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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

‘黃昏의 반란’
이태수 | 조회 778

<세풍>-39-(2002.10.3)

‘黃昏의 반란’

 

 

李 太 洙 <논설위원>

 

 가정은 가족이 함께 살면서 부부가 중심이 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작고 기본적인 공동체이다. 하지만 이 최소 단위의 공동체가 흔들리면 적지 않은 문제들이 생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가정의 붕괴는 곧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서(창세기)에 결혼은 ‘하느님의 창조적 산물’로 그려져 있다. 남자도 여자도 상대방을 위해 창조됐으며, 그 본질적인 특성도 상호 보충적이어서 결혼은 바로 ‘하나 되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이 제도를 대체할 만한 방안이 없는 형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H A 텐은 “결혼 뒤 3주 동안은 서로 관찰하고, 그 다음 3개월은 사랑하지만, 그 다음 3년은 싸우며 지내고, 그 뒤 30년은 용서하며 산다”고 했던가.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 그 관용의 미덕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 ‘결혼 생활의 유지 비결 여섯 가지 가운데 하나는 사랑이고 다섯 가지가 신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이 ‘신뢰’라는 비결마저 포기하는 바람이 드세어지기만 하는 세태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32만 쌍이 결혼하고 13만5천 쌍이 갈라섰다. 최근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이혼율이 미국·영국에 이어 스위스와 공동 3위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99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이른바 ‘황혼 이혼’도 날로 심각해져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지난해의 경우 ‘황혼 이혼’이 전체의 11.3%에 이르렀으며, 계속 늘어날 전망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남편 밑에서 주눅 들어 살아 온 할머니들이 만년에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남편의 권위에 눌려 지내면서 자식들 때문에 참고 견디다 자녀들이 성년이 되고, 남편이 사회적으로 힘을 잃어버린 뒤에는 그 남편이 귀찮기만 한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가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거나 가족들의 따돌림 등에 못 이긴 ‘할아버지들의 반란’으로 ‘황혼의 마이 웨이’ 물결을 이루기도 한다니 세상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 것 같다. 실제 1997년까지 60대 이상 노년층의 이혼 소송 10건 가운데 9건 정도는 여성이었으나 최근에는 남녀의 비율이 엇비슷하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이 같은 ‘할아버지들의 반란’은 남녀평등이 강조되면서 전통적 가정 문화에서 평생을 보낸 노년 남성들이 경제권을 잃고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등 심한 박탈감과 소외감 때문에 불이 붙고, 여성들이 평등권을 요구하면서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배려를 희석시키고 있기 때문에 더해지고 있다는 풀이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황혼의 반란’이 여성 쪽에서 남성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요즘 시중에는 ‘나도족’이라는 말도 나돈다. 직장을 잃고 나이가 든 남성이 이사 갈 때 이삿짐을 실은 트럭 앞좌석에 재빨리 올라가서 안전벨트를 맨 뒤 아내에게 ‘나도 데려가’라고 애원한다는 데서 나온 신조어인 모양이다. 더 심해지면 아내가 시장에 가거나 쓰레기를 버리려 갈 때도 ‘나도 데려가’라고 떼를 쓰게 된다든가···. 나이를 먹으면서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남성들의 자조적인 농담이겠지만, 웃어넘기기만 할 농담은 아닐는지 모른다.

 

 어떤 결혼식에서 주례가 ‘백년해로’ 대신 ‘행복한 이 순간을 기억하고 만약 헤어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서로 양보하는 이혼을 하라’고 당부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주례사가 오늘의 현실을 진솔하게 반영하고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떨쳐지지 않는다.

 

 로마의 멸망은 가정이 무너지면서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질서를 잃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정의 의미에 대해서는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기초가 되는 이 작은 공동체는 우선 따스한 곳이어야 한다. 가정은 건물의 기초와 같고, 수학의 공식과도 흡사하다. 그 기초와 공식이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위태로워지고, 공식은 제 기능을 잃을 수밖에 없으리라.

 

 성서(에페소서)에도 가정은 ‘하느님이 최초로 만든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 했다. 지금 나이 든 남성들이 그 ‘아름다운 작품’이 허물어져 버릴까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고, 또 얼마나 더 늘어나게 될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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