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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6

인간과 쥐——경북신문 2022. 7. 25
아트코리아 | 조회 431
인간과 쥐——경북신문 2022. 7. 25
 
 
  우리나라 설화나 중국 문헌에 쥐가 둔갑해 사람 행세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의 사례로 ‘쥐인간’을 주제로 삼거나, 입센의 작품에 ‘쥐 아가씨’가 등장하는 경우만 보더라도 쥐의 의인화 전통은 동서고금을 통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쥐는 곡식을 축내고 가구를 갉아 망치며 병을 옮기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반감을 갖게 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부라우닝의 시 ‘종과 석류’와 엘리어트의 시 ‘화교’에는 쥐가 죽음과 악의 상징으로 그려져 있으며, 한용운의 시 ‘쥐’엔 ‘작고 방정맞고 얄미운 쥐’라고 묘사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쥐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외국인이 ‘한국인은 레밍(들쥐)과 같다’고 말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또 우리나라의 한 기업인이 ‘한국 기업들은 들쥐 떼 근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 한때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쥐는 어떤 짐승보다도 가장 빈번하게 인체를 대신한 실험 대상으로 희생당하기도 한다. 쥐와 인간의 유전자가 99%나 구조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쥐와 인간의 차이는 전체 유전자 3만여 개 가운데 고작 1%에 지나지 않는 300여 개에 의해 결정되는가 하면, 쥐와 인간의 유전자는 최소 80%가 완전히 일치한다고도 알려진다.
  특히 생쥐는 질병 관련 유전자의 90%를 인간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나 난치병 치료와 노화 연구에 획기적인 성과를 낳게 했다. 이렇게 본다면 쥐는 생리구조나 유전자가 사람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바지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 의대의 케네스 월시 교수와 스웨덴 웁살라대의 라르스 포스버그 교수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나이가 들면서 면역세포에서 Y염색체가 사라지면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30% 이상 높아진다’고 밝혀냈다. 생쥐를 실험 대상으로 진행한 이 연구진은 정상 골수를 이식받은 생쥐는 2년 뒤 60%가 생존했지만 Y염색체가 없는 골수를 이식받은 생쥐는 40%만 살아났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영국의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남성의 건강기록을 추적, 등록 당시 Y염색체가 없는 면역세포가 많았던 사람일수록 12년 뒤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았으며, Y염색체가 없는 면역세포가 40% 이상이면 사망할 위험이 31%나 높았다고도 밝혔다.
  이 연구에 앞서서도 인간은 일반 염색체 22가지와 성염색체 한 가지로 23가지 염색체 쌍을 갖고 있는데 여성의 성염색체는 XX염색체, 남성은 XY염색체를 갖고 있으나 남성들은 아예 Y염색체가 없거나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것을 발견한 바도 있다.
  노인들의 심장병은 남성의 경우 면역세포에서 Y염색체가 여성보다 빠르게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이 연구 결과도 생쥐를 통해 이끌어냈다. 나이가 들면서 Y염색체가 감소하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는데, 이 염색체는 노화와 유전적 요인 이외에도 흡연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대목은 담배를 피우는 노인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오래전 한 학자는 ‘유전학적 유사성만 고려하면 인간을 ‘꼬리 없는 쥐’로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고 한 말은 세태에 비추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도 한다. 가장 유사한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인간과 쥐는 유전학적 유사성뿐 아니라 속성도 비슷할 수 있다는 우려가 어느 정도 내포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야음을 타고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병폐를 마구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중략> 사방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신 헐뜯고 야단치는 소리가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세상을 살고 싶도록 죽고 싶고,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가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깔을 한 쥐가 되어 가겠지요’.
  대구에서 활동하는 바리톤 박영국이 한때 즐겨 부르던 가곡 ‘쥐’(김광림 시, 변훈 곡)의 일부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시를 쓴 90대의 노시인은 여전히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라고 세태를 풍자하실지 모르지만, 쥐의 속성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새삼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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