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4,721    업데이트: 12-07-27 10:43

회화나무 그늘

회화나무 그늘
이태수 제10시집
 
 


 
시인 李太洙는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그림자의 그늘』(1979), 『우울한 비상(飛翔)의 꿈』(1982), 『물 속의 푸른 방』(1986),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위에』(1990), 『꿈속의 사닥다리』(1993), 『그의 집은 둥글다』(1995), 『안동 시편』(1997), 『내 마음의 풍란』(1999),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등을 상자했다.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구시문화상(1986, 문학 부문), 동서문학상(1996), 한국가톨릭문학상(2000),천상병시문학상(2005), 대구예술대상(2008) 등을 수상했다.
 
시집

『회화나무 그늘』은 이태수의 시적 행로가 내면의 어둠에서 자연 속의 그늘로 나오는 그 과정과 경위를 표출하고 있다.
산문적인 조사로 읽는 사람을 긴장하게 하지만 힘찬 수사로 되씹으면서 음미할 수 있는 시적 세계 속으로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강한 흡인력을 보여주는 세계다. 시인 자신의 자아가 자연에 놓이는 자아로 이행하면서 원숙한 사유의 결정을 드러내놓는다. ‘바깥을 내다보는 나’와 ‘안을 들여다보는 나’-이 두 자리에서 ‘바깥을바라보는 나’ 쪽에 이태수의 열 번째 시집은 자리한다.
 
 
 
시인의 말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마음,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어쩌면 더욱 가벼워지고 헐거워졌는지도 모른다.
첫 일터로 발을 들여놓아 서른네 해 동안 외길을 걸어온 신문사를 떠나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시와 일 사이의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를 좀더 가까이, 느긋하게, 끌어안고 싶다. 허탈하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이 열번째 시집을 먼저 세상을 떠난 아우를 기리며 지나온 길들에 바친다.

2008년 10월 이 태 수

 
<표지 뒷면 글(표사)>
 
낯익은 길을 걷고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든다. 하지만 안간힘으로 그 길을 버리거나 벗어나 헤매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낯익은 길에 다시 발길이 닿아 있게 마련이다.
 
먼지투성이의 ‘지금․여기’를 뛰어넘고 싶은, 그러면서도 다시 ‘여기․지금’을 끌어안게 되고 마는, 이 두 겹의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는지……. 떠나다가 되돌아오고, 되돌아와서는 이내 떠나고 싶어지는 이 갈등, 이 모순, 이 반복, 이 ‘물 위의 기름방울’을.
 
헤매면 헤맬수록 길들은 아득하게 물러선다. 그래도 길을 나서며 꿈을 꾼다. 헛돌고 있을 뿐인 나의 쳇바퀴, 이 가혹하기 그지없는 쳇바퀴 돌리기와 그 속에서의 돌고 돌기―. 나이 들면서는 아마도 초월에의 꿈이 점차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과도 가까이 손잡고 있는가 보다.
 
 
 
 
차 례
 
▨시인의 말
 
제1부
불잉걸 하나 / 11
나의 쳇바퀴 2 / 12
나의 쳇바퀴 3 / 14
나의 쳇바퀴 4 / 16
깊은 밤, 시를 쓰다가 /18
요즘 나의 시는 / 20
흰 머리카락 / 21
어떤 추돌 / 22
화화나무 그늘 / 24
티끌 또는 이녁 바람 / 26
물소리 따라 마음은 / 27
그의 발걸음 소리 / 28
길이 끝난 곳에서 / 30
마음 가는 길로만 / 32
 
제2부
유등 연지 1 / 37
유등 연지 2 / 38
야생 난 한 포기 / 39
건천 지나다가 / 40
다시 건천 지나다가 / 41
다시 감포에서 / 42
어떤 으능나무 / 44
고요의 안쪽 / 46
유월, 이 하루 / 48
지리산 오솔길 / 50
마음의 잎새 몇 잎 / 52
가을 어느 날 / 53
저녁 숲길 / 54
손톱달 / 55
 
제3부
하관 / 59
아우 먼저 가고 / 60
주막에서 / 62
술 안의 저잣거리 / 64
너의 풋가슴 / 66
그 청바다도 두고 / 68
배꽃에 달빛 내려 / 70
모자(母子) 별 / 72
시적 인간에 대하여 / 73
캔터베리 소식 / 74
또 저물 무렵 / 76
벚꽃 우물 / 78
 
