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읽다, 그리고 쓰다
아트코리아 | 조회 475
10월, 독서의 계절입니다. 이맘때면 누구나 조금씩 심오해지죠. 오죽하면 ‘나무도 생각하는 자세로 서 있는 것 같다’고 시인은 적었을까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윤두서의 현손인 윤종문에게 다산이 이런 글을 보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 굶고 살 수는 없으니 원포 경영을 통해 기본적 생계의 문제를 해결해라. 그 방법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생계는 안 돌보고 공부만 하겠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그렇지만 생계를 위해 공부를 놓겠다는 것은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것과 같다. 너를 구원해 줄 것은 오직 독서뿐이다.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려느냐?”

여기에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의 ‘다산교육법 돼지의 즐거움’ 속에 있는 글을 좀 더 적어 봅니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산다. 추운 겨울에는 갖옷을 입고 더운 여름에는 잠자리 날개 같은 고운 베옷을 입는다. 이렇게 살면 흡족할까? 비취새와 공작새도 비단옷을 입고, 여우와 살쾡이, 담비와 오소리도 갖옷을 입는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렇다면 맛난 음식은 어떤가? 끼니마다 산해진미가 밥상에 오르고, 기름진 고기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평생 배고픈 줄 모르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기를 배불리 먹는 것은 범이나 표범, 매나 독수리 같은 짐승들이 늘 하는 일이다. 대단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어여쁜 미인의 가무 속에 늘 잔치하며 근심을 모르고 산다면 어떨까? 그것도 허망하다. 미인의 고운 자태는 얼마 못 가 주름이 지고, 흥겹던 음악과 즐겁던 자리는 자취도 없다. 절세의 미녀도 물고기가 보면 놀라 달아나기 바쁘다. 평생 먹이만 보면 주둥이를 박아대는 돼지의 삶이 그토록 부러운가? 그 옛날 부자 석숭의 별장이 있던 금곡에서의 흥겨운 잔치와 소제에서의 즐거운 자리에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가?

우리가 믿을 것은 독서뿐이다. 책 속에는 없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 성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고, 백성을 교화할 수도 있다. 귀신의 일을 알 수가 있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도 있다. 책을 통해 우리를 들어 올리면 무엇이든 다 할 수가 있다. 그저 배부르고 등 따스운 돼지의 삶에 더는 눈길을 주지 않게 만든다. 

나는 네가 독서를 통해 대체를 기르는 대인이 되면 좋겠다. 의복과 음식을 탐하고 여색에 마음을 빼앗기는 소인배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불뚝이 부자로 살다가 죽은 몸뚱이가 식기도 전에 이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짐승일 뿐이다. 그런 짐승의 길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게 되기를 바란다.”

독서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말이지만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도 새겨볼 일입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글쟁이들은 다양한 독서와 경험을 글쓰기의 가장 큰 재산으로 꼽지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라’의 삼다(三多)는 글쓰기의 기본인데 그중에 ‘읽기’는 제일 앞자리입니다.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려느냐.’ 가을바람이 지나가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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