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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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03    업데이트: 22-04-04 16:03

정하해 시

헤밍웨이 집
아트코리아 | 조회 204
헤밍웨이 집 
정하해

아파트 로비 책장에서 오래된 당신을 만났다

어릴 적 만났던 활자 그대로인 표지

단숨에 책장 넘겼지만 페이지에서 떨어져 나온

누런 편지 한 장, 당신을 읽은 그녀가

애인에게 온 편지인 듯 정갈하게 접혀있어

무덤을 여는 것처럼 조심스레 읽었다

그녀와 애인의 편지를 읽는 내내 그들만의

깊은 연애를 엿보는 재미가 당신을 잊게 했다

그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는 말과

시골이지만 덥다고 낙향의 상태를 자세히 알렸다

좀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미에는

미술학도인 그녀의 첫 전시회가 성황이었는지

어땠는지 걱정스레 묻는 말로 애틋함을

대신한 듯 찬찬히 편지를 마무리해 나갔다

당신을 읽으려고 했다가, 청춘이 더부살이한

그들의 현장에 나는 22층까지의 많은 집들 중

누구 것인지 궁금하지만 알 턱이 없고

그때부터 지금껏 한 몸으로 천년지기 했는지

어땠는지, 편지를 다시 당신 품에 놓았다

이토록 남녀가 늙지 않고 당신과 동거를

하는 일이 흔치 않기에 잠시 당신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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