제4부
먼 불빛 / 83
칩거 며칠 / 84
황사 바람 / 86
어떤 봄날 / 88
촛불이 하나 / 90
봄비 / 92
봄꿈 / 93
밤샘, 천장, 미망 / 94
길, 길들 / 96
무명(無明) / 97
광음(光陰) /98
이제야 길을 바꿔 / 100
 
제5부
청복(淸福) / 105
귀리에게 / 106
봄, 허공 / 108
초롱불 / 109
물불 / 110
마음 노래 / 111
황혼의 노래 / 112
작은 풀꽃 / 113
우리 독도 1 / 114
우리 독도 2 / 117
내 고향 새실 / 120
내 마음의 십자가 / 122
성모 마리아 / 124
천사 / 126
옥빛 하늘 / 128
 
 
제1부
 
 
불잉걸 하나
 
 
 
풀꽃 속으로 들어간다.
언젠가 본 듯한, 하지만 여전히 낯선
저 야생 꽃잎 속.
 
저도 모르는 사이, 마음은 그 안의
뜨거운 길을 몇 바퀴 돌아 나온다.
다시 빨려 들어간다. 아득한 허공.
 
새소리, 바람소리 붐비는 산발치에는
타다 남은 햇살 몇 줌, 가슴 깊은 데서
되살아나는 이 불잉걸 하나.



 
 
나의 쳇바퀴 2
 
 
 
 
쳇바퀴가 돈다. 내가 돌리는
이 쳇바퀴는 잘도 돌아가지만
돌고 돌아도 제자리다. 이른 아침부터
돌리고, 자정 넘어서도 빌빌거리지만
헛바퀴다. 도대체 무얼 돌렸는지,
 
왜 돌리고 있는지. 여전히
안개 속, 어쩔 수 없는 미궁이다.
해가 지고, 달과 별들이 떴다가 조는 사이
동이 트고, 해가 떴다. 강물은 엎드려
아래로 가며 햇살을 등 뒤로 받았다.
 
그저께는 쳇바퀴를 빨리 돌리다가
안 돌리느니만 못했고, 오늘은
새벽까지 빌빌대다 그 바퀴에 쓰러진 채
벼랑에서 떨어졌다. 깊이 모를 허공에
매달리고, 먼지처럼 떠돌았다. 이제야
 
간신히 꿈을 깨어나도, 세상은
거꾸로 가고 있는지, 물구나무서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마도
내가 쳇바퀴를 돌리는 게 아니라
쳇바퀴가 나를 돌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의 쳇바퀴 3
 
 
 
 
내가 돌리는 쳇바퀴가 돌아간다.
돌리지 않아도 돈다. 쳇바퀴가 아니라
내가 돈다. 요즘은 일찍 잠이 달아나
새벽부터 쳇바퀴가 돌고 내가 돌아버린다.
 
이건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돌아버리고 돈다. 쳇바퀴와 내가
하나 되어 돌고 돌아도 거기가 거기다.
헛바퀴 아닌 듯 영락없는 헛바퀴다.
 
애를 써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
알려고 하면 되레 까마득해지는
세상이 돌아간다. 그 안에서 내가 돈다.
세상이 돌았는지, 내가 돌아버렸는지.
 
안 돌려도 돌아 있고, 다시 돌려봐도 여전히
돌아 있다. 거꾸로 도는 게 세상인지,
내가 먼저 그렇게 돼버린 건지, 도대체
온통 어지럽게 돌아 있고 돌아간다.
 
깊은 밤, 천정에 올라붙은 잠마저
쳇바퀴처럼 나를 돌리고 돌아버리게 한다.
부를수록, 붙들려 할수록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잠마저 돌아버렸다.
 
 
 
 
 
나의 쳇바퀴 4

 
 
서른네 해나 돌리던 하나의 쳇바퀴,
내가 돌던 그 바퀴에서 뛰어내렸다.
헛바퀴와 먼지투성이,
그 반대의 세월도 그 쳇바퀴에
깔리거나 희미해진다.
 
