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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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뫼비우스의 띠처럼 - 영남일보 - 2014-02-26
아트코리아 | 조회 788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은 벌써 들었다. 봄은 아랫도리까지 부어있는 ‘봄’이란 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땅속에서 부풀었던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산천에 먼저 달려오는 것은 생강나무꽃이다. 다음은 산수유다. 꽃들이 순차적으로 건너오는 동안 들에는 냉이가 지천으로 받아칠 것이다.

흔들리듯 고요하듯 남실거리는 실오라기 같은 아지랑이 그것은, 보는 이에 따라 가슴과 눈에 밟히는 느낌도 다르다. 진달래꽃이 피어 산의 숨소리까지 두근거리게 하는 것 역시 이 땅의 축제다. 진달래꽃을 따먹으러 이산 저산 비탈을 누비던 추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내 생애 가장 소중하고 즐거웠던 추억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보리가 필 즈음 예전에는 종달새 울음이 온 들판에 라디오 소리처럼 들렸다. 높은 허공에서 맴돌며 우는 그 아래를 살피면 분명 종달새 알이 너덧 개는 숨어있어 우리는 가지고 놀다 깨트리기도 부지기수였다.

요즘은 종달새 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봄은 들판으로부터 온다. 지난해 흐르고 남은 도랑물, 그 짜그락거리는 흐름이 들풀을 밀어 올리고 들꽃을 피게 한다. 아무 꾸밈없는 저 순수를 지금도 어느 시골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리라. 나는 그런 봄볕에 앉아 우리들 잡지였던 ‘학원’을 몇 번이고 읽으며 동시도 써보고, 펜팔도 했다. 봄은 그렇게 작은 가슴을 종일 설레게 흔들었다. 내 시의 발원지는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저 쓴다는 즐거움에 문장도 안되는 말로 편지를 썼다. 봄은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꽃이 지는 슬픔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어릴 적 내가 알던 냉이꽃은 지금도 변함없이 생김새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꽃이든 나무이파리든 다치고 찢어진 것 없이 해마다 다시 그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떠나온 자리는 갈 수 없는 슬픔을 가졌다. 그것이 아득해서 그리움이라는 말도 만들어가졌다. 인간의 생애 그 복무로 하여 앞으로만 가야하는 삶이 천형일 뿐이다. 내게 뫼비우스의 띠가 있다면, 철딱서니 그때로 돌아가 저 꽃들 위로 온 가족 불러 앉혀 봄나물 걸쳐 밥 한 술 먹고 싶다는 간절함에, 봄이 마냥 황홀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하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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