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철의 <낙서장>---2025. 6. 1
이태수 시인의 「윤슬에 붙들리다」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물 위에 뜬 구름이 흘러가고
한동안 어슬렁거리던 왜가리도 날아간다
내가 앉아 있는 동안
멈추어 서 있는 것들이 있었을까
알게 모르게 바람이 지나가고
나무와 풀들은 서서도 움직인다
내가 앉아 쉬는 동안
머릿속의 생각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오다가 가고 가다가는 온다
제자리걸음만 하는 윤슬에 붙들린 채
—이태수의 「윤슬에 붙들리다」 전문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 바라보기는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내가 앉아 있는 동안” 그리고 “쉬는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발견과 세밀한 관찰이다. 시의 화자는 어느 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그것을 발견하고 무릎을 친다. 아하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우선 강물이 쉬지 않고 흐르고 그 위에 구름도 떠서 흐르고 왜가리도 어슬렁거리다 날아오른다. 바람이 슬쩍슬쩍 지나가고 그러면 나무와 풀들도 서서 몸을 움직인다. 뿐인가, 내 머리 속의 생각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구나. 그것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오다가 가고 가다가며” 다시 오고 있다. 멈춘 듯하다가 다시 몰려온다. 마지막 행이 재미있다. “제자리걸음만 하는 윤슬에 붙들린 채” 생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윤슬은 쓸데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그 발견이 무슨 새삼스러운 의미가 있을까. 바로 움직임에서 보는 생명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어느 날 시인은 세상 만유가 움직이고 있음을, 그 미세한 움직임이 생명의 찬가임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앉아 있는 자신도 사실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해 낸다. 생각의 움직임은 사실 무척 부지런하다. 거기서 현대 소설의 기법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나왔다. 몸이야 얼마든지 게으를 수 있지 않은가.
신원철(시인,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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