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주의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정서적인 울림으로 느끼게 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저는 ‘현실 인식의 정서화’, ‘상황 의식의 정서화’라는 시법을 강조해 오기도 했습니다만, 시는 어떤 이성적 내용이든 감성적인 옷을 입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수 시인
한 사람의 문학 활동 50년 이력은 생의 속, 사람의 속, 그리고 시의 속까지도 속속들이 알법한 시간이다. 이는 곧 바라보는 모든 풍경과 사람과 장소를 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태수 시인의 시는 대부분 세월에 대한 관조와 무심의 마음이 담겼다. 최근 스물세 번째 시집 《마음의 길》까지 펴내면서도 그는 여전히 마음 비우기를 꿈꾸고 노력한다. 어쩌면 마음을 비울수록 시는 더 채워졌으려니 그에게 시는 화수분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이런 자신의 시 사랑에 대해 “시마詩魔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고 누구나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하면서도 푸근한 시를 쓰는 원로 시인을 만났다.
Q. 먼저 이번 스물세 번째 시집 《마음의 길》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 시집에 대한 평 ‘삶의 근원과 의미를 지성적 사유와 감성적 상상으로 끊임없이 모색’이라는 문장에 마음이 닿았어요. 선생님의 사유와 감성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요.
다소 현학적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오랜 세월 ‘실존-현실-초월’을 기본명제로 시를 써왔습니다. 근래에는 거기에다 ‘관조-관용-순응’이라는 화두를 보태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본래적인 ‘나’, 즉 실존을 찾아 나서면서 비루한 현실 속에서 더 나은 삶이나 그런 세계를 꿈꾸는 ‘현실 초월’을 지향하고 추구했지요. 나이가 들면서는 이를 근간으로 점차 자연이 함축하는 언어에 천착하고 순응하며, 신성을 환기하는 데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됐다고 할까요.
풀어서 말씀드리자면, 초기부터 삶의 이상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내면 탐색을 거듭하면서 현실에 뿌리를 두면서도 ‘지금 여기의 세계’보다는 밝고 투명한 ‘다른 세계’ 즉 ‘이상세계’를 지향했으며, 전도된 진술을 통해 ‘즉자’와 ‘대자’의 위치를 바꾸어 그 세계의 대립보다는 융합을 모색했어요. 그에 한편으로는 ‘비우기’와 ‘지우기’, ‘내려놓기’를 화두로 끌어들인 셈이지요. 시적 사유의 근원은 그런 데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주의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정서적인 울림으로 느끼게 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저는 ‘현실 인식의 정서화’, ‘상황 의식의 정서화’라는 시법을 강조해 오기도 했습니다만, 시는 어떤 이성적 내용이든 감성적인 옷을 입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동안 쓰신 작품 대부분이 ‘비움’에 기반하더군요. 희로애락을 초월한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누구나 욕심은 있게 마련인데요, 시인이 아닌, ‘인간’으로써 그나마 욕심을 부린 일이 있으시다면요.
사람이기 때문에 욕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욕심을 비우고 내려놓는 욕심’을 가지려 하며, 지나치지 않으려는 자기 통어와 비움으로써 차오르는 ‘마음 다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대답이 되겠는지요. 그럼에도 굳이 욕심을 부린다면 적어도 스물다섯 권 이상의 시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지요.
Q. 문학 인생 5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 속에 담긴 마음의 여정은 그 몇 배의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인생에 ‘시’는 무엇일까요.
여전히 생각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제가 여덟 번째 시집 《그의 집은 둥글다》(1995, 문학과지성사)를 내면서 시집 뒤표지에 썼던 글이 있어요. 이 문장으로 대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나의 상상력이나 환상은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꿈에 고리를 달고 있으며, 그 꿈꾸기는 시의 뼈대, 또는 몸집을 만들어준다. 나의 시는 그러므로 꿈꾸기에 다름 아니다. 꿈은 메마른 삶을 적셔준다. 보다 나은 삶을 올려다보게 한다. 그곳에 이르는 사닥다리를 놓아주고, 오르게 한다.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흔들어 가라앉히고,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을 걸어가도록 밀어주고 이끌어준다. 지금, 여기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세계,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세계도 꿈의 공간에서는 반짝인다. 꿈의 공간 만들기, 그 공간에서 살기는 뒤틀리고 추한 몰골을 하고 있는 현실을 뛰어넘게 해준다.”
