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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그린향-시의 속삭임 2025. 12. 16
아트코리아 | 조회 375
그린향-시의 속삭임 2025. 12. 16
 
2020년대 시집과 시


 

우주와 나 / 이태수
 

숨을 들이쉬면
바깥이 내 안으로 숨을 내쉰다
내가 숨을 내쉬면
바깥이 어김없이 나를 들이쉰다
 
나와 우주는 들숨날숨의 관계,
이 관계를 모르고
나는 속절없이 애태운 것일까
 
우주와 내가 하나인 줄 모르고
헤매기만 한 걸까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언제나
겉돌아온 걸까
- 시집 『유리창 이쪽』 문학세계사, 2020, 27쪽
 
 
이 시는 거대한 우주를 설명하거나 나의 주체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별과 공간과 시간을 확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시는 이미 우주에 닿아 있습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가장 위주하고 사적인 행위를 통해 시인은 나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이 시에서 우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숨이 오가는 자리,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첫 문장은 매우 단순하지만 심오합니다. “내가 숨을 들이쉬면 바깥이 내 안으로 / 내가 숨을 내쉬면 바깥이 어김없이 나를 들이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숨’이 일방향이 아니고 교환하며 쉰다는입니다. 우리는 보통 숨을 ‘내가 이행하는 행위’로 생각하지만, 시인은 숨을 쉬는 순간마다 바깥 또한 나를 향해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즉, 호흡은 개인의 생리 현상이 아니라, 나와 세계가 끊임없이 서로를 오가며 이어지는 관계적 행동입니다. 이 구절에서 이미 ‘나’와 ‘우주’의 경계는 희미해집니다. 숨은 몸 안에만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계속 교차하며 붙어있는 그 지점인 것이죠.
“나와 우주는 들숨날숨의 관계”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명제인데요. 시는 나와 우주를 ‘대립’이나 ‘대상’의 관계로 보지 않고, 하나의 호흡을 나누는 순환적 관계로 규정합니다. 들숨이 없으면 날숨이 없고, 날숨이 없으면 들숨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나와 우주는 서로를 전제로 하여 존재합니다. 이것은 인간을 우주 속의 작은 점으로 축소시키는 관점도 아니고, 반대로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세우는 관점도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 되는 공존의 구조인 거죠.
“이 관계를 모르고 나는 속절없이 애태운 것일까” 이 질문은 존재론적 후회에 가깝습니다. 시인은 고통의 원인을 외부나 운명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이미 연결되어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던 그 무지를 문제 삼습니다. ‘애태움’은 외로움, 불안, 소외, 허무를 모두 포함하는 감정입니다. 이 감정은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발생하는데요, 시인은 이제 깨닫습니다. 자신이 괴로웠던 이유는 우주가 멀어서가 아니라, 이미 숨결을 나누고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주와 내가 하나인 줄 모르고 헤매기만 한 걸까” 여기서 ‘하나’는 동일성(identity)이 아니라 연결성(unity)에 가깝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우주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우주와 끊임없이 이어진 상태임을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헤맨다는 것’은 목적 없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길 위에 있으면서도 길을 모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저처럼 길치 같은 것이죠. 이 시의 방황은 어떤 실패라기보다, 관계를 자각하기 이전에 필연적으로 대기하는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언제나 겉돌아온 걸까”라는 구절은 밖에 있어도 소속되지 못하고, 안에 있어도 안착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현대인의 전형적인 존재 결핍인데요. 사회 속에서도, 자기 내면에서도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채 떠도는 감각. 시인은 이 겉돎의 원인을 다시 ‘분리의 착각’으로 돌립니다. 안과 밖을 나누는 순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이 시작되니까요.
이 시에는 분명한 우주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별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물리적 거리와 공간의 우주가 아니라, 숨을 매개로 한 관계적 우주관입니다. 이 우주관은 동양 사유와 연결되는데요, 가령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도가의 기(氣), 현대 생태철학의 상호의존성이 그거십니다. 존재는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숨처럼 오가며 연결되는 관계의 그물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우주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알아야 할 것은 우주를 이해하려 애쓸 필요도, 자기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이 단만 우리가 숨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인 것이죠. 전체를 요약하면 이 시는 내가 우주라 내세우지 않아도 나는 이미 우주였어라고 말해주는 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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