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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문화人 스토리] 도예가 연봉상 -매일신문 2018-08-15
관리자 | 조회 2,017



전통가마 앞에서 육송 소나무를 이용해 불을 때고 있는 도예가 연봉상.


연봉상 작 '초신성'


팔공산 자락 아래 용진요를 짓고 다양한 작품의 도자기를 창작하고 있는 도예가 연봉상 씨가 전통가마 앞에서 자신의 달항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새하얀 뭉게구름과 푸른 산봉우리가 밀어를 나누듯 맞닿아 있는 팔공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비탈지고 옴팍한 땅의 신용동 용진마을 한켠에 용진요(龍津窯)가 둥지를 틀고 있다. 대구에선 유일한 전통가마이다. 그릇 굽는 가마가 있으니 도예가도 있기 마련. 30여 년째 이곳에 똬리를 틀고 자기만의 흙에 관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도예활동을 하고 있는 토하(土荷) 연봉상(57) 작가. 덥수룩한 수염에 흙빛 개량한복이 영락없는 도예가의 모습이다. 지인이 '흙꽃을 피우라'는 의미로 지어줬다는 호인 '토하' 또한 평생 흙과 함께 살라는 축원과 같다.

그의 대표적 작품 달항아리만 해도 흔히 생각하듯 표면이 매끄러운 흰빛의 백자가 아니라 마치 달 표면처럼 크레이트(Crater)가 그대로 새겨진 울퉁불퉁한 게 특징이다. 이를 두고 연 작가는 "운석의 구멍이 고스란히 새겨진 거친 달의 표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말을 좇아 연봉상이 추구하는 도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close]-흙을 빚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초등학교 공작시간에 흙으로 무엇을 만들던 간에 두각을 보였다. 충북 괴산이 고향인데 그 시절에 이미 나는 또래 학생들이 엄두도 못내는 컬러 흙으로 물건을 빚었다. 7남매의 외동아들(넷째)인데 외동아들을 잘 키우려면 타향살이를 해야 한다는 한 스님의 말씀에 선친은 두말없이 가산을 정리해 양산 통도사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이후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자유로운 성장기를 거쳤고 대입준비로 그림을 공부하면서 흙과의 인연도 계속돼 결국은 대학에서 도자기공예를 전공하게 됐다. 흙은 나에게 운명이자 소명이다.[close]-전통가마를 고집하는 이유

나의 도작기 작품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작품을 빚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소나무 장작을 패고, 불을 때 1,280℃에서 1,300℃를 맞추며, 약 48시간 동안 가마 옆에서 꼬박 불조절하고, 다시 4일에서 6일 동안 가마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1년에 서너 번 정도밖에 도자기를 구워낼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 불의 조화로 인해 유약이 변화하고 그 변화로 처음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더 멋진 작품이 탄생하면 그 희열감이란….

육송 소나무를 태워 그릇에 변화를 불러오는 그 다양성이 너무 좋다. 나의 창의력과 불이 잉태하는 작품의 완결성이 나만의 도자기 기법이다.

-토하 선생만의 도예기법이란

대개의 달항아리라면 초벌구이에 유약 발라 재벌 혹은 삼벌로 매끈한 모양으로 빚는다. 나는 일단 달항아리 형태가 만들어지면 유약 대신 진흙을 표면에 발라 그대로 재벌한다. 이렇게 하면 진흙 속 여러 화학성분과 공기 등이 열을 받아 바깥으로 분출되면서 표면이 마치 달의 분화구 형상을 띠게 된다. 이 때문에 내 작품은 또 다른 우주의 형상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예가가 흙을 물성으로 삼아 우주의 한 형상을 표현해 내는 것이 나의 도예작품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불의 온도와 유약으로 쓰인 진흙의 변화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론으로 다 말할 수 없다. 내 전통가마에서는 내가 의도한 작품성을 최대한 유도할 수 있다는 게 노하우이다.

-노하우가 생길 때까지 철학이 있다면

팔공산 아래 둥지를 틀고 처음 용진요를 시작할 때 도자기 겉면에 반야심경을 새겨 넣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게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그 세월동안 반야심경을 탐독하고 있다. 작품의 목적이 우주라면 내게 우주는 곧 종교요 그 종교는 불교로 귀결된다. 가마에 불을 지필 때 한 번도 간절한 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다.

1년에 한 작품은 꼭 반야심경을 새긴다. 하루 종일 양각으로 반야심경을 새기면 보통 30일정도 걸린다. 내게 사경은 그 자체가 기도이다. 이 때 사용하는 서체는 중국 서예가 오창석의 석고문(바위에 새겨진 옛 서체)이다. 전서체에 가까운 석고문은 예술적 미감이 가장 뛰어나다. 이런 이유로 달 표면을 본뜬 달항아리와 석고문 반야심경을 양각으로 새겨 넣은 매병은 나에게 최고 가치를 지닌다. 스스로도 세계적 작품으로 생각한다. 달 표면 문양의 달항아리는 외국인들도 처음 봤다며 신기해할 정도다.

-밥벌이를 위해 생활도자기도 구웠다던데?

1990년대 초반 생활도자기를 구우면서 밥벌이 전선에 나섰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당시 초등학교 다녔던 딸이 "아빠 쌀 떨어졌어" 하던 말이 제일 무서웠다. 생활도자기를 구우면서 예술가로서 나만의 작업 성향을 갖고 싶었다. 물론 그때 구웠던 생활도자기도 나만의 특색으로 만들었고 그 때문에 구매인들에게 인기도 있었다. 또 그들로부터 작품도자기를 한 번 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내 도자기를 보노라면 힐링이 된다고도 했었다. 도자기를 구울 때면 나는 늘 기도를 한다.

아마 그 기도가 작품에 스며들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기(氣)를 받는다는 구매인들이 적지 않았다. 얼핏 어리숙하며 토속적인 형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걸 두고 이런 평을 하는 것 같다.

-앞으로의 바람이나 희망이 있다면

나는 분명 전통가마를 사용하지만 작가로서는 현대적 도예가이다. 꾸준히 흙과 더불어 작품활동을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가마 앞에서 기다린 후 조우하는 뜨거운 작품을 만질 때마다 벅찬 기대감을 갖는다. 이런 기대가 작가로서 삶의 추동력이 된다. 계속 실험성 강한 작업을 많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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