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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熙,郭思의 林泉高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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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요결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23/09/20 | 조회 0
무릇 구도를 생각하면서 붓을 들 때에는 반드시 천지의 대체(大體)와 합해야만 한다. 천지란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한 척 반쯤 되는 화폭 위에서라도 위쪽은 하늘의 자리로 남겨 두고, 아래쪽은 땅의 위치로 남긴 다음, 중간에 바야흐로 입의(入意)하여 경물을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상의 초학자(初學者)들을 보면, 안(案)에 의거해 붓을 잡고 그려 버린다. 경솔하게 입의하여 감정에 닿는 대로 온 화폭을 칠해 놓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사람의 눈을 꽉 막아 사람의 뜻이 불쾌하게끔 하니, 어찌 소쇄(화면이 깨끗하고 시원한 모습)하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겠으며, 감정의 높고 큼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산수를 그리는 데는 주봉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큰 산의 규모를 먼저 마음속에 생각해 두어야 한다. 주봉이 이미 정해졌으면, 바야흐로 순차적으로 가까운 것, 먼 것, 작은 것, 큰 것들을 그리는데, 그 하나의 경계를 이러한 것에 입각해 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봉이 마치 군신의 상하관계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숲과 바위를 그릴 때에는 먼저 종로(宗老)라고 이름 붙일 만한 큰 소나무의 경우를 마음속에 생각해두어야 한다. 종로가 될 나무가 제작의도로 이미 정해졌으면, 바야흐로 순차적으로 잡목과 풀꽃, 여라(女蘿), 작은 돌멩이들로 그 하나의 산을 이루는데, 이 경우에 종로인 큰 소나무를 본으로 하기 때문에, 종로는 마치 군자와 소인의 관계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산에는 흙이 덮여있는 산이 있고, 돌이 덮여 있는 산이 있다. 원래 흙 산에는 돌이 덮여 있어서 숲의 나무들이 파리하게 솟아 있기 마련이고 돌산에는 흙이 덮여 있어서 숲의 나무들이 살찌고 무성하다. 또 나무에도 산에 있는 나무와 물에 있는 나무가 있다. 산에 있는 것은 흙이 두터운 곳에서는 천 척이나 되는 소나무가 있을 수 있지만, 물에 있는 것은 흙이 얇은 곳이므로 수 척쯤 되는 움돋이 정도의 나무들이 있을 뿐이다. 또 물에는 흐르는 물이 있고, 돌에는 반석이 있으며, 물에는 폭포도 있고, 돌에는 괴석도 있다. 폭포는 비단결같이 숲 밖으로 날아 떨어지고, 괴석은 호랑이처럼 산길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비에는 비가 오려는 모양이 있고, 눈에는 눈이 내리려는 모양이 있으며, 비에는 큰 비가 있고, 눈에는 큰 눈도 있다. 또 비에는 비가 개인 모양이 있고, 눈에는 눈이 개인 모양이 있다. 또 바람에는 급히 몰아치는 바람이 있고, 구름에는 귀운(歸雲)이 있으며, 바람에는 대풍이 있고, 구름에는 가벼운 구름이 있다. 대풍은 모래를 불러 날리고 돌을 밀어 굴리는 형세가 있고, 가벼운 구름은 얇은 비단이나 생견을 끄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주막이나 가옥은 냇가에 의거해 있지, 물굽에 의거하지 않는다. 냇가에 의거함은 물이 가깝기(즉 用水에 편리하기) 때문이며, 물굽이에 의거하지 않음은 수해의 위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혹 물굽이에 의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물이 비록 밀려들어오더라도 반드시 수해가 없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 촌락은 육지에 의거하고 산간에 의거하지 않는다. 육지에 의거함은 농사짓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며, 산에 의거하지 않음은 농경지가 멀기 때문이다. 간혹 산간에 의지한 것이 있는데, 이는 산간에 반드시 경작할 만한 곳이 있는 것이다.