무수한 발자국들 역시 저만큼
지워지고 있다. 잘못된 건지,
잘된 건지, 이제야 내가
잘 들여다보인다.
더 잘 보이므로 두렵고 아득해진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고,
어언 해가 달라졌는데도
바꿔 탄 쳇바퀴가 잘 돌지 않는다.
겨우 돌려도 헛바퀴다.
안 돌려도 제멋대로 돌아간다.
 
낮과 밤이 거꾸로 서서 삐걱거리고,
낯선 말들을 찾아 헤매다 보면
동이 트고 날이 저문다.
안 보이던 길이 가까이 다가오고,
목말라하던 말들이 이토록 가물거린다.
 
-자. 그래도 이젠, 길 없는 길로
바꿔 탄 쳇바퀴를 돌리고 돌아야지.
 
 
 
 
 
깊은 밤, 시를 쓰다가



깊은 밤, 시를 쓰다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밥도 안 되어주는
시를 쓰겠다고, 잘 안되는 말을 앓고 앓다가
불을 끈다. 다시 켠다.
이불을 뒤집어쓴다. 또다시 일어나 앉는다.
 
자욱한 담배 연기. 허공에 발을 뻗다가
맥없이 발 오그리는 한 포기의 풍란,
담배 연기보다도 부질없는 저 먼지나 티끌들의
떠돎과 목마름. 또는 물거품과도 같이
비루하구나. 이미 늙어버린 내일이여.
 
비루하다 못해 황홀하구나.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뒤죽박죽 고삐 풀린 망아지,
풀어봐도 또 풀어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의 이 기막힌 얽힘. 스스로 만든
재앙만 넘쳐나는구나. 온통 어둠뿐이로구나.
 
깊은 밤, 시를 쓰다가
누군가가 켜놓은 저 불빛의 흐릿한
흐느낌, 그 언저리를 맴돌고 헤매다가
영락없이 거기가 거기지만, 시를 쓰겠다고
일어나 앉는다. 또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다가
불을 켠다. 불을 껐다가 다시 눈을 뜬다.


 
 
 
요즘 나의 시는
 
 
 
스스로의 덫이 됐다가
얼굴 바꿔, 밑도 끝도 없이 번지는
메아리다. 이름 모를 풀꽃 위를 스치는
바람이거나 허공에 발 뻗는 풍란이었다가
양지바른 담장 밑의 사금파리, 그 곁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나 애벌레다.
햇볕 안 드는 풀밭과 나무들 사이에서
뒹구는 돌멩이들과 헛기침 소리,
어디론가 가고 있는 조각구름이다.
때로는 고삐 풀린 망아지 엉덩이에
돋아난 뿔 같다. 식탁 위의 식은 죽,
멀건 죽그릇 속에 가고 있는 달이다.
밤 이슥토록 술에 젖다 보면
마침내 빈 술잔 언저리의
신음 소리, 글썽이는 눈물이었다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악몽이다. 밥도, 이름에 도움도 안 되면서
밀어내면 달라붙고, 부르면 저만큼 달아나는
절망이다. 희망과 목마름의 그림자다.

 
 
 
 
흰 머리카락
 
 
 
난생처음 머리카락 물들이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감쪽같은 흑갈색,
그런데 불현듯 마음은 더 희끗해졌다.
 
며칠 전 누가 함께 선물한 조화들도
힐끗거리며 등 뒤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그래, 우리는 영락없는 짝이다.
 
얼마 뒤 머리 밑이 부풀고 근질거렸다.
어린 시절 옻나무 그늘에서 놀다 돌아와
혼난 적 있지만, 그 옻이 또 올라버렸다.
 
잔설로 앞머리 희끗한 앞산이 문득
다가왔다. 옻도 안 타고 진짜 풋풋한
자연 염색을 하게 된다고 뽐이라도 내듯이……
 
오늘은 앞산이 유난히 싱그럽다. 환하게
힘이 넘친다. 봄을 타서 나른해진 데다
성글고 희끗한 머리카락이 또 몇 올 떨어진다.
 
 

 
 
어떤 추돌
 
 
 
오랜만의 다디단 늦잠, 꿈속에서 누군가
입에 넣어준 사탕 한 알,
귀엣말 몇 마디는 더욱 달콤했다.
 
가까스로 일어나 졸음을 밀어내다 마주친 거울엔 바
깥을 내다보는 내가 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물끄러미 바
라보고 있었다.
 
