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천(白川) 서상언(61·사진)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고 호언장담했다. “빅히트 칠거라”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인의 흥이 됐다. 서상언은 최근에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즐겨 듣는다. 이유는 하나. 전통미술의 방향성을 세계를 무대로 뛰는 젊은 가수들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는 “싸이나 방탄소년단의 흥 속에 스며있는 우리의 정서가 세계인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르를 초월해 보편정서는 세계인과 호흡하는 요소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봐요. 보편성에 개별적 특수성이 혼재돼야 되죠. 저는 그 개별성을 전통에서 찾았어요.”
문인화가 서상언의 작품세계가 확연하게 변한 것은 지난해 개인전이 분기점이 됐다. 전시에는 지극한 자태로 위용을 드러내는 불두(불상의 머리)와 달항아리, 찻사발, 분청사기 등 한지 위 고미술을 들고 나왔다. 먹에 서양물감을 혼용하고, 고미술에 아로새겨진 민족혼을 부각시켰다. 전통문인화와 서예의 표현방식을 뒤집고 소재, 물성, 콘텐츠 등의 요소에 서양의 기법을 차용하며 변화의 신호탄을 알렸다. 이는 방탄소년단의 세계화 전략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개별성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역시 대대로 이어져온 우리의 ‘혼(魂)’이죠. 젊은 가수들이 우리의 혼과 흥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전통미술도 현대인과 공감할 수 있다고 봐요. 그 점에 핵심을 두고 현대화 나아가 세계화로 나아가고자 했어요.”
서상언 작 ‘가지무늬토기’
사실 이같은 변화는 그가 정년보다 4년 일찍 퇴임을 결정할 때 예견됐다. 그는 대건고에서 30여년을 음악교사로 재직하다 2016년 퇴임했다. 퇴임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콘텐츠를 작품으로 축적해 가겠다는 것. 그가 “전통미술의 미학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현대인의 가치회복을 위해서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공감대가 형성돼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전통미술도 다르지 않아요. 시대와 소통해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어요. 저는 전통미술의 현대인과의 소통에 예술적 목표를 두고 있어요.”
18일 시작되는 서상언의 ‘700년 가야 魂(혼), 먹과 놀다’전에는 금동관, 수레바퀴모양토기, 굽다리접시 등의 가야유물을 한지 위에 그린 작품 20여점과 가야유물에 전통문인화 소재인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소품 10여점이 전시된다. 김해(금관가야), 함안(아라가야), 함창(고령가야), 고령(대가야), 성주(성산가야), 고성(소가야) 등 6가야 유물을 직접 보고 재해석했다.
작가가 최근에 미술의 주제로 삼는 것은 ‘통일’이다. 그는 최근작들에서 남과 북의 유물을 소재로 하고, 백두산과 한라산을 한 화폭 속에 표현하는 등 통일에 대한 염원을 견지해왔다. 고미술이라는 소재 역시 이같은 맥락 속에 있다.
“문화와 예술은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으로 이끄는 강렬한 무기가 됩니다. 가야문화권에 대한 관심도 화합과 관계되죠. 영호남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가야문화권이라고 본 것이죠. 이 논리를 확장하면 남북화합까지 닿지 않겠어요?”
서상언 작 ‘금동관’
대가야의 유물을 그린 작품 ‘금동관’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유려한 가야토기의 미학에 소나무를 현대적으로 가미한 토기도 아름답기도 매한가지다. 수많은 덧칠 속에 여여한 시간과 인간의 고독까지 오롯이 살려냈다.
작가가 “가야토기에 500도의 이글거리는 불빛이 보이지 않느냐”며 “한지 위에 도자기를 빚고 구웠다”고 했다. 금동관의 표현미는 “고대 정신의 광맥을 캐는 일”이었다고도 했다. 수많은 덧칠 속에 도공과 제련사의 장인정신과 혼을 그대로 옮겼다는 것.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작가는 “한지에 꽃이 피었다”고 표현했다. 가야 도공의 마음으로 가야유물을 한지에 빚은 서상언의 전시는 23일까지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010-8594-6592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출처 : 대구신문(http://www.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