   큰 소나무나 큰 바위는 반드시 큰 언덕이나 큰 비탈 위에 그려야지, 얕은 여울물이나 평평한 물가 모래톱에 그려서는 안 된다.
   일체의 종류에서 붓을 부려야지, 반대로 붓에게 부림을 당해서는 안되며, 일체의 종류에 먹을 사용해야지, 반대로 먹에게 쓰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

   붓과 먹을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월한 일인데, 그 두 가지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면 또 어떻게 절묘하게 제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또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까이로는 여러 서법에서 취하더라도 바로 이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누가 말하기를, 왕우군(왕희지,右軍은 그를 관직으로 일컬은것임)이 거위를 사랑한 것은 (왕우군의) 뜻이 거위가 목을 돌리는 것이 마치 사람이 붓을 잡고 팔을 부드럽게 돌려 글자를 결구하는 것과 같은 것을 취한 데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그림에서 용필하는 법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흔히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왕왕 그림도 잘 그린다”고 말하는 것은 대개 그 팔을 돌려 용필하는 것이 엉키지 않고 자유자재로운 데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혹시 먹의 사용이 어떠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초묵(焦墨: 濃墨보다 진하게간 묵즙)을 쓰고, 숙묵(宿墨: 갈아둔 먹물이 하룻밤을 지난 것을 말한다. 하룻밤이 지났으므로 오염되기 쉬워 언제나 화가가 채용하는 것은아니다)을 쓰며, 퇴묵(退墨: 숙묵에서 가라앉은 먹찌끼,즉 먹의 윤기가없다)도 쓰고 애묵(埃墨: 부엌의 천장이나 솥에앉은 그을음을 물 또는 아교물에 갠 것)도 쓰는데, 그것이 한결같이 만족스럽지 않고서는 한결같이 얻을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벼루는 돌을 쓰기도 하고 질그릇, 동이, 옹기 파편 등을 사용하며, 먹은 정제한 먹이면 되고 굳이 동천이나 서산의(東川과 西山은 중국의 유명한 먹 생산지임) 명품만을 골라 쓸 필요는 없다. 붓은 뾰족한 것, 둥근 것, 엉성한 것, 섬세한 것, 바늘 같은 것, 솔 같은 것을 사용한다.
   먹을 운용할 때는 어느 때는 담묵을 쓰고, 어느 때는 농묵을, 어느 때는 초묵을, 어느 때는 숙묵을, 어느 때는 퇴묵을, 어느 때는 부엌에서 쓸어 낸 애묵을 사용하며, 어느 때는 청대(靑黛: 남초<즉 쪽>를 물에 넣어 하루 재운 다음, 석회를넣어수백 번 저어서 물에 뜬 고운 가루를 건져 음지에서 건조한 것으로 약용도 되고 안료로도 쓰인다)를 취해 먹물에 섞어 그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담묵을 사용할 때는 예닐곱 번을 덧칠해서 깊게 하면 먹색이 흠씬 배여 더 윤기가 있으며 메마르고 건조해 보이지 않는다, 농묵이나 초묵을 사용하는 것은 특히 물상의 한계를 표현하려고 하기 위함이니, (예를 들면) 농묵과 초묵이 아니면 소나무의 모난 곳이나 돌 모서리 같은 데가 분명하게 나타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분명하게 그린 다음에 다시 청대를 섞은 엷은 먹물로 몇 번 거듭해서 덧칠을 해 놓으면 묵색이 분명해서 언제나 마치 안개나 이슬 가운데에서 튀어나온 것같이 보인다. 담묵을 몇 차례 돌면서 고루 덧칠하는 것을 일러 ‘간담(幹淡)’이라고 하고, 끝이 뾰죽한 붓을 가로 뉘어서 슬쩍슬쩍 문질러 제치는 것을 일러 ‘준찰’이라고 하며, 물과 먹으로 (먼저 물에 담그고 다음에 먹으로) 두세 번 흠뻑 젖게 칠하여 번지게 하는 것을 ‘선(渲)’ 이라고 하고, 물과 먹을 한 붓으로 휘 굴리면서 듬뿍(물 다음에 먹) 찍어 적셔 죽죽 칠하는 것을 ‘쇄(刷)’라고 한다. 붓 머리를 가지고 똑바로 나아가다가 삐치는 것을 ‘졸’이라고 하고, 붓 머리를 특별히 눌러서 삐치는 것을 ‘탁(擢)’ 이라고 하며, 붓끝으로 콕 찍는 것을 일러 ‘점(點)’ 이라 하는데, 점은 인물에 쓰이고 나뭇잎에도 쓰인다. 붓을 당겨버리는 것을 ‘획(畵)’이라 하고, 획은 누각이나 집에 쓰이고 소나무의 침엽에도 쓰인다.