아, 그랬구나. 한동안 내 두 발이 허공에
떠 있었구나. 아무래도 나는 요즘
쉽게 속으면서 살아온 것 같아.
 
마당 블록들 틈새로 얼굴 디밀고 있는 개미자리들, 한
껏 상기된 꽃잎들. 그 작디작은 풀들이 설마 나를 비웃고
있었던 건 아니었겠지.
 
며칠 잠자던 자동차 몰고 나선 길,
정지선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데
느닷없이 어떤 차가 뒤에서 부딪쳤다.
 
재수 없으면 넘어져도 코 깬다더니……자동차 꽁무니가
크게 망가졌다. 정신이 어질어질, 꿈속에서 누군가 건넨 사
탕 맛도 귀엣말도 허공에 산산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피투성이 얼굴의 노인이 안절부절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깜빡 졸다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회화나무 그늘

 
길을 달리다가, 어디로 가려하기보다 그저 길을 따
라 자동차로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 백 년 정도는 그랬을까. 마을 초입의 회화나무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오가는 길들을 끌어안고 있었는
지 모른다. 세월 따라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나처럼 뜬금없이 머뭇거리기
도 했으련만, 두텁기 그지없는 회화나무 그늘.
 
그 그늘에 깃들어 바라보면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
가며 펄럭이는 바람의 옷자락. 갈 곳 잃은 마음은 그
위에 실릴 뿐, 눈앞이 자꾸만 흐리다. 이젠 어디로 가
야 할는지,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
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여태 먼 길을 떠돌았으나 내가 걷거나 달려온 길들
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군다. 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
화나무가 품고 있는지, 이내 놓아줄 건지. 하늘을 끌어
당기며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그 그늘 아래 내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


 


티끌 또는 이녁 바람
 
 
 
늘 가던 길이 낯설어진다.
저 허공에 떠도는 티끌 하나.
멀리 가지도, 가까이 돌아오지도 않는
이녁 바람 소리. 끝 간 데 없는
그 소리가 작아지고 작아진다.
 
오래 잊었던 기억이 문득
불을 켜듯,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듯,
길가의 마른 풀잎들을 흔들며
헤매고 또 헤매는 이녁 바람.
풀잎들과 함께 흔들린다. 이윽고
 
흔들리지도 않는다. 멈춰 서면
낯선 길들이 실타래를 떠난 실처럼,
정신 나간 사람의 말같이 얽히고설킨다.
낯선 낯익은 길, 그 위 허공에 떠도는
저 티끌 하나, 또는 이녁 바람 소리.
 
 
 
 
 
물소리 따라 마음은
 
 
 
 
홀로 스며든 산골짜기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다. 머리가 서느럽다. 마치
환한 등 하나를 단 것 같다. 돌부리에
이마 부딪쳐도 낮게 구르는 소리를 내는
물의 저 한없이 그윽한 너그러움.
아래로 흐르면서 왜 끝없이 맑아지는지.
온갖 향기 불러들여 낮은 데로
나르고 있는 건지. 거기 실어보아도
마음은 왜 되돌아오기만 하는지……
 
초록 옷자락 흔들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그래서 새들은 날며 지저귀고 있는지.
잠시 하늘 자락을 빌려 날아오르다가
그 길을 되돌려주고 돌아오는지. 돌아와서는
아래로만 내리는 물 위에 저토록
노래의 집을 짓고, 다시 떠내려 보내면서
이 산골짜기를 마냥 안아 올리고 있는 건지.
눈 감으면 흐르는 물소리 따라 흩날리며
길 떠나는 내 마음의 저 남루한 옷자락.
 

 

 
그의 발걸음 소리
 
 
 
다시 맑은 물에 발을 담근다.
늦은 오후, 홀로 깃들인 산골짜기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바라보면
물 위에 번지는 생각의 사방연속무늬.
이따금 돌부리에 이마 부딪쳐도
머뭇거리다 이내 흘러가는 물, 물소리.
그 위에 내리는 새소리. 낮게 어우러져
구르는 저 그윽한 서느러움.
 
어깨 비비대며 서 있는
나무들 사이, 빗금으로 내리는 햇볕.
잎새 몇 잎이 나뭇가지를 놓고
물 위에 내리는 동안
새들이 끌어당기는 하늘 자락에는
몇 가닥 구름의 저 한가로움.
 
