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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서상언 작가 ‘한글, 매화로 피다’전…23일까지 DGB갤러리 / 대구신문 / 2022.09.14
아트코리아 | 조회 266
수묵화에 한글·둥근 원 등 접목 현대성 확보
우주와 소통하는 소리 시각화
정신적 뿌리는 동양정신 바탕
물감·소금 등 물성 다변화 시도


인류의 역사는 오래 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며 진화해왔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의 정신이었다. 서상언 작가의 예술인생은 ‘예술의 현대성을 확보하는 것’에 맞춰졌다.

인류 진화의 핵심 키워드인 ‘법고창신’을 근간으로 ‘수묵 예술의 현대성’을 확보하려는 시대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일에 일생을 걸었다. 현대인의 미학적 취향을 충족하는 수묵화로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다. 17일 개막하는 DGB 갤러리 개인전에서 전통에서 현대회화로 진화 중인 그의 작업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한글, 매화로 피다’ 연작.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매화의 꽃을 피워낸 작품들이다. 작업의 개념적 토대는 ‘우주’. 그의 사유가 ‘우주’로 지평을 넓힌 것은 2015년부터다. 이후 운석이나 빅뱅, 블랙홀, 지구 바다 속 깊은 심해 등을 우주와 존재의 본질로 연결하며 자신의 사유 세계를 심화해갔다.

“수묵화가 보다 높은 차원의 철학으로 넘어가고 현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상으로 나가야 해요. 우주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의 대주제 또한 ‘우주’다. 이번에는 우주의 소리에 초점을 맞췄다. “우주 속 존재와 인간이 소리로 교신한다”는 상상을 토대로, 소리의 실체를 시각적으로 파헤쳤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원동력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중·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한 이력이었다. “이번 전시작 중 일부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작업했어요. 소리에 따라 흘러가는 붓의 본능을 따라 갔죠.”

그가 지목한 우주어는 ‘한글’.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는 소리글자인 한글이야말로 우주인과 교신할 문자로 제격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과감하게 매화의 꽃점으로 가져왔다. 그가 “고전에서 현재까지 수묵화에 창의적인 한글로 작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일 것”이라며 “앞으로 무궁무진한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수묵세계를 펼쳐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작업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매화 가지에 붉은 꽃점으로 피워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화나무의 아름드리 가지에도 한글 자음이 둥지를 튼다.

한글 자음 14자와 모음 10자의 직선과 곡선으로 나뭇가지와 꽃점의 형태를 갖춰가다 보면, 화면 속 홍매화는 단순한 꽃나무가 아닌 우주와 교신하는 언어이자 플랫폼이 된다. 그가 “보이지 않고, 못 들을 뿐이지 우주와 우주의 소리는 분명 존재한다”며 “이번 전시는 그 소리에 초점을 맞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작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요소는 둥근 원. 다양한 매화나무가 원 속에서 각자의 기운을 발하고 있다. 동양에서 원은 불교의 공(空) 사상과 연결된다. “원은 우주어의 집이자 직선과 곡선의 수묵 미학을 품은 한글 추상의 묘처”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각적으로 변화하되, 정신적인 뿌리는 동양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의미였다.

전통 예술인 서예와 문인화로 출발한 것은 80년대 중반. 그로부터 40년간 수묵화의 법고에 매진하다 창신으로 방향타를 튼 것은 2011년 2회 개인전 때부터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예술가의 시대적 소명에 대한 고민에 빠지면서 ‘남북통일’을 주제로 백두산과 한라산을 하나로 엮어 통일을 기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가야문화권의 유물과 소나무를 접목해 영·호남 화합의 장을 펼치기도 하고, 불두(불상의 머리)나 분청사기 등의 고미술을 소재로 민족혼을 새롭게 일깨우기도 했다. 수묵화의 확장이자 사유의 확장이며, 현대성의 발견이었다. 그가 “저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자기복제를 하며 작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하며 작업해오고 있다”며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신성을 시각적으로 가시화 하는 것은 물성이다. 다양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작업 특성상, 물성 연구는 필수였다. 한지와 먹 일변도에서 벗어나 서양물감과 소금, 흙 등의 물성을 먹과 함께 사용하며 물성의 다변화를 시도해왔다.

변화는 예술가의 숙명이다. 하지만 수묵화의 변신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전통이 가지는 축적된 시간성과 견고한 틀의 무게에서 쉬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싸움꾼이었다. “변화를 추구할 때마다 즐거웠다”는 그의 말에서 변화와 도전에 대한 그의 DNA를 발견할 수 있다.

“남이 가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창작의 기쁨을 만끽하는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도 했다.

예술가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그가 그토록 변화에 갈증을 느낀 본질적인 이유는 딱 하나, ‘소통’이었다. 동시대인과 소통하지 않는 예술은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DGB 갤러리 서상언 개인전은 2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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