   눈(雪)의 색은 담묵과 농묵을 사용하여 엷고 진한 것을 표현하되, 단지 먹 색깔의 농도가 한결같지 않게만 칠하면 되고, 안개의 빛깔은 비단 바탕의 본 빛깔을 그대로 두고(안개자리만큼) 담수(淡水)로 그 언저리를 둘러 번지게 하되 필묵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한다. 바람 불 때의 색은 황토나 애묵을 사용하면 되고, 흙 빛깔은 담묵과 애묵을 사용하면 된다. 돌은 청대를 먹에 섞어서 사용하되 깊고 얕음을 나타내야 하고, 폭포 그림 그리는 비단의 원래 빛깔을 사용하되 (즉 원래의 빛깔을 폭포만큼 칠하지 않고 놓아두되) 단지 그 좌우 쪽을 초묵으로 그리면 된다.
   물의 색은 봄에는 초록색, 여름에는 푸른 색(碧), 가을에는 청색(靑), 겨울에는 흑색(黑)이고, 하늘 빛은 봄에는 밝고, 여름에는 푸르며, 가을에는 맑고, 겨울에는 어둡다.

   화실은 반드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여야 하며, 넓고 깊숙한 처소라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뜻과 생각, 즉 마음의 자세는 반드시 구저분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며, 정신이 너그럽고 그림 그리는 뜻은 활짝 펴져 있어야 한다. 두보의 시에 “5일 만에 강 하나 그리고, 10일 만에 돌 하나 그렸도다. 능사라도 재촉을 받지 않아야 왕과 재상이 비로소 진품으로 거둘 만 하게 되도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것을 터득한 말일 것이다. 한 가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리더라도 각각 시작과 끝이 있고, 또 새벽과 저녁의 분별이 있으므로, 온갖 사물의 뜻 과 색조는 분석하여 이해해야 마땅하거늘, 하물며 그 사이에 또 각기 개성적인 풍취가 있음에랴! 기타의 경우에도 사계절에 관한 것을 늘 유의해야 하고, 경서(經書)와 역사서, 제자서(諸子書) 중에 보이는 고사 같은 것을 그리는 경우에도 또 모름지기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적당하게 처리하면 된다.
(사계절에 따른 풍물의 분별을 말하자면) 가령 봄에는 이른봄에 구름이 있는 경치(早春雲景), 이른봄에 비내리는 경치(早春雨景), 녹다 남은 눈이 있는 풍경(早春殘雪), 이른봄에 눈이 개인 경치(早春雪霽), 이른봄에 안개비 내리는 경치(早春烟雨), 이른봄에 찬 구름이 낀 모습(早春寒雲), 비 내리려는 봄 모습(欲雨春), 이른봄 저녁 풍경(早春晩景), 새벽 봄 산(曉日春山), 봄에 비올 듯 구름이 낀 모습(春雲欲雨), 이른봄 안개와 아지랑이(早春烟靄), 봄에 산골짜기에서 피어 오르는 구름(春雲出谷), 시냇가에 가득 서린 봄김(滿溪春溜), 봄비와 봄바람(春雨春風), 빗겨 부는 바람과 가랑비(作斜風細雨), 봄 산의 밝고 고움(春山明麗), 하얀 두루미 같은 봄 구름(春雲如白鶴) 같은 것들을 말할 수 있는데, 모두 봄 경치의 제목이 된다.
