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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7

[이태수 칼럼] 시와 음악, 예술 / 경북신문 2023. 2. 22
아트코리아 | 조회 330
시와 음악, 예술

경북신문 2023. 2. 22
 
 
  시는 음악과 깊은 함수관계를 가진 문학 장르다. 시는 음악성을 거느리며 그 음악성이 생명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시가 서정시, 서사시, 극시 등 세 장르로 나뉘었지만, 이때도 이 세 장르는 운문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는 더욱 미묘하고 복잡해져 그 갈래를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그 속성은 여전히 마찬가지다.

  시는 모든 글 중에서 유일하게 리듬, 즉 운율(운과 율격)을 가진 글이다.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반서정주의 시들도 적지 않아 서정주의 경향의 시만 서정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시라고 하면 주류인 서정시를 가리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영미문학권에서는 구체적인 작품인 시를 ‘포엠’(poem)이라고 하며, 추상적인 용어로는 ‘포에트리’(poetry)라고 한다. 국문학에서는 서양의 시에 해당하는 용어를 ‘시가(詩歌)’라고 했다. 서양보다는 확실하게 ‘노래’라는 뉘앙스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가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이전에 문학에 해당하는 ‘시’와 음악에 해당하는 ‘가’를 함께 표기한 점만으로도 그 성격이 확연해진다. 시는 이같이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시 자체만으로도 이미 음악성을 거느리고 있지만, 음악과 어우러질 때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길과 장을 열어놓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시의 운율과 어조를 돋우어내는 시낭송 분위기가 고조되고, 시낭송가들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은 활자매체인 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장점을 더욱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이를 향수자와 함께 향유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가 낭송을 넘어 음악과 바로 만나면 그보다도 더욱 이상적이라는 사실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가곡(예술가곡)은 시에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다, 음악성을 가지고 있는 시가 낭송되면 시에 날개를 다는 셈이며, 가곡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면 낭송 때보다 더 큰 날개를 단다고 할 수 있다. 시가 낭송되고, 가곡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자주 오르는 건 크게 반길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가 어떤 방식으로든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삭막한 삶에 윤활유와 활력이 될 수 있었으면 바람은 시인들의 기대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시와 음악을 접맥시키려는 시도를 해온 지도 반세기 가까이 된다. 시를 중심에 둔 공연이 아니라 시를 노래(예술가곡)로 만들고, 새롭게 만들어진 가곡을 보급하려는 시도였다. 1980년대 초에 필자와 한 방송인이 아이디어를 짜내 제안하고, 한 방송사가 받아들여 한 달에 창작가곡 한 곡을 만들어 TV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는 가곡 운동을 편 것이 그 첫 시도였다. 매달 한 번 시인과 작곡가, 성악가, 피아니스트. 방송 관계자가 뜻을 모아 이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으나 후원자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작 넉 달이 그 수명이었다.

  그 후 1984년 한 방송사에 FM방송이 창설되면서 필자 주선으로 매달 창작가곡 한 곡을 만들고 연말에는 열두 곡으로 LP판 레코드를 만들고,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그러나 이 작업 역시 네 해 만에 방송사의 사정으로 중단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92년 몇몇 성악가, 작곡가와 뜻을 모아 가곡운동을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시인, 작곡가, 성악가, 피아니스트, 시와 음악 애호가 등으로 구성된 대구예술가곡회가 출범, 그해 봄에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대구예술가곡회는 그동안 변화를 거듭하면서 매년 몇 차례의 예술가곡 공연을 해왔으며 근년 들어 대구경북예술가곡협회로 개칭하고 회원을 경북지역으로까지 확대해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활동은 여전히 난항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예술은 1차 생산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예술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후원(지원)과 향수층 없이는 불가능했다. 오늘날 널리 사랑받는 음악과 미술 작품들도 일부 귀족들이 밀어주거나 지원했기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으며, 향수층이 이를 받쳐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삼스럽게 시와 음악(예술)에 대한 생각을 해본 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 예술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새봄과 더불어 시와 음악, 나아가 시심(詩心)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을 생활과 가까이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한층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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