이 상처투성이 마음에
작은 노래의 집이라도 지어주려는지,
산골짜기를 다 안아주려 하는지.
눈 감으면 비로소
생각의 사방연속무늬 지우며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 소리.
새소리 안고 흐르는 물소리 디디며
가까워지는 이 발자국 소리.
 
 
 
 
 
길이 끝난 곳에서
 
 
 
오래 걸어오던 길을 벗어난다.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붙들고 있던
끈들도 놓는다. 한동안의 현기증, 어질머리.
 
……왜 이러고 있었지? 누구 때문에
몇 날 며칠 잠마저 천장에 매달고 있었지……?
하지만 남 탓, 패거리 탓을 지우고 비워낸다.
 
우리 저 윗대 할아버지는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알게 모르게 물들고 젖어 연연했던 걸까?
 
역사는 언제나 제대로 가지 않는다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떨쳐본다.
아파도 더듬어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하늘엔 낯선 구름, 허공의 바람 소리.
보일 듯 말 듯, 안 들릴 듯 들릴 듯
길 끊어지는 소리, 그 너머 저 희미한 길들.
 
그 누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된다고 했던가. 불현듯 귀에 익은 새소리,
햇살이 따스하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다.
 
 
 
 
 
마음 가는 길로만
 
 
 
너무 오래 떠돈 걸까. 구불구불하고
떠내려가거나 떠밀려 다니던 길,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고,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던 길들이 엉켜 있는 쳇바퀴를 뛰어내렸다. 어느 봄날, 눈 딱 감고

떠밀려서, 어쩌면 떠밀리도록 내버려뒀던
길을 접었다. 보기 싫은 건 안 보려고,
뒤통수 치는 몇몇 검은 손이 싫어
늦을 때가 빠를 수도 있다는 말을 믿으며
구차스런 밥그릇을 던져버렸다. 설령
 
멀건 죽 그릇 안에 달이 뜨더라도
오직 한 길, 가고 싶은 길을 가기로 했다.
미련하게, 때로는 미친 듯이, 고집스럽게
더 이상 안 가고 싶은 길은 가지 않기로 했다.
오래 꿈꿔온 길로만 가기로 했다.
 
그리기 싫은 그림 안 그리려고
제 눈을 찔러 장님 됐던 화가 최북,
하기 싫은 연주를 하느니 거문고를 아예
부숴버린 김성기, 평생 외길 걷기의 그들처럼
가지 않아야 할 길은 버리기로 했다. 그런

나만의 새 쳇바퀴를 돌리고 또 돌리면서
느리게, 때로는 속도를 붙이기로 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어두울수록 영롱한
별빛 더듬어 떠나기로 했다. 쓸쓸하더라도
나의 오솔길, 마음 가는 길로만 가기로 했다.
 
 
 
 
 
제2부
 
 
유등 연지 1
 
 

한여름, 마음이 먼저 간 뒤
발길도 슬며시 따라가 닿은 유등 연지.
비 그친 오후 한때
어깨 부딪히는 초록 저희 우산들 사이
연꽃들 환하다. 무더기로 환하다.
왜가리 떼 날아내려 긴 부리 세우고
물 밑을 쪼아대는 동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으로 밀어올리는
불길, 불꽃들. 진흙물 위를 밝히는
연등들은 그러므로 그윽하게 아프다.
햇살 뛰어내릴 때보다
해거름에 다가갈수록 환해진다.
그 아픈 언저리. 왜가리도, 내 마음도
마냥 붙박이가 되고 있다.
등 뒤에는 누군가의 아득한 독경 소리,
허공을 흔들고, 연꽃잎을 흔든다.
 
 
 
 
 
유등 연지 2
 
 
 
등 떠밀려 다시 깃든 유등 연지.
안 보이는 연꽃들이 그윽하다.
한겨울인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저 무수한 꽃잎들. 환히 불 밝히던
지난여름 그 연등들이 눈부시다.
 
어두워질수록 더 환해지는 그 언저리,
이름 모를 새들이 그 빛들을 받들어
내 마음 저 캄캄한 골짜기까지
몇 가닥씩 물어 나른다. 눈 감으면
 
지난여름 그 한때가 어김없이
그대로다. 이 환한 아픔. 오랜만의 꿈길.
안 보이므로 되레 보이는 그때
그 연꽃들이 발길 붙들고
내 마음 빈자리를 움켜잡는다.
 