   여름에는 맑게 갠 여름 산(夏山晴霽), 비 개인 여름 산(夏山雨霽), 비바람 부는 여름 산(夏山風雨), 이른 아침의 여름 산행(夏山早行), 여름 산의 숲과 집(夏山林館), 여름 비 오는 날의 산행春雨山行), 기괴한 바위가 있는 여름 산(怪石夏山), 평원경(平遠景)의 소나무와 바위(松石平遠), 비 지나가는 여름 산(夏山雨過), 비 내릴 듯한 짙은 구름(濃雲欲雨), 별안간 부는 바람과 쏟아 붓는 듯한 비(驟風急雨), 여름 산에 비 그치고 구름 돌아감(夏山雨罷雲歸), 여름비가 계곡에 폭포처럼 뿌림, 안개 낀 새벽의 여름 산(夏山烟曉), 여름 산 안개 낀 저녁(夏山烟晩), 여름날 산에 거함(夏日山居), 여름에 기이한 봉우리 같은 구름이 많음(夏雲多奇峰) 등을 말하는데, 이 모두가 여름 경치의 제목이 된다.
   가을에는 초가을에 비 지나감(初秋雨過), 개인 가을의 평원 경치(平遠秋霽)가 있고, 또 가을 산에 비 개인 모습(秋山雨霽), 가을 바람불고 비 개인 모습(秋風雨霽), 가을 구름이 언덕으로 내려가는 모습, 계곡에서 솟아나오는 가을 안개(秋煙出谷), 비가 올 듯한 가을 바람(秋風欲雨) 등이 있고, 또 비가 올 듯한 서풍(西風欲雨), 가을 바람 부는데 내리는 가랑비(秋風細雨)라고도 하고, 서풍이 불며 소나기 내리는 모습(西風驟雨), 가을 저녁의 안개와 산에 낀 안개(秋晩煙嵐), 가을 산의 저녁 모습(秋山晩意), 가을 산의 석양(秋山晩照), 가을 저녁의 평원 경치(秋晩平遠), 멀리 보이는 맑고 깨끗한 강물(遠水澄淸), 가을 저녁의 성긴 숲(疎林秋晩), 숲과 바위가 있는 가을 경치(秋景林石),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가을 경치(秋景松石), 평원경의 가을 경치(平遠秋景) 등 모두가 가을 경치의 제목이 된다.

겨울에는 눈이 내릴 듯한 찬 구름(寒雲欲雪), 음침한 겨울에 펑펑 내리는 눈(冬陰密雪), 음침한 겨울에 내리는 싸락눈(冬陰霰雪), 빙글빙글 도는 바람과 회오리 치면서 내리는 눈(翔風飄雪), 산골 물 위에 내린 적은 눈(山澗小雪), 사방이 시냇가이고 멀리 눈 내리는 광경(四溪遠雪), 눈 내린 후의 산가(雪後山家), 눈 속의 어부 집(雪中漁舍), 배 떠날 준비를 하며 술을 삼((艤舟沽酒), 눈을 밟으며 멀리 술 사러 감(踏雪遠沽), 눈 온 시냇가의 평원 경치(雪溪平遠)가 있고, 또 바람 불고 눈 내리는 평원 경치(風雪平遠), 산골 물 끊어지고 소나무에 눈 덮힘(絶澗松雪), 소나무들이 있는 집에 취한 듯 마구 내리는 눈(松軒醉雪), 강가 정자에서 바람을 읊조리며 시를 짓는 모습 등이 있는데, 모두가 겨울 경치의 제목이다.
새벽에는 봄 새벽(春曉), 가을 새벽(秋曉), 비 오는 날 새벽(雨曉), 눈 오는 날 새벽(雪曉), 새벽 산에 안개 낀 정경(烟嵐曉色), 가을새벽에 안개 낀 정경(秋煙曉色), 봄 새벽에 아지랑이 낀 정경(春靄曉色) 등이 있는데, 모두 새벽 경치의 제목이 된다.
