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나는 노을 지는 저녁 무렵, 백천 서상언의「月松圖」(2011. 한지에 수묵 담채. 140×70cm)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우연히 마주한 그의 그림에 매료되어, 언제부터인가 틈만 나면 그의 화실에 들러 숨겨 논 애첩인양 추파를 던진다. 그런 날엔 으레 주연(酒宴)이 벌어진다. 화폭 왼쪽 상단에 걸린 보름 달빛 아래 서성이다 괜스레 흥이라도 나게 되면, 나는 이백의 시「月下獨酌」을 읊고, 백천은 먹과 붓을 움직여 천지를 담아낸다. 그러면 소나무가 고택보다 크게 그려진 묘(妙)도 묘이러니와, 화폭 하단의 연못 속 마른 연잎에 부는 늦가을 바람은 저리도 스산하여 뼈에 저리다. 한밤중 둘이 거나하게 대취 하면, 저 북송의 소식(1037~1101)이 말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 畫中有詩)는 풍류의 경지에 젖어든다.
이번「松·古美殿」은 그의 다섯 번째 전시회다. 고금(古今)의 아름다움과 조화가 함께 돋보이는 수묵의 향연장이다. 松殿 시리즈는 적묵(積墨)과 때론 초묵(焦墨)의 기법을 통해 노송의 품격과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예부터 먹(墨)은 문인화의 주된 질료로서 정신의 색을 표방한다. 내가 본 백천의 묵선과 여백에 따른 미학적 공간과 흐름은 가히 압권이다. 섬세하고 중후하고 깊은 먹과 붓의 연접을 통해 마침내 드러난 고송의 내면은 한국 문화와 정신의 형이상학이다. 이러한 묵화의 세계는 아닌 게 아니라, 이가염(중국, 1907~1989년)에서 소산 박대성(1945~)으로 이어져 백천에 이르러선 특유의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선(線)의 음악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대작「천년의 향기」(110×1200cm) 12m 소나무 그림은 접신한 경지가 아니고서야, 그 경이로움을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이는 저간 경주 남산 소나무를 본(本)으로 수년간 전국 산천을 구석구석 누빈 땀과 수고의 총합이리라. 작가도 밝히고 있듯, 소나무 양쪽에 배치한 다보탑과 석굴암은 고대 신라의 정신과 현대 미학의 앙상블을 추구할 뿐 아니라, 통일에 대한 염원마저 담고 있다. 검은 색과 빛은 모든 빛을 다 끌어안은 색이자, 더 이상의 빛과 색이 아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