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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낭비로 버려지는 言 - 2014-01-08 -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864

새해를 맞이하겠다고 호미곶을 찾았다. 새로운 해를 보았을 때 전혀 새롭지 않은 변함없는 색깔, 변함없는 크기, 그러나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일출도 새로울 거라는 생각의 잣대로 세시 풍속처럼 그렇게 해가 솟는 자리를 찾아 떠나는, 전설 같은 일이 도처에 점점 더 크게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각오를 위한 첫 기도처가 조선의 어떤 의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해를 위한 기도를 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나. 기도는 마음 깊은 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많은 言으로 시끄러워 지척의 사람에게 言을 좀 해야겠는데 들리지 않는다 한다. 

요즘은 정보화 시대라 해서 텔레비전의 각 채널마다 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다양한 정보를 알게돼 생활에 도움을 주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내놓고 시어머니 흉과 며느리 흉, 심지어는 사돈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내가 나를 띄우기 위해서는 가족의 프라이버시까지 까발려야 하는 이런 시대에 자라는 아이들의 言은 외계어처럼 변질되고 있다. 

식당에 가면 거의 나 같은 아줌마들이 앉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만히 들어 보면 나이마다 쏟아내는 言의 포인트가 있다. 40대는 아이들 학교문제로 하는 이야기가 있고 50~60대는 손자, 며느리 이야기가 속사포처럼 터져 나온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言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들어봐도 쓸 건 몇 마디뿐이고 전부 돌고 돌아다니는 소문을 각색한 것들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해야 할 言이 참 많다. 더불어 가는 것, 그 소중한 言을 들려주고 마음을 얻게 된다면. 그러나 무심코 뱉어내지는 言, 아무렇게 흘려버리는 言. 얼마나 소음이고 남을 다치게 하는 무기인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 言은 때에 따라 진실한 눈빛이면 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言이 부를 나타내는 계급은 아니다. 정작 해야 할 言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나 또한 얼마나 많던가. 그저 타인에게로 가는 소음이 아닌, 따뜻한 소통이면 되는 것이다.

정하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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