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3    업데이트: 24-04-29 14:47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5>내 나라 사천삼백열다섯 해, 그대로 박생광
아트코리아 | 조회 9
미술사 연구자


박생광(1904-1985), '무당 3', 1982년(79세), 종이에 채색, 136×136㎝, 개인 소장


박생광의 만년 작품세계에서 무속은 중요한 소재였다. 부적을 확대해서 그려 넣기도 했고, 옛 무신도를 활용하기도 했으며, '무당 3'처럼 무녀를 주인공으로 한 대작도 여러 점 그렸다. 그가 무당과 무속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1년 봄 서울 여의도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국가 주도의 전통성 회복 행사인 '국풍81'도 한 계기가 됐다.

이 행사는 주관기관이 한국방송공사(KBS)여서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의 굿, 탈춤, 농악 등을 영상으로 손쉽게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많은 행사 중에서 김금화(1931-2019) 만신이 날이 선 작두를 맨발로 타는 불가사의한 광경이 방영된 것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박생광은 김금화가 굿을 하는 곳으로 찾아가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며 무속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무당 3'에 옆모습으로 그려진 무녀는 바로 김금화다. 박생광은 "샤머니즘의 색채, 이미지, 무당, 불교의 탱화, 절간의 단청, 이 모든 것들이 서민의 생활과 직결되어지는 그야말로 '그대로' 나의 종교인 것 같아"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금화도 박생광이 1984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찾아올 만큼 친분이 있게 된다. 박생광의 이 마지막 개인전은 "작가의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화단에 커다란 감동과 충격을 준 뜻 깊은 전시"라는 찬사를 받은 기념비적인 전시였다.

'무당 3'는 오른쪽에 무신이 그려진 부채를 펴들고 다른 손에 방울을 쥔 무녀가 있고 그 앞쪽에 흰 고깔을 쓴 제석이 그림 속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화면 위쪽의 기와지붕 아래엔 종잇조각이 만국기처럼 걸려 있다. 이 종이들은 '신물지(神物紙)'로 불리는 종이 무구로 굿이 벌어지는 신성한 공간을 장엄한다.

아래쪽의 돼지머리와 촛불은 굿상을 나타낸다. 구체성을 띤 형상들이 의례의 장면을 구성하고 있지만 위치와 세부가 온전히 재현되지 않은 채 모호하게 나열됐다. 강렬한 청색이 이런 이미지들 위로 부유하듯 덧칠해진 것은 깊은 밤까지 이어진 굿판의 어떤 공기인 듯 여겨진다.

이 그림의 서명은 돼지머리 왼쪽에 있다. 용 모양의 사각형 박스로 서명이 들어갈 공간을 별도로 구획하고 그 안에 '내나라 사천 삼백 열다섯 해 박생광'을 두 줄로 연이어서 썼다. 단기(檀紀) 대신 '내나라'로, 4315(四三一五) 대신 '사천삼백열다섯'으로, 년(年) 대신 '해'로 썼다. 이름도 한글로 썼고, 호도 한글 호이며, 인장도 한글인장 '박생광 그대로'다.

순 한글 낙관은 무속을 비롯해 우리의 고유성과 전통성에 젖줄을 댄 박생광의 작품세계에 걸맞은 뜻 깊은 성취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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