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23-09-20 14:32

석도화론

6. 운완 (運腕)
관리자 | 조회 61
6. 운완 (運腕)

 

  흑자가 말하기를

 [역대의 회보(繪譜)나 화훈(畵訓)의 장장(章章)마다 용필(用筆) 용묵(用墨)을 명백하게 말하였고 곳곳마다 매우 정밀하고  세밀하게 말하였소. 자고이래 동호인(同好人)인 그림을 배우는 사람에게 빈말로 산해(山海)의 형세를 말  한 것은 보지 못했소. 생각해 보면 당신의 깨끗한 천선은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세상 밖에 일획법을 세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고질적인 폐습을 타파하였소. 죄송하지만 천근(淺近)을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경험은 먼 데 있는 것 같아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얻을 수가 있고 인식은 비록 가까운 곳에 있어도 운용은 역시 먼 곳에 있다. 일획이란 글자와 그림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천근의 노력이며 변획(變畵)이란 용필과 용묵의 천근의 법도이다. 산해란 일구(一丘) 일학(一壑)이 천근의 근본을 펼친 것이다. 형세란 산악의 체모와 윤곽으로 천근의 강령(綱領)이 된다. 만약 화가가 한 구석만 인식하다며 곧 한 구석의 근본만 알게 되는 것이다. 비유컨대 한 구석에 산이 있고 봉우리가 있다면 그 사람은 그 한 구석의 경험과 이해로 시종 하나의 산과 봉우리만 그릴 수밖에 없어 끝내 변화하는 다른 산과 봉우리의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이것이 산이겠는가 봉우리겠는가? 마치 도자기를 만들 때 틀을 세워 투각하고 조각하듯 장식하는 사람의 수법이니 좋은 것이겠는가 나쁜 것이겠는가?

  또 형세(形勢)에 변화가 없으면 겨우 윤곽이나 준찰의 표면 밖에 그리지 못할 것이요, 화법이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으면 훈련이 가지런하지 못하면 결렬된 산천의 천후만 있을 뿐이요, 살림이 불비하면 공허(空虛)하고 박약한 근본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네가지 상황의 잘못된 약점만 제거한다면 반드시 화가는 운완(運腕)의 일획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붓 잡는 팔이 만약 마음에 잡념없이 영묘(靈妙)하게 움직인다면 능히 변화하는 그림을 그릴 것이요, 만약에 붓 잡는 팔이 나올 때 절단(截斷)되듯 기세가 있고 들어갈 때는 높이 걸려 게양(揭揚)된 듯하면 형상에 병패가 없고 모호하지 않을 것이요, 붓 잡는 팔의 경험이 근실하면 필력이 침착하고 투철할 것이다. 붓 잡는 팔의 경험이 바르고 곧으면 필력이 곧고 필봉이 감추어질 것이요, 붓 잡는 팔의 경험이 반대로 되면 경사진 자태가 나타나고, 붓 잡는 팔의 경험이 급하게 내달리면 필력은 득세를 따라 조종해야 할 것이다. 붓 잡는 팔의 경험이 느리고 완만하면 공읍(拱揖)하는 것처럼 정(情)이 있으며 붓 잡는 팔의 경험이 운필에 변화가 있으면 자연과 혼합해지고, 붓 잡는 팔의 경험이 변화가 있으면 천태만상의 아름다운 참차(參差)가 진기하여지고 괴이하게 아름다워지며, 붓 잡는 팔의 경험이 기묘(奇妙)하면 필력이 귀부(鬼斧)하듯 신묘한 공력이 나타나고 붓 잡는 팔의 경험이 신묘해지면 산천의 표현에 영기가 있다. 

[출처] 6. 운완|작성자 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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