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0    업데이트: 26-08-19 12:51

칼럼-8

[이태수 칼럼] 모나리자의 ‘미완의 미소’
아트코리아 | 조회 165
[이태수 칼럼]
모나리자의 ‘미완의 미소’

경북신문 2026.08.19

 
며칠 전, 이번에 낼 스물다섯 번째 시집 원고를 출판사와 해설자에게 보내면서 이 시의 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아리기도 했다. 시집 첫머리의 ‘시인의 말’에 “가듯 말 듯 가는 길을 가기는 간다./마음과 달리 어디 닿을지 모르지만/꿈꾸면서 나서는 먼 길이다.”라는 구절을 넣고, 맨 앞에 ‘지금 여기’라는 시를 배치했지만, 한편으로는 진정 스스로 마음에 드는 시가 언제 쓰일지 아득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을 바라보기 전에 뒤가 돌아보인다/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이 길이라서/지난 길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인 것 같다//가기는 가지만 어디로 가는지/언제까지 갈 수 있을는지도 모르는 데다/뒤돌아볼 때 내가 잘 보이기도 해서 그럴까//나를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오리무중/어디에 가서 찾게 될지 막막하고/가다 되돌아온 적도 다반사 아니던가//그러니 앞을 내다보기보다 먼저 되돌아보고/가보아도 역시 거기가 거기일 뿐 아니라/어디에 이를지도 모르는지라//오늘을 첫날이자 마지막 날 같이 맞으면서/지금이 최선의 때가 되기를 기대하므로/오늘 여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진다” ―‘지금 여기’ 전문

늘 미흡하다는 생각 때문에 이 시도 쓰게 된 것 같다. 이쯤이면 되었을 것 같다거나 이젠 흔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는 그 지점을 ‘완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최선을 다하더라도 더 손볼 것이 없거나 더 이룰 경지는 언제나 남게 마련이지 않을까.

일찍이 석가(釋迦)는 늘 살피고 돌아보고 멈추었을 뿐 완성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수행하면서 괴로움이 다시 일어나는지, 집착이 다른 얼굴로 나타나지는 않는지, 마음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를 계속 돌아보았다. 언제나 마지막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돌아보고 살피며 잠깐씩 멈추기만 했을 따름이다.

어떤 일이든 완성됐다고 느끼는 순간 경계가 풀리고 살핌은 느슨해진다. 그 틈으로 익숙해진 습관이 돌아오고, 그 이전보다 더욱 교묘한 집착이 고개를 들게 되기도 한다. 안주(安住)는 그만큼 위험과도 마주치게 할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앉고 숨을 쉬고 바라보며 걷지만, 기실은 그 순간순간이 새롭게 갱신된다고 볼 수 있다.

완성에 가까워지려고 최선을 대해도 언제나 그 도정(道程)에 있으며, 마침표를 찍는 바로 그 순간 앞으로 나아갈 여지를 지워 버린다. 석가의 길이 언제나 현재형이었듯이, 지금의 순간순간이 다시 서고 걷는 도정이다. 같은 자리에 머물 경우마저 앞으로 나아갈 그 중심에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는 젊고 아름다운 스물네 살의 부인이 모델인 그림으로 알려진다. 부유한 상인이 아내인 리자 델 조콘도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해서 그리기 시작한 지 3년이 흘러도 완성하지 못한 ‘미완의 초상화’로 전해진다. 다 빈치는 리자의 눈빛에 묘한 슬픔과 온기가 함께 느껴져 미소 지을 때의 모습을 좀체 그리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초상화가 거의 완성 단계였을 때 리자가 남편을 따라 석 달 예정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게 돼 마무리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여행 직전의 리자가 그림 제목을 무어라 붙일지 궁금해 묻자 다 빈치는 ‘모나리자’라고 부를까 한다고 답했다. 그때 리자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는데 여인을 높이고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나’는 ‘마돈나’를 뜻하므로 리자는 수줍게 미소 지었으며, 다 빈치에게는 그 미소가 영감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리자는 여행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다 빈치는 그녀가 없는 빈 의자를 마주한 채 수없이 붓을 들었지만 더 이상 그 미소를 그릴 수 없어 결국 ‘미완의 미소’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과연 완전한 완성이 있을까. 어떤 일이든 뭔가 미완의 부분이 남게 마련이므로 최선을 다하다가 멈추게 되면 그것이 ‘미완의 완성’일는지 모른다. ‘모나리자’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건 어쩌면 그 ‘미완의 미소’ 때문이 아닐는지. 몇 년 전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본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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