Q. 선생님 문학에 영향을 끼치거나 철학적 모토로 삼는 작가가 있나요.
저는 문학을 지망하면서 그 바탕을 만들어줄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도 철학과를 다녔고요. 하이데거, 야스퍼스, 키에르 케고르, 마틴 부버 등의 철학에 다가가려 애썼으며 카뮈, 사르트르의 문학에 빠져들기도 했지요. 특히 하이데거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문학도 시절에는 박목월, 조지훈, 김춘수 선생님의 시를 좋아했고, 더 가까운 선배 시인으로는 황동규 선생님의 시를 부러워했지요. 세련된 언어 감각의 김춘수 선생님 시,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면서도 지적인 면이 매력적인 황동규 선생님 시의 영향이 은연중에 스며들었다고 할까요. 조지훈 선생님은 시인으로서의 롤모델이며, 황동규 선생님과는 자주 못 만나지만 여전히 가까운 사이입니다.
Q. 인공지능이 시를 대신 써주는 세상이 왔어요. 여기엔 찬반양론이 분분합니다만 ‘문학’과 ‘쓴다’는 것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요.
저는 ‘모방설’보다는 ‘영감설’에 동의하며, 두보와 이태백 중에서도 이태백에 더 끌리는 편입니다. 언젠가 한 문학지가 시의 첫 행의 의미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첫 행은 운명’이라는 분도 있고 ‘큰 의미가 없으며 추고 과정에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는 분도 있었어요. 저는 첫 행만 쓰이면 대체로 한 편의 시가 쓰입니다. 제가 다작인 것도, 시를 만드는 것보다는 쓰는 편이기 때문일 겁니다. 즉흥적이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쓰이는 ‘마음의 그림’이기 때문이겠지요. AI가 대신 써준 시에 과연 영감과 영혼이 깃들까요.
Q.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좀 난해해요. 그러다 보니 여전히 ‘시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고요. 추구해야 할 시의 방향성에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시가 어렵다’는 건 말의 느낌, 함축, 어조 등이 산문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미묘하며, 문맥이나 논리의 비약이 심할 때도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말의 쓰임새가 우의적이거나 상징적이고, 이차적·삼차적 의미를 띄는 경우가 있어 고도의 추리력, 상상력, 직관력, 감수성이 요구되기도 하니까요.
하이데거는 시어는 존재를 드러내는 언어, 존재의 ‘부름’에 대한 시인의 ‘응답’, 다시 말하면 ‘언어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시의 언어는 지시적 기능에 머물지 않고 ‘언어가 의미의 본체’가 된 적극적, 창조적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시를 까다롭게 만드는 건 은유와 상징 기법 때문이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 시인들 가운데는 이런 기법들을 넘어 지극히 개인적인 은유나 상징으로 기울거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폐쇄 회로’의 시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더군요. 그러니까 소통이 잘될 리가 없지요. 그러니 난해시는 풀기가 어렵지만, 사이비 난해시는 풀리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Q. 요즘 상상 이상의 경악할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런 때일수록 시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를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며,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소설가’ 등 ‘사람 인(人)’이 아니라 ‘집 가(家)’ 자를 붙이지요. 모든 예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 대목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시는 정치처럼 바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공자가 말했듯이 ‘사무사(思無邪)’와 같은 시인의 정신세계를 감성적으로 느끼게 해야겠지요. 앞서도 말했듯이, 시는 주장하는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지만 이 ‘부드러움의 힘’은 언제까지나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문학 외에 다른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신지요.
내게 문학은 ‘시’겠지요. 그 외에는 크게 무게를 싣는 계획이나 목표가 없습니다. 물이 흐르듯이 살아가면서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부단히 꿈꾸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나’를 찾아 나서는 게 선행 돼야 하리라고 봅니다. 저는 지금도 잃어버린 ‘나’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시인과의 대화는 우람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까지 품고 있는 노거수 한 그루를 바라보는 듯했다. 각박한 혼돈의 시간 안에서 ‘나’를 잃어가는 우리에게 시인은 말한다. “채우려고 하기보다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물이 흘러가듯이 구름이 가듯이 주어진 길, 거스리지 않고 갔으면 한다.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서”라고.
이태수 시인은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그의 집은 둥글다》 《먼 여로》 등 20여 권, 시전집 《잠깐 꾸는 꿈같이》, 시론집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 《여성시의 표정》 《성찰과 동경》 등을 발간했다. 대구시문화상(문학).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상화시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매일신문 논설 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출처 : 문학인신문(http://www.munhaki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