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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0

2006년 08월 29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나라는
이태수 | 조회 473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나라는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면서 살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가정과 일터, 사회와 나라, 나아가서는 이 지구촌도 규모가 다른 공동체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울타리는 ‘나’만 생각할 때 문제가 생긴다. 예측할 수 없는 不協和音(불협화음)들이 빚어지고, 불상사가 터지게 된다.

특히 利害得失(이해득실)을 따져 자기 이익만 챙기면 ‘나’와 ‘너’ 사이를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대화의 징검다리를 허물 뿐 아니라 서로 헐뜯고 모략하는 ‘무서운 敵意(적의)’를 자초하게 마련이다. 가정에서의 天倫(천륜) 배반, 일터의 불신과 적대행위가 그것이며, 단위가 커질수록 엄청난 비극이 야기될 수도 있다.

‘개미구멍 하나가 못둑 무너뜨린다’는 말이 이르듯이, 이해와 화해 없이 상대를 비판과 비난만 한다면 부정?혐오?증오 등을 증폭시키고, 큰 災殃(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찍이 ‘易地思之(역지사지)’라는 말이 생기게 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말이 일컫고 있는 바와 같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만나면서는 상대의 처지와 형편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미덕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럴 때 세상은 대체로 태평성대를 누렸다. 하지만 이 같은 ‘자기 이해’와 ‘타자 이해’의 자세는 갈수록 허물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즘 나라 사정을 바라보면, ‘더불어 살기의 포기’로 가는 느낌이다. 가장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진 정부는 그야말로 ‘나쁜 데로 가기’ 작정이라도 한 건지, 漸入佳境(점입가경)이다. 어쩌면 ‘산 넘어 산’이요, ‘四面楚歌(사면초가)’라는 말마저 부족할 정도다.  

온 나라를 ‘바다이야기’에 빠뜨린 듯한 ‘도박 狂風(광풍)’, 불안과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戰時作統權(전시작통권) 단독행사(환수) 논란을 비롯한 安保(안보) 문제, ‘코드?낙하산?회전문’으로 불리는 人事(인사)의 연속, 여전히 뒷전으로 밀리는 民生(민생) 문제…. 헤아리기조차 민망스러운 삐걱거림의 끝이 보이기는커녕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부는 ‘나’만 생각하고 ‘끼리끼리’만 내세우고 있어 질식해 버릴 지경이다.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통보한 대로 전시작통권이 2009년 우리 군에 이양된다면 과연 얻는 게 무엇일까. 동맹을 잃고 기하학적 돈 부담과 국민 불안만 가중되지 않을는지….

자기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남을 이해할 수 없게 돼 있는 게 세상 理致(이치)다. 스스로를 준엄하고 냉엄하리만큼 분석하고 비판해 봐야 남들이 드러내는 약점이나 실수도 끌어안을 수 있다. 지금 정부는 그런 寬容(관용)은 물론 민심마저 아랑곳없는 듯하다. 심지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여당의 소리까지 안 들으려 하는 ‘傲氣(오기)’로 가는지, 이 나라가 어디로 가도 좋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관용을 실천으로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政權(정권)을 놓고 ‘살기 아니면 죽기’로 여기고 살려고만 한다면 생각해볼 대목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경쟁사회이니까 인정과 이해가 더욱 요구되고, 그것이 잘 구현돼야 번창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가능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죽기로 힘쓰면 살 수 있다’는, 바로 그 역설적인 미덕이 되레 우리가 사는 길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忠誠心(충성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통적 미덕이었다. 외국 사람들은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했다. 따져보면 이런 마음이 허물어져 나라가 더욱 어지러워진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높은 어른에 대한 성실한 순종과 봉사 정신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며, 위와 아래의 상호 이해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불가능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꼬인 매듭들을 풀어 나가야만 한다.

‘늦다고 생각될 때가 빠르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더불어 더 잘살려면 ‘역지사지’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더구나 나라가 어지럽고 심하게 꼬여 있어 그 매듭을 만든 쪽부터 풀어 나가는 ‘結者解之(결자해지)’의 자세가 보태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우랴. 이런 쓴소리로 또 원망만 사게 될까, 두렵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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