저녁에는 봄 산의 석양(春山晩照), 비 자나간 후의 석양(雨過晩照), 잔설이 남아 있는 석양(雪殘晩照), 성긴 숲의 석양빛(疎林晩照), 평탄한 개울의 저녁 햇빛(平川返照, 멀리 보이는 강의 석양빛,(遠水晩照)  해질녘 산에 낀 안개와 아지랑이(暮山烟靄), 시냇가 절로 돌아가는 스님(僧歸溪寺), 해질녘 남의 집 문 앞에 도착한 손님(客到晩扉) 등이 있는데, 모두가 저녁 경치의 제목이 된다.
소나무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雙松), 세 그루의 소나무, 다섯 그루의 소나무, 여섯 그루의 소나무가 있고, 괴상한 나무(怪木), 오래 된 나무(古木), 언덕에 드리워 있는 늙은 나무(老木垂岸), 오래된 나무와 키 큰 소나무(古木喬松), 일망송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장수하기를 비는 용도인데, (축수용으로) 푸른 소나무(靑松)와 키 큰 소나무(長松)도 그린다.
나는 일찍이 아버님이 연이어 있는 산에 일망송을 그리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나의 화폭 위에 ‘아득히 멀리 끊이지 않는다(一望不斷)’는 뜻으로 제작하신 것인데, 한 노인이 손으로 눈 앞의 큰 소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죽 휘둘러 바라보는 뜻을 그리신 것으로, 그 노인은 마치 수성노인에게 무엇인가를바치는 사람인 듯 했다.

돌에는 괴이하게 생긴 돌(怪石), 언덕 같은 돌(坡石)이 있다. 소나무와 바위 그림을 그릴 때는 소나무에 구름 드리운 것(雲松)을 같이 그린다. 그리고 숲과 바위를 그릴 때는 숲과 나무를 겸하여 그리며, 가을 강의 괴석 그림은 괴석이 가을 강에 있도록 그린다. 강 위에  꽃과 갈대의 운치를 그리려면 원근을 서로 비치고 어울리게 한두 군데에 그릴 수 있다.
구름에는 골짜기 입구에 가로놓여 있는 구름(雲橫谷口), 바위 사이로 솟아나오는 구름(雲出岩間), 산 굴에서 솟아오르는 흰 구름(白雲出岫), 고개를 넘어가는 가벼운 구름(輕雲下嶺) 등이 있다.
 안개에는 골짜기 입구에 가로놓인 안개(烟橫谷口), 계곡 위로 안개 피어 오르는 정경(烟出谿上), 평평한 숲 위에 깔린 저녁 아지랑이(暮靄平林), 흰 비단을 끄는 듯한 가벼운 안개(輕烟引素), 봄 산에 낀 안개(春山烟嵐), 가을 산의 안개와 아지랑이(秋山烟靄) 등이 있다.
물에는 굽이도는 계곡에 급히 떨어지는 폭포, 소나무와 바위 가운데 급히 떨어지는 폭포, 구름으로 가리운 고개에서 날아 떨어지는 샘(雲嶺飛泉), 빗속의 폭포(雨中瀑布), 눈 속의 폭포(雪中瀑布), 안개 낀 계곡 위의 폭포(烟溪瀑布), 구름 낀 시내에 낚싯배가 있는 정경(雲溪釣艇) 등이 있다.

그 밖에 강 마을에 있는 어부의 집(水村漁舍), 높은 곳에 의지하여 김매는 광경을 바라봄, 평평한 모래 위에 내려앉는 기러기(平沙落雁), 시냇가에 놓여 있는 다리 옆 술집(溪橋酒家), 다리 위의 나뭇군(橋梁樵子) 등이 있는데, 모두 그 밖의 그림 제목이 된다.
 
2023/09/20 0 3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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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0 1 회화의 요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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