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    업데이트: 13-09-24 10:16

언론 평론

소의 정공법, 정치인들도 배우소[한겨례08'12.31]
손만식 | 조회 1,163

소의 정공법, 정치인들도 배우소


‘청도 소싸움’ 화가 손만식씨

 

화가 손만식(44·사진)씨의 별명은 ‘소만식’이다. 만 12년 동안 주로 소만 그려왔기 때문이다.

“이겨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지고 풀이 죽은 소들의 표정이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소들에게서 평생 자식을 위해 우직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도 보았죠.” 오는 7일까지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동료작가 15명과 함께 소 그림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열고 있는 그가 소에 빠지게 된 이유다.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소싸움으로 유명한 고향 경북 청도로 귀향한 뒤, 주로 어머니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리고 운명처럼 소를 만났다. 우연히 찾아간 소싸움장에서 온순하게만 생각했던 소가 보이는 뜻밖의 투지와 격렬한 힘에 매료된 것이다.

1996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소 그림은 이제 200점을 넘었다. 초대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그가 연 소 그림 전시회는 모두 16차례다. 소의 근육과 골격을 살리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그리며 쌓은 인물화 실력이 큰 도움이 됐다.

소싸움이 끝난 뒤 좀더 가까이서 소를 관찰하려다 소뿔에 받힐 뻔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손씨는 “자기보다 300㎏ 더 나가는 거대한 일본 소와 맞서 끝내 이겨낸 싸움소의 신화 ‘번개’의 당당한 기품은 지금도 그립다”고 회상했다.

손씨는 “싸움소 그림은 팔기가 어렵지만 생명력과 투지가 없는 정적인 그림은 흥미를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돈 안 되는 소 그림을 10여년째 붙잡고 있는 그의 고집도 황소를 닮은 셈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조명받는 것 유행 타는 걸 좋아하지만, 묵묵히 자기 주변의 것, 우리의 것을 지키는 이도 필요하지 않느냐”며 웃었다.

손씨는 “소가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싸움소가 달리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며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새해에는 소처럼 꾀부리지 말고 정공법으로 맞서자”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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