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시인...자연의 순리와 동행, 사랑의 가치 담담하게 노래
사랑 노래의 다채로운 변주 돋보여, 62편의 시와 사진 17점 실어

이형순 새 시집 행선지 표지.
'그대가 나를 부르고/ / 깍지 끼고 나란히/ 꽃비 마중 가리//' -이형순 시 '꽃비 마중' 중에서.
팔순의 이형순 시인이 지난해 첫 시집 '여자의 꿈'에 이어 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행선지'를 세상에 내놓으며 다시 한 번 삶과 사랑의 편지를 띄웠다.
시력 저하 등 건강 악화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시를 놓지 않은 그는 “오로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또다시 편지를 띄우듯 두 번째 시집을 낸다”고 전했다.
도서출판 그루에서 펴낸 이번 시집 '행선지'는 자연과 사람을 향한 사랑 노래의 다채로운 변주로 읽힌다. 시집에는 '꽃 궁전', '천지삐까리', '꽃비 마중', '바라기같이', '그대와 나', '이별 연습' 등 모두 62편의 시와 함께 사진 작품 17점도 곁들였다.
이번 시집은 자연과 사람을 향한 사랑을 중심으로 기다림과 갈망, 화해와 동행, 삶과 이별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화려한 수사를 덜어낸 간명한 시어 속에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시선이 깊게 스며 있다. 그래서 세상과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심은 오히려 단단해져 도저하다.
표제작 '행선지'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바람이 말한다/ 부는 대로 간다고/ 강물은 말한다/ 흐름을 따라간다고/ 사랑은 말한다/ 너에게로 간다고//'
짧은 시 속에서 바람과 강물은 자연의 순리를 말하고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마음임을 일깨운다. 시인은 자연의 흐름을 삶의 이치로 받아들이며 사랑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행선지임을 노래한다.
시집 곳곳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다. '꽃 궁전'에서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순간뿐 아니라 비를 맞으며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까지도 '꽃 궁전의 초대'로 받아들이며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한다. '꽃비 마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꽃비를 맞이하는 환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장면을 그려낸다.
사랑은 기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갈망'은 '왔노라고/고백하고 싶다'는 절절한 그리움을, '기다림'은 만남보다 기다림 자체를 삶의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마음을 담아낸다. '이별 연습'에서는 피고 지는 꽃을 통해 삶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 속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시 해설을 맡은 이태수 시인은 “첫 시집의 연장선에서 오랜 체험이 녹아든 깨달음과 꾸밈없는 지혜를 보여주면서도 투명성과 여백의 미가 한층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형순의 시는 외경과 감사의 대상인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이루지 못한 소망마저 따뜻하게 끌어안는 겸허한 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946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형순 시인은 대구여고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지난해 첫 시집 '여자의 꿈'으로 등단했으며, 대구 YMCA 합창단과 대구 레이디스코러스 합창단 단원 등으로도 활동해 왔다.
새 시집 '행선지'는 팔순의 시인이 여전히 사랑을 향해 걸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기록으로, 독자들에겐 그늘진 삶 마저 끌어안는 겸허한 마음자리 한켠을 마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