 
 
 
 
야생 난 한 포기
 
 
 
창문을 연다. 이름마저 잊어버린
야생 난 한 포기 청초하다.
지난해 늦여름, 깊은 산에서 유배된 뒤
세 계절을 이겨내고 여름 문턱에서
홀로 시를 읊고 있는지, 그런 불을
지피고 있는 건지. 유월 이 아침,
진보라꽃들을 온몸에 달고 있다.
촘촘한 꽃잎들이 나를 올려다보지만
잎사귀의 초록빛은 꼿꼿하고 차갑다.
산속이 아니라 지조를 지키려는지,
몸에 밴 절제 때문인지. 수절하며
끝내 숨으려 하는 여인처럼
새치름, 내 마음 흔들어 당기고 있다.


 
 
 
건천 지나다가

 
 
내 마음 고즈넉한 꿈길에는
서라벌이 깃들어 숨 쉬고 있다.
천 년 숨결, 수막새의 미소.
그 언저리 더듬어 가는 길에
문득 만난 보랏빛 석산, 그 발치에서
발을 씻는 청노루,
목월의 윤삼월 햇살 같은
언어들이 은빛 날개를 파닥이고 있다.
오래됐지만 언제나 아련한
그 언어의 비단 자락, 고운 결이
마음을 붙들어 감싸고 있다.
미리 가까이 다가오는
나무와 달. 잘 안 보이다가
다시 보이는 저 실바람 소리.
 
 
 
 
 
다시 건천 지나다가
 
 
 
꿈길에 보이던 맑은 눈의 청노루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며칠째 황사.
보랏빛 산이 저만큼 물러선 자리에
위태로운 검은 바위, 그 아래 흐르던 물도,
돌던 구름도 말라붙고 멎었다.
한반도에 봄이 다시 오는 동안
시샘 심한 바람이 산수유꽃을 지우고
목월 선생이 그 그늘에 앉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끌어안던
목련꽃들을 무더기로 떨어뜨린다.
그래 그래 그래, 그 무뚝뚝한 듯 다정한
경상도의 사투리도 때 이른 가랑잎처럼
굴러다니고, 짓이겨지고,
내 마음의 아물지 않는 상처들도
짓이겨진다. 굴러다닌다.
봄이 와도 봄이 오지 않는 이 한반도의
청노루가 안 보이는 이 봄날에는,
 


 
 
다시 감포에서
 
 
 
감포 등대 앞 바위에 앉아 있으면
하염없이 파도를 받아들이는 바위나
작은 섬이 되고 싶어지더군요.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의 먼 옥빛 속으로
갈매기들이 낮게 날고, 그 포물선을 따라
마음은 바이없는 바다, 가물거리는 한 점
섬을 향해 노를 젓더군요.
 
간밤 꿈속에서 만난 그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아무리 애써봐도 보이지 않지만
이토록 더듬어 기다리는 마음을 아실는지요.
헤아리기라도 하실는지요.
파도는 어디선가 어깨 힘을 빼고 달려오지만
바위섬은 어김없이 희고 작은
포말들을 만들고 있더라구요.
 
하지만 내 마음의 등대엔
여전히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위가 되고 섬이 되고 싶은 마음
오죽하겠습니까. 그가 돌아오지 않는 세상엔
오늘도 썰렁한 먼지바람 소리,
등 굽은 소나무들이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떤 으능나무
--권국명 읽기
 
 
 
