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6    업데이트: 23-01-25 09:13

칼럼-6

[이태수 특별기고] 곡선과 여백, 둥긂_ 경북신문 / 2022.11.23
아트코리아 | 조회 449
곡선과 여백, 둥긂

   사람은 아름다움을 꿈꾸고 추구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꽃은 생명의 절정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우므로 좋아한다. 어원(beauty)이 훌륭한, 우아한, 고결한, 돋보이는 등의 의미를 거느리듯 어느 모로나 좋다는 뜻이다.

   동양 사람들은 최고의 미(美)와 최고의 선(善)이 일치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맹자(孟子)는 인간의 마음에 지닌 선을 충실하게 하는 게 곧 미라고 여겼다. 서양의 소크라테스도 미를 선과 같이 어떤 사물의 유용성 여부나 목적에 대한 적합성 여부에 따라 정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은은하게 안에서 풍겨 나오는 멋과 자연스러움에 있다. 특히 자연미가 바로 한국의 미이자 그 뿌리라 할 수 있으며, 위압하지 않고 부드럽고 너그럽게 슬며시 끌어당기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화려하기보다 담백하고 단순하며 간결하면서도 품위가 있고 고아(高雅)하다.

   한국적인 미는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곡선(曲線)과 비어 있듯 비어 있지 않은 여백(餘白)의 어우러짐, 틔어 오르기보다는 가라앉거나 고이는 듯한 온화함, 절도 있는 억제(절제)와 ‘말 없는 말’(침묵) 등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색이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산들을 보면 둥그스름하며, 그 줄기들은 완만하게 중첩되고, 손을 잡거나 어깨를 겯듯이 어우러진다. 어쩌다 가파른 산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하늘과 닿으며 만드는 곡선들도 부드러우며, 그 곡선들이 겹치면서 빚어내는 너그러움도 정겹다.
 
  산에 올라 보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자락이나 중턱에는 사찰이 고즈넉하게 들어앉아 있으며, 계곡의 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게 마련이다. 어릴 적의 기억이지만, 야트막한 산에 올라 굽어보면 산의 형상을 닮은 초가집들이 편안하게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있고, 기와집 지붕들도 추녀가 버선코처럼 반달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적인 미를 음미해 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의 풀들과 나무,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들, 가을이면 어김없이 산을 물들이는 단풍들도 정겹기 그지없다. 꽃이든 단풍이든 내세우기보다는 뭔가 안으로 다소곳하게 절제하고 있는 겸손 그 자체이면서 사람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느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미는 선(線)으로 치면 모두가 완만한 곡선이다. 산을 닮은 무덤들도 여기저기 서로 끌어당기듯이 자리 잡고 있으며, 멧새들은 하늘에 이따금 포물선을 그리면서 지저귀고, 하늘의 구름들도 나뭇가지에 매달리다가 스르르 미끄러지거나 느릿느릿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곡선과 짝을 이루는 여백은 한국적인 미를 크게 강화하는 ‘말 없는 말’로, 되레 말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더 아름답게 보완하고, 의미망을 확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숙한 시인들이 쓰는 시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여백이 절제와 안에서 배어나오는 ‘말 없는 말’들이 미감의 공감대를 강화해 준다. 우리의 자연은 그렇게 우리를 부드럽고 넉넉하게 우리를 끌어안으며, 그 위의 하늘 역시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옥빛이나 푸르른 옷자락을 펼치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이기만 할까.

   요즘 세태가 너무 각박하고 비정해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해보게 한다. 특히 곡선과 여백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그 미덕으로의 회귀와 회복을 꿈꾸고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한편, 곡선의 최상의 형태는 ‘둥긂’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둥근 데서 태어나 둥근 데로 돌아간다. 어머니 배속이 둥글고, 무덤도 둥근 형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둥글음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먹는 곡식은 동그랗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모두 둥글다.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둥근 형상을 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데아도 둥긂이라 할 수 있다. 이룸. 즉 완성은 곧 둥긂이다. 우리는 그 둥글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원불교의 상징이 원, 즉 둥긂이라는 사실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