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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六法(화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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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7일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3/09/20 | 조회 0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畵品錄)을 저술하였는데 거기서 주장하기를 그림에는 육법(六法)이 있다고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운생동(氣韻生動 : 대상의 풍격이 화면에서 살아 약동하는 듯이 그리는 것. 내면적인 면을 중시하는 회화관이라 볼 수 있다) 이라 하고, 

  둘째는 골법용필(骨法用筆 : 대상의 골조를 필선으로 구사하는 것. 기운이 인격적인 파악이라면 골법은 육체적인 골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화품록(古畵品錄) 제1품을 인용하여 기운과 골법을 병치시켜 놓은 것에 주목하고 양자가 모두 인간의 생명감을 상징한다고 하지만,골법은 일반적으로 기운생동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골법은 보통 회화에서 骨肉이라고 할 때 骨은 線을, 肉은 色을 말하므로, 그럴 경우 筆法이 되고, 대상을 지지하는 法을 파악하여 그것을 용필로 표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이라고 하며, 

  세 번째는 응물상형(應物象形 : 대상에 응해 사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라고 하고,

  네 번째는 수류부채(隨類傅彩 : 대상의 종류에 따라서 적합한 색채를 칠하는것)라 하며,

  다섯 번째는 경영위치(經營位置 : 화면의 구성을 생각해서 제재를 적절하게 포치<布置>하는 것. 즉 구도 내지 구성을 말함)라고 하며,

  여섯 번째는 전모이사(傳模移寫 : 古畵나 선인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행위를 뜻한다). 古畵나 자연의 원래의 것을 충실하게 옮겨 그리는 재현이라는 점에서 제1법에 비해 외면적, 畵工的이고, 동서 미술에서 통용되는 초보 단계이다. 古畵의 경우 傳來의 粉本에 충실하면서도 정확한 모사를 통해 명작의 양식과 정신에 육박하는 연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육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해보려 한다. 즉 옛그림은 혹 형사(形似 : 그 대상의 寫實을 말한다)를 능숙하게 옮겨 그릴 수도 있었으나 그 골기(骨氣)를 숭상해서 형사(외형적 사실) 밖의 것을 그림에서 구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림은 비록 형사는 획득했으나 기운이 살아 있지 못한데, 기운을 그림에서 구한다면 형사는 자연히 그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상고시대에 그림은 붓 자취가 간결하고 그림의 뜻이 담박하면서도 기품이 우아하고 바르다. 고개지,육탐미 유파가 이것이다. 중고(中古)시대의 그림은 세밀하고 정치하면서도 화려함을 다하고 있다. 전자건, 정법사 유파가 이것이다. 근대의 그림은 눈에 띄게 화려하면서도 기술적인 완벽함을 추구하였다. 오늘날의 그림은 무질서하게 뒤섞이어(통합된)주장이 없는데,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이것이다.

  대체로 대상을 그릴 경우 형사(形似)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고, 형사는 모름지기 대상의 골기까지 온전히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골기의 표현과 형사의 달성은 어느 것이나 화가가 구상하고 있는 것(立意)에서 출발하여, 붓을 사용하는 것(用筆)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그림을 잘하는 사람은 대개 서예도 잘한다. (하여튼 상술한대로 사물의 묘사는 형사로부터 출발해서 골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경영위치는 그림을 총괄하는 요체이다. 오도현(吳道玄 : 중국 唐代의 화가. 原名은 道子. 당 현종이 도현으로 개명해 주었다)의 작품을 관찰해보면, 육법이 모두 온전히 갖추어져 있고 삼라만상이 반드시 충분히 표현되어 있어, 아마도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 그 손을 빌려 조화의 신비를 궁극(窮極)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운이 웅장하여 거의 비단 바탕(즉 화면)에 수용되지 못할 정도라고 느껴지는 까닭에, 붓자취가 크고 작은 일에 구애됨이 없이 담 벽에 멋대로 휘둘러 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세밀화는 또 매우 빽빽한데, 이것은 신비할 정도로 기이하다.

   전모이사에 이르면, 이것은 곧 화가의 말단적인 일이다. 화가들이 대략 모습은 닮게 잘 그리지만, 형사가 잘되면 그 기운이 없고, 채색을 갖추면 그 필법을 잃고 있으니 어찌 그림이라고 말하겠는가!  고준지(顧駿之:유송(劉宋). 吳 사람. 인물화를 잘 그렸고, 장묵을 스승으로 했다)는 항상 높은 누각을 지어 화실로 삼았는데, 누각에 오를 때마다 사다리를 치워버렸으므로 가족들도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날씨와 경치가 화평하고 맑은 연후에야 붓을 잡았고, 천지가 흐리고 어둠침침하면 붓을 잡지 않았다.

 

   *남제(南齊) 사혁(謝赫)의 화육법은 옛부터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양화의 진수를

논술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혁은 南朝 齊의 화가요 화론가로 인물화에 능했다.

   그가 찬술한 "고화품록 (古畵品錄)"은 종래 화가의 우열, 등차를 六品級으로 분별한 것으로 "宋書"

<藝文志:예문지>에는 "고금화품(古今畵品)"이라는 書名으로 기재되어 있다. 화육법은 同書 卷頭 序文의 일부이다.

   육법은 네 글자 중 2자+2자 형식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 그림을 배우는 순서가 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사혁 자신이 품평 기준으로 썼던 것처럼 품평 기준이 된다. 그러나 사혁의 언급이 없기 때문에 육법, 특히 회화의 궁극 목표인 제일법 "기운생동"은 2자+2자 형식도 아니고, 기운의 "韻" 의 해석을 마이클 설리반은 서예의 발달에 힘입어 에너지(氣)가 리드미컬하게(韻) 생동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어떠한 예도 해석에 문제가 있어, 기운생동이 동양화의 최고 지침이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논란은 그후 쭉 지속되었다.

   "경영위치"는 그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어 일체의 형상이 모두 "경영위치"의 총괄을 받는다는 현대적인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또 사혁 자신이 품제(品齊)를 하면서 그림을 배우는 방법으로서 "傳移模寫"를 생각했다는 것은 화육법이 인물화만의 품평론이라고 볼 수 없는 면이기도 하다. 사실상 "전이모사"는 그후 중국 회화에서 사실(寫實)과 숭고(崇古)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고, 새로운 장르로 떠오르는 옥우화와 산수화에까지 "기운생동" 이하 제5법이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화육법은 통괄적인 회화품평 기준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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