 손만식은 사실적 자연주의 작가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자연주의의 정공법을 우선한 것이긴 하지만 자기만의 독창적 색감과 방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싸우는 소'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배면의 색감이나 처리가 현대회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드러내고 있다.

미니멀한 색감 처리, 심의적인 자연의 색깔, 현대적 조형의 배경에 사실적 대상인 소가 등장하는 것이 손만식 그림의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구상회화이면서도 현대적 조형성을 획득하고 있다.

감 그림이나 다른 과일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이 정밀한 그림들은 극사실주의와 맥이 닿아 있지만 그 배면의 구성은 또 다른 회화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민화나 벽화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감 그림이나 다른 과일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이 정밀한 그림들은 극사실주의와 맥이 닿아 있지만 그 배면의 구성은 또 다른 회화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민화나 벽화의 느낌이 오버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전적인 느낌보다는 현대 조형의 양식에 더 가까운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이 손만식의 작가적 재능이다. 물론 이런 재능을 보이기 위해선 부단한 실험과 연마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구상작가 누구나 대상으로 삼는 것들을 남 다르게, 그리고 현대적 미감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자기만의 독창적 어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그림은 잘 그렸다는 경지를 넘어 회화로서의 높은 품격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상하이, LA아트페어, 홍콩 등의 국제아트페어에서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까닭이라고 보여진다. 흥미를 자아내고, 몇 번이고 보게 하고, 소유하게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손만식의 그림이 그러하다.

이런 그림들이 많이 나올수록 한국구상미술의 침체가 걷혀지고 구상미술의 새로운 태동이 보여질 것이다.

류석우 미술평론가•미술시대 주간 misool5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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