 
금빛 몸의 으능나무로 서 있는
그의 영혼은 바람이 불 때마다
혼자 울린다. 잎새들이 하늘로 지고
오월에는 먼 우레의 끝에 어지럽게 흔들리며
모란 밭에서 기침을 쏟아낸다.
어두운 바다 저쪽에서
바람이 눈먼 소리로 울고 있을 때는
꿈속에서 그려도 안 그려지는 데생을 한다.
이따금 제 영혼의 속살을 열고 들어가
맨 처음의 날개가 돋아난 금빛 새 한 마리로
바다 위를 난다. 살과 피가 사랑의 빛깔로
타오르기를 기다리다가 꽃송이보다 화안한
불을 하나 켜 들고 맨 처음의 바다를 난다.
못 견디는 그리움으로 후박나무 밑에서 울고
별의 깊이보다 더 먼 어둠 속에서
무명(無明)의 저쪽으로 고적(孤寂)과 함께
얼굴을 뒤척이다가 숨기기도 한다.
새벽 세 시의 잠 속에서
먼 숲이 초록의 불로 타오르면 돌아눕고,
고적과 사랑의 아픔이 다한 뒤에
맑은 별을 보다가 어둠 속의 커다란 눈이 되어
얼굴 검은 천사가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본다. 꿈이 표백되고 타는가 했더니
모든 별들이 몸속으로 흘러드는가 하면
상동형의 모든 꽃들이 혼돈처럼 피었다 진다.
어디선가 생나무 타는 소리에 다시 잠든다.
다시 태어날 세상까지 미리 가서
아득한 연꽃 하나 피워 올리면서……


 

 
고요의 안쪽
--조두섭 읽기
 
 
 
육신의 거처가 나비였다는
그의 꿈속에는 육신을 다 깎아내고
목소리만 남은 솔바람 소리,
칡넝쿨 보라꽃 뻐꾸기 소리 낭자하다.
구릿빛 광채 뿜어내는 육신의 망치로
제 육신 내려쳐서 세상 고요를 반듯하게 펴는
먹뻐꾸기, 또는 그 꿈의 언저리.
하늘의 심장인 노을은 붉은 갈증이다.
 
호숫가 홍등 속으로 쫙 빨려드는
별, 각 진 음성 모서리를 갈고 다듬는
새의 부리. 이윽고 붉은 첨탑은
새들이 찾아낸 마른 우레다. 그 우레는
폭풍을 집어삼킨 고요의 전신이다.
 
멀리 갔다 돌아오는 초록 별 하나, 그 속에는
초록 뻐꾸기 소리, 그 별이 말방울 속으로
들어가 귀엣말한다. 홍등 속으로 날아가는
목이 긴 새들. 눈이 빨개지도록 하늘 우러르는
고요. 갈증은 무덤 속에서도 눈을 씻는다.
 
청동 사슬이 육신을 끌고 간다.
노래의 안쪽을 걸어가는 그의
고요는 제 피를 피로 씻는 천둥 같은
야성으로 살아 있다. 한 발 재겨딛을 수 없는
바다 벼랑. 바위틈에 살고 있는
소나무 광채가 대궐 한 채다. 무지개 속
수천수만의 저 물방울들, 적막마저
아득하게 날개를 퍼덕이는 푸른 광채들.
 
 

 
 
유월, 이 하루
 
 
 
어디를 헤매다가 마음아,
곤죽이 되어 돌아왔니? 구겨진 길들
발목에 매단 채 봉두난발(蓬頭亂髮),
해진 옷자락으로 되돌아왔니?
하늘의 푸른 잉크 빛 속으로 아득하게
새들이 빨려 들어가는 유월 한낮.
모란이 뜨락에서 꽃잎을 떨어뜨리는 동안
가까스로 햇살에 몸을 맡겨
제정신이 드는 마음아,
이 풍진(風塵) 세상을 어찌하리.
누군가 산 넘고 물 건너 멀리 가보아도
끝내 눈물 흘리고 돌아왔다 하지 않니.
바람 잘 날 없어도 낮게 비워보면
작은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실로 가련한 마음아, 네가 깃들여
길을 트고 걸어야 할 지금 여기는
그래도 땅에 발을 붙이고
하늘 올려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그늘지고 헐벗어도 따스한 가슴들이
한낮에도 조그맣게 불을 밝혀주어,
물러서던 길도 환해지고 있지 않니?
나무들이 껴입은 초록빛에 스며들며
물방울처럼 글썽이는 유월, 이 하루.
 
 
 


지리산 오솔길

 

지리산 고즈넉한 자락에 들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희미해지는 낮달.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멧새들의 낮고 따스한 지저귐.
 
자꾸만 물러서는 길 더듬어 떠돌던
내 발자국들이 빚어놓은
 
저 희미한 포물선. 그 너머로
하염없이 가는 몇 점 조각구름,
 
무심한 바람 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나뭇잎들.
 
작아지고 작아지다 가까스로 만난
산속의 작은 길 하나.
 
마음 비우고 길 다 버리고서야
가르마처럼 열리는 숲 속 길,
 
햇살 뛰어내리며 되비추는
우리의 저 오솔길 한 줄기.

