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이름, 그 존재와 개념사이
아트코리아 | 조회 471
해마다 새해 첫 신문 지면에 신춘문예나 문학상의 이름을 달고 일제히, 그야말로 풋풋한 문인들이 탄생합니다. 소설을 비롯해 시, 시조, 수필, 아동문학, 평론, 희곡, …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서 참신하고 패기 넘치는 신예작가들이 화려하게 등장하지요. 덕분에 초반부터 저는 ‘이름’에 대하여 한동안 꽤 흥미로운 생각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죠. 자기 이름의 의미에 스스로 만족하는지, 그 이름의 영향을 받는지 또는 이름이 운명을 결정짓는지, 나아가서 그런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되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글쓰기일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국민애송시인 이 시 한편에 ‘이름’이라는 단어가 무려 네 번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의 탐구’라는 철학적 분석을 떠나서 얼핏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해 봐도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특별한 사이이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는 시입니다. 1988년 ‘꽃의 소묘’라는 시집에 실려 있었는데 그 때에 ‘이름’이라는 것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잠시 더듬어봅니다.

올해 영남문학상 시 당선작은 제목이 ‘이름’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개의 보름달이 떠도/ 어둠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서진배 -‘이름’ 부분

김춘수의 시 ‘꽃’ 이후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도 그 ‘이름’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독자들에게 그 이름이라는 것은 저마다 다르게 와닿을 수밖에 없겠지만, 여전히 존재에 대한 탐구로서의 가치는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는 게 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이름이란 그 사람의 본성을 대신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그 이름의 의미가 누군가 지시하거나 지칭하는 호칭보다 자의적, 혹은 자발적인 개념을 갖고자 하는 걸 알 수가 있었지요. 글쓰기가 왜 자신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문득 어느 여가수의 목소리가 생각나네요. ‘네 이름이 뭐니~?’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