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    업데이트: 26-01-16 10:40

칼럼-8

[이태수 칼럼] 희망과 행복의 조건
아트코리아 | 조회 63

[이태수 칼럼]
희망과 행복의 조건

 
경북신문  2026/01/16


 
새해를 맞으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복 많이 받으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건강을 바라는 새해 인사를 앞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누리고 싶어 하며,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건강이 중요한 복이기 때문일 터이다.

아마도 복이 많아서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마음가짐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떤 일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족과는 언제나 먼 거리에 있거나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설파한 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견해를 펴왔지만,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양각색이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성공을 꿈꾸는 것 자체를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학’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예전에는 국가의 경제 성장이었으나 이제는 개인의 삶의 질로 바뀌고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나 크고 작은 공동체보다는 자기중심의 이기주의와 그런 개인주의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인 듯하다.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 역시 인간이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견디고 넘어서기 위해 만든 가상현실일는지도 모른다. 바라는 바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도연명의 ‘무릉도원’, 허균의 ‘율도국’은 영원한 행복을 꿈꾸는 인류의 이상향들이나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을/이상향이라고 하는 걸까요/그곳으로 가보려고 아무리 애써도/언제나 꿈속에만 머무는 곳이라서/목마르게 꿈을 좇아 그 먼 나라에/다다르고 싶어지는 걸까요//그제도 오늘도 마찬가지나/못 가더라도 가보려고 나서봅니다/그런 꿈이라도 좇아가지 않는다면/벼랑 아래로 굴러내리고 말는지요/나의 한갓된 이 꿈꾸기는/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걸까요 ―자작시 ‘이상향’ 전문

이 소박한 시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마음의 작은 그림이지만,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이상향을 꿈꾸며 살아가려는 심경을 담아보았으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런 삶과 세상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고 싶은 열망을 낮은 목소리로 읊은 경우이다. 인간은 그런 이상향을 꿈꾸며 살아가려 해도 어쩌면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이 정신적으로는 운명과도 같은 ‘무명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모른다.

산 넘으면 산이,/강은 건너면 강이 기다린다/안개마을 지나면 또 안개마을이,/악몽 벗어나면 또 다른 악몽이//내 앞을 가로막는다//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이/잠자도 깨어나도 산 첩첩 물 중중/아무리 가도 제자리걸음이다//눈을 들면 먼 허공//그래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안개 헤치며 마을을 지나 마을로/악몽을 떨치면서 걸어간다/무명 길을 간다.
―자작시 ‘무명(無明) 길’ 전문

어떤 시인은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고 말한 바 있으며, 불가(佛家)에서는 인생길을 ‘무명’ 속이라고 ‘시시포스의 형벌’과는 달리 설파했다. 동양과 서양의 시각차는 있어도 인간은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은 마찬가지다. 

인간은 현실을 넘으려고 하고 넘더라도 또 다른 현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없으며, 도로(徒勞)의 연속이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옛날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자기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진다고 한다. 행복에 대한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려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라면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나부터’ 희망도 행복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타적이고 겸허한 마음가짐과 그런 꿈꾸기에 달려 있지 않은지 자성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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