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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

대구의 근현대기 서화(書畵)와 문(文)의 문화 ⑳ - 대구 산수화_ 이인숙 2015년 8월(357호)
아트코리아 | 조회 563

대구 산수화

 

 

 

글|이인숙 한국학 박사, 대구대 강사

 

 

 

 대구 전통 회화의 주류는 사군자화이다. 20세기 대구 회화를 통틀어 본다면 서양화의 그늘에 사군자화가 있고, 사군자화의 그늘에 산수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구 화단 산수화의 존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구의 산수화는 독특한 지역적 특징으로 근현대기 산수화의 영역을 풍성하게 하였다. 그 의의는 서울 화단 산수화가 현실경의 사생에 기반한 수묵 풍경화의 성격을 갖는 ‘동양화’이며, 호남화단 산수화가 사의(寫意)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남종화’인데 비해 대구 화단 산수화는 수묵화의 필묵 자체가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묵산수’인 점이다.

 

 

 묵산수는 산수경물이라는 표현 대상을 경유하지만 대구의 서예, 사군자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동질의 필묵적 특질을 보여준다. 산수화에 있어서도 천상 ‘대구스럽다’는 지역성이며 예술지리학이다. 지역성은 다양성의 다른 이름이고 획일성에 반대되는 가치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구 산수화는 20세기 일백년을 지속하며 전개되면서 한국 미술을 다양하게 하고, 대구 미술을 표상한 소중한 의의가 있다. 수묵화는 그려진 대상의 표면 구조를 넘어 그 작가의 차별적 개성으로 결정(結晶)된 그 시대 고유한 문(文)의 성격을 필묵을 통해 향유하는 예술이다.

 


 대구 미술사는 19세기말 20세기 초 서석지의 서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시서화 삼절의 탁월한 사군자 화가인 서병오가 나타남으로 인해 근현대기 전통 화단은 사군자화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대구 산수화의 개창자인 허섭의 묵산수 또한 서병오의 사군자화 못지않은 근대기 대구 전통 화단의 뛰어난 성취이다. 허섭은 은자(隱者)의 장소로서 고적한 관념경을 담박한 먹색과 비묘사적인 함축적 필치의 수묵 산수화로 표현하였다. 농담이라기보다 강약으로 수묵을 구사한 묵법과 굵고 가늠, 진하거나 옅거나를 한꺼번에 구사하는 모필 고유의 묵획으로 먹과 붓을 단순하고 평범하게 사용하여 고적하고 쓸쓸하지만 황량하거나 냉철하지 않게 산수 자연을 그려낸 것이 허섭의 묵산수이다. 허섭과 서병오의 대사의(大寫意)적인 필묵미는 근대기 이전 석묵여금(惜墨如金)의 절제된 먹 사용과 소산한 갈필(渴筆)을 존중한 이지적 필묵 세계와는 차별되는 세계이다.

 대사의적인 필묵의 추상적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하는 서병오의 사군자화와 허섭의 묵산수는 두 분야 모두 서동균에 의해 계승되면서 의미 있는 자기 갱신의 과정을 겪었다. 서동균이 있었기에 대구 화단 수묵화는 20세기 후반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서동균은 운이 좋게도 20대의 나이에 서병오와 허섭을 비롯한 근대기 대구 화단과 서울 화단의 대가들을 곁에서 직접 견문하였다는 귀한 자산을 가질 수 있었다. ‘서화 시대’ 대가들을 체험하였기에 서동균은 ‘미술 시대’를 살면서 필묵의 정신을 보존한 수묵화가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변해옥은 다양한 수묵화를 그리는 가운데 산수화도 남겼고, 황기식은 『자인현읍지(慈仁縣邑誌)』(1932년)를 편찬한 한학 지식인으로서 필묵의 재미와 멋으로 평생을 영위했으며, 홍순록 또한 일편단심의 진지(眞志)로 먹과 붓의 세계에서 살았다.

 

 

 산수화는 동아시아인의 자연관과 인생관을 순수 회화의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예술이며, 오랜 역사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이념과 양식의 변주 속에서 발전해온 예술이다. 모차르트의 어떤 음악을 어떤 명반으로 골라 들을지를 행복하게 고민하듯, 산수화라는 악보 또한 작가에 따라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탄생되어 그 차이를 음미할 수 있기를…. 염천(炎天)의 팔월이라 ‘겨울산수’들을 골라보았다.

 


 한국 미술사의 보고인 간송미술관의 분관이 대구에 건립될 것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대구 미술사의 성취를 알리고 보여줄 공간 또한 필요하다. 이상한 것은 이 땅에서 이 곳에서 미술을 하면서 우리의 미술 전통에 대해, 지역의 미술 전통에 대해 무지한 것을 정상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이러한 백안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혹시 자기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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