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23-09-20 14:32

석도화론

1. 일획 (一畵)
관리자 | 조회 66
1. 일획 (一畵)


  태고(太古) 때에는 문화가 미개하여 법이 없었으므로 화법(畵法)도 없었다. 극히 미개하였던 원시적인 상태의 순박한(太朴) 자연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이 순박한 자연이 한번 흩어짐으로써 법이 자연히 세워지고 화법도 생겼다. 이 화법이 어디에 어찌하여 세워졌을까?

  그것은 하나의 획선( 畵線)인 [一]획을 긋는 데 일획(一畵)에 세워졌다. 일획(一畵)을 그리는 것은 만획(萬畵)의 근본이 되며 만 가지 형상을 그리는 근원이 된다.

 일획(一畵)의 작용은 매우 커서 신비한 자연의 경지에서만 보이며 사람들의 눈에는 그 작용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그 작용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획(一畵)의 원리와 방법은 태고 때부터 자기 스스로 세워진 것이다.

  일획(一畵)의 화법이 세워진 것은 대개 무법(無法)이 유법(有法)을 낳고 유법은 많은 중법(衆法)을 낳아 그것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대개 회화란 화가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생각을 좇아서 화법에 따라 표현하는 것이다.

  산천과 인물의 수려(秀麗)함이 잘 조화된 것과 초목 조수(鳥獸)의 성정(性情)과 연못의 정자와 누대(樓臺)의 법도가 그 곡진(曲盡)한 진리에 깊이 들어가 깨닫지 못한다면 마침내 위대한 일획(一畵)의 넓은 법도를 터득할 수가 없다.

  멀리 가는것도 높이 오르는 것도 모두 손마디 하나(膚寸)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이와같이 일획(一畵)은 아득한 천지 자연의 원기(元氣)밖에 있는 것까지 모두 다 거두어들인다. 즉, 억만 필묵선(筆墨線)이 일획으로 시작되지 않는 것이 없고 일획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화가란 오직 일획(一畵)법을 잘 들어 파악하여 그것을 법대로 활용할 뿐인 것이다.

   화가가 이미 일획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면 아직 기교가 미약하다 할지라도 뜻이 명백하여 용필은 거침없이 뜻을 따르고 붓을 잡는 팔이 허하지 않고 붓을 잡는 팔이 허하지 않으면 움직임이 질주하듯 빠르고, 꾸밈새가 자유롭게 반전(反轉)하며, 위치가 거(居)함이 광활(曠闊)하여지며, 붓의 나아감이 재단된 것처럼 기세가 있고, 붓의 거두어들임이 높이 걸려 게양(揭揚)하듯 하여 대상의 형태에 따라 모난 것은 모나게 둥근 것은 둥글게 반듯한 것은 반듯하게 구불구불한 것은 구불구불하게 위로 올라간 것은 올라가게 아래로 처진 것은 아래로 처지게 좌(左)로 된 것은 좌로, 우(右)로 된 것은 우로 하여 마치 깊은 물 흐름과 같고 화염이 타오르듯 자연스러워야 하며 털끝만큼도 어거지로 그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용필(用筆)은 신묘하지 않음이 없어 일획(一畵)법을 꿰뚫지 않을 수가 없으며 또 도리에 들어맞지 않음이 없으며 형태가 곡진(曲盡)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개 원시 상태의 순박함이 스스로 흩어지고 나서 부터 일획(一畵)의 법이 세워졌고 일획의 법이 세워짐으로써 만물(萬物)의 화법이 밝게 나타났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오직 하나의 도로 모든 도를 통하고 있다.]

라고 하였으니 어찌 빈말이겠는가?

[출처] 1. 일획|작성자 진성수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