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6    업데이트: 26-03-26 10:06

언론 평론

[경북신문]이태수 시인 24번째 시집 ‘후창’...꿈의 시학으로 빚은 서정의 정점 2026.03.26
아트코리아 | 조회 69

반세기 시력의 정수, 꿈의 깊이를 더한 시적 우주 펼쳐
78편의 사유적 시...찰나와 영원, 비움과 채움으로 화엄의 시 묶어 




꿈만이 고단한 우리의 삶을 견뎌 가게 하며 꿈꾸는 자만이 경직된 사유를 넘어서서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존재임을 시사하는 시집 한 권이 나왔다.

이태수 시인이 반세기 시력의 정수인 스물네 번째 시집 ‘후창(문학세계사)’을 펴내며 다시 한번 ‘꿈’의 시학을 밀도 있게 펼쳐 보였다.

꿈꿔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가 있고 비워야 차오르는 것들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번 시집에는 ‘함월산’, ‘달 판타지아’, ‘적멸궁 한 채’, ‘오래된 탁상시계’, ‘맥문동꽃’ 등 총 78편의 시가 실렸다. 지난해 출간한 ‘마음의 길’ 이후 이어진 이번 시집은 삶과 꿈, 시간과 존재에 대한 시인의 사유를 더욱 깊고 유연한 결로 확장해낸 결과물이다.

시인은 “오늘이 마지막 날같이 첫날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즈음 시는 그런 마음의 그림이며 낮은 꿈의 무늬와 곁들”이라고 말한다.

이태수 시인에게 삶은 곧 꿈이며, 시는 그 꿈속의 또 다른 꿈이다. 그는 찰나와 영원에 대한 명상을 통해 조화와 생성의 철학, 나아가 화엄적 사유에까지 닿는다. 그의 시 세계에서 펼쳐지는 공간은 현실을 넘어선 ‘꿈의 공간’으로 이곳에서 시간은 고유한 방식으로 순환하고 뒤섞이며 시인의 삶과 내면을 매끈하게 봉합한다.

문학평론가 박진임은 해설에서 “비우는 것이 곧 채움이라는 것을 알고 길이 이끄는 길을 나서는 삶, 그것이 바로 이태수 시인의 모습”이라고 총평했다.

비움과 채움, 앎과 모름, 찰나와 영원 같은 이항 대립의 경계를 허무는 시인의 시도는 이번 시집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작은 꿈’은 이태수 시인의 시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방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시적 화자는 찰나의 삶 속에서 반짝이며 결국 꿈으로 스며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담담히 노래한다.

이러한 시적 세계는 서구 시학의 상상력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와 비평가 헬렌 벤들러가 말한 ‘제3의 행성’으로서의 상상력은 이태수 시인에게 ‘꿈’이라는 언어로 치환된다. 시인은 꿈으로 이뤄진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독자들을 그 낯선 공간으로 초대한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에 대한 독창적 인식이다. ‘오래된 탁상시계’에서 드러나듯, 그의 시 속 시간은 '가다가 말다가' 하는 불연속적 흐름을 보인다. 이는 현실의 선형적 시간관을 거부하고 꿈의 시간, 즉 순환하고 겹쳐지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이태수 시인의 시 세계는 또한 자연에 대한 깊은 응시에서 비롯된다. ‘맥문동꽃’에서는 폐허가 된 옛집 터에 피어난 꽃을 통해 기억과 상실을 끌어안고 ‘적멸궁 한 채’에서는 떠내려가는 단풍잎 하나에 생의 종착과 초월을 겹쳐 놓는다. 이처럼 그의 시는 자연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길어 올리며 서정과 철학을 동시에 성취한다.

‘해종일 후렴만 부른 걸까/ 대자연의 노래를 새겨들으면서/ 마음에 아로새겨진 구절만 노래했던가// 어제도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 후창만 하게 될는지 몰라// 자연은 언제나 나를 품어주고/ 한결같이 그윽한 노래를 들려주므로,/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오르고// 새들이 날아와 꽃잎 위에/ 아름다운 노래를 포개 주지만// 나는 그 후렴만 따라 부르고 있었던가/ 자연의 노래는 한량이 없으므로/ 후창만 해도 좋은 것일까//’ -‘후창(後唱)’ 전문.


이태수 시인.

무엇보다 이번 시집은 ‘후창(後唱)’이라는 태도를 통해 시인의 존재 방식을 드러낸다. 자연의 노래를 앞서 부르기보다 그 울림에 화답하며 뒤따르는 삶은 세계를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시인의 윤리이자 미학이다.

꿈을 통해 삶을 견디며 다시 꿈꾸는 존재로 남는 것. ‘후창’은 바로 그러한 이태수 시인의 오랜 시적 여정이 도달한 또 하나의 깊은 울림이다.

이태수 시인은 1947년 경북 의성 출생으로 1974년 현대문학에 등단했다.  시집 24권, 시선집, 시론집 등 다수를 펴냈다. 한국시인협회상, 상화시인상, 천상병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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