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    업데이트: 13-09-24 10:16

언론 평론

생생한 현장성의 표현을 통한 고향의 기록
아트코리아 | 조회 996
손만식 Son, Man Sik

생생한 현장성의 표현을 통한 고향의 기록

●● -손만식의 작품세계-

오세권 (미술평론가)

오늘날을 전자 복제의 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 미술문화의 방향은 재료의 탐색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표현 재료를 이용하여 작품으로 생산하고, 그 생산 된 작품을 통하여 대중들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인하여 오늘날 미술 표현 재료로서 이용되는 것이 '사진'이나 '영상'이다. 이는 오늘과 같은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는 현실은 '속도' 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실을 포착하여 표현하기에는 사진이나 영상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이 장소나 시기에 상관없이 작품을 복제하여 동시에 접할 수 있는 표현매체로서 그 효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주위에서는 전통적인 페인팅 표현 방법으로 주변의 정서를 탐구하고, 구체적인 형상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세계에 매진하느 작가들도 많다. 물론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전자 복제 시대의 전위적 미술문화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은 틀림없다.

우리의 전통은 자연이나 주변과의 투쟁 보다는 친화 속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관계성은 미술문화에 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보여지고 있는 자연 친화적이고 주변성을 그려내는 페인팅 작품 들을 두고 동시대성을 대입시켜 무조건 폄하시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곧 동시대성 속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에서 나타나는 차이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만식의 작품세계는 자신으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과의 친화성에서 출발한다. 그가 현재 살 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 경상북도 '청도'이고, 청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과 친화하면서 작품생활 을 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손만식의 작품에서는 '소' 그림의 주제가 많이 나타난다. 청도 지역에 살 면서 유명한 청도의 소싸움을 직접보고 사생하여 표현한 것이 소 중심의 작품들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소의 표현은 단순히 동물을 표현하는 그림을 넘어서는 현장감과 생동감이 담져져 있다. 그것은 소싸움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가까이 접하고 매년 그 행사들을 보아왔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소를 키우는 과정들을 눈으로 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소는 일회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소그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찰 하고 같이 생활한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는 그의 여섯 번째 개인전까지 일관성 있게 계속 소 그림만 을 그려온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소 그림에는 손만식 자신의 투철한 고향에 대한 애향정신이 함께 한다. 고향 청도에서의 소싸움에 대한 기록성을 의무감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태어 나 자라오면서 고향에 대한 추억과 아름다움 그리고 오늘까지 이어지는 전통을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소 그림은 생생한 현장성이 바탕된다. 서로 엉겨서 힘겨루기를 하는 소,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능력을 탐색해 보는 소들, 상대편 허점을 파고드는 소들,...그러한 소싸움과 소들의 긴장된 표정 속에서 주변 관람객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소싸움 속에서도 승리와 패배, 기쁨과 슬픔, ... 그러한 현장성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 그림에 대하여 그는 "소는 우리 민족의 수 많은 사건과 세월을 함께 한 역사일 것이다. 나의 작업은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의 바탕으로 싸움소를 통해 우리 민족의 힘과 기상 그리고 희망을 적절한 조형언어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소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는 부담스러운 요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소에 관한 한 이중섭의 신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신화를 넘어서는 소 그림을 그린다면 인정 받는 작가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소를 그리는 이중섭 아류의 작가로 전락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실상 많은 작가들이 소가 작품의 중요한 전통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소를 중심으로한 단독 소재를 잘 그리지 않는다.

이중섭이 표현한 소와 손만식이 표현한 소가 시각적인 특성으로 보더라도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중섭의 소가 표현파적이고, 야수파적인 것에 비하여 손만식의 소는 사실적이며 투우장에서 볼 수 있는 현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만식은 이중섭의 신화를 앞에 두고 그 만큼 부담 을 안고 작품에 임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손만식 자신도 "이중섭, 위대한 화가, 존 경하는 화가, 그 분이 그린 소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 어쩌면 그 분의 명성에 눌려 한낱 아류작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2000년 개인전 카탈로그)라고 말하고 있어 이르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손만식의 '싸우는 소' 연작에서 '소'를 통하여 나타나는 인간의 상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대를 향하여 울부짖는 소, 두려움에 싸여 있는 소, 어깨에 힘을 가득 주고 있는 소, 상대 소와 싸움을 통하여 투지를 불태우는 소, 푸른 풀밭 위 맑은 하늘 아래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소, 시골 노인과 함께 있는 소, ... 등 다양한 소의 표정을 통하여 인간의 삶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손만식의 작품세계는 현재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직접 눈으로 본 소재를 선택 하여 작품을 제작하였기에 사실상 현장성을 바탕으로한 생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손만식은 애향의 기록적인 표현에서 그 폭을 넓혀 소싸움 뿐 아니라, 주변 고향인들의 삶에도 애착을 가지고 친화적인 표현으로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더욱 생생한 현장성과 사실성을 위한 표현 방법은 계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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