 
 
 
 
마음의 잎새 몇 잎
 
 
 
잎사귀 다 떨친 나무 아래 서서
지워도, 지워내도 마냥 매달려 있는
내 마음의 저 잎새 몇 잎.
영문도 모르는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햇살을 쪼아댄다. 무슨 상관이냐는 듯
구름도 스쳐 지나간다.
안 보이는 데서 그가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부르지만, 돌아보면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 소리.
두 손으로 눈을 가려도,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그의 얼굴. 이 지상에서는
바라볼수록 아득히 그리운 그 얼굴.
날 저물자 새들은 어디론가
아랑곳없이 날아가버리고
저 깊은 마음의 골짜기, 비탈진 산발치의
빈 나뭇가지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잎새 몇 잎, 지우려 하면 할수록
저토록 떨고 있다. 목이 메고 있다.
 



 
가을 어느 날
-이인성의 그림

 
한여름을 끌어안고 있다. 그의 가을은
바구니 들고 꿈꾸며 우수에 젖은
여인도, 단발머리 소녀도 벗겨놓았다.
시들어가는 몇 가지 꽃들과
을씨년스럽게 고개 숙인 해바라기,
헐렁한 사과나무 너머의 짙푸른 하늘.
구름은 삼삼오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도무지 어쩌자는 건지. 바라보면
윗옷 벗은 여인의 얼굴에서 젖가슴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눈길. 이내 소녀의
소매 없는 원피스와 뒤통수로 오르다
해바라기 굽은 등을 뛰어내리게 하는
그의 가을. 황토 빛 땅 위의 들녘은
아무래도 한여름의 치맛자락 같다.
한참 더 들여다보면 이윽고
서늘하게 푸르러지는 그의 가을.

 
 
 
 
저녁 숲길
 
 
 
날 저물고 새들도 둥지에 든다.
서늘한 바람의 옷자락,
그 감촉에 몸 맡기며 숲길 돌아들면
땅거미 안으면서 어깨 추스르는 나무들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별이 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의 마지막 말들이 뜬다.
차마 잊지 못하고 있는 말들은 저토록
별이 되어 빛을 뿌린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그 별들이 숲에 내린다. 가슴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다른 세상에서 더러는 그리워할 뿐임을
말해주는 건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이내 다시 멀어진다. 여태 애태우던
말들도, 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제각각
허공에 빈 메아리로 떠돌고 있는지……
마음마저 더 어두워지고, 집도 점점
멀어지는, 낯선 저녁 숲길.
 
 
 
 
 
손톱달

 

땅거미 내려 해 지고도 그 한참 뒤
어떤 소녀가 저리 튕겨 올려놓았을까
밤하늘의 저 예쁜 손톱 조각 하나
 
잎새 내밀고 있는 나무 사이로 바라보면
칠흑 치마폭에 잘 깎아 던져놓은 듯한,
그 언저리엔 흩어져 앉아 조는 별들
 
술 거나해진 미당이 소녀 손 만지작
만지작 침이 마르도록 예쁘다던
바로 그 긴 손톱 끝 부분 같은,
 
새치름하게, 그보다는 새콤달콤
마음 흔드는 까닭까지 알게 해주는,
꽃들 아릿아릿한 봄밤의 저 조각달

*시인 서정주의 호.
 
 



제3부
 
 
하관(下棺)
-목월 선생께
 
 
아우 먼저 보내고, 관에 흙을 뿌리며
선생님처럼 ‘좌르르 하직’했습니다. 아우는
눈감으면서도 그랬듯이 아무 말 않고
말을 다 잃은 나는 아무도 안 보이는 데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요. 울고 있는지요.
봄날인데도, 선생님 말씀대로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입니다.
모든 게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아우는
여기에서의 그 빼어남 펴다 말고
모두 팽개쳐버리면서
형님! 하는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고,
처자식은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불현듯
‘초월적 지상’을 ‘지상적 초월’로
바꿔버렸습니다. 선생님, 아프게도
‘다만 여기는 / 열매가 떨어지면 /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입니다.
내가 툭 떨어져 흔들리는, 그런 세상입니다.
 
*「초월적 지상과 지상적 초월」은 아우(이경수)의 서울대 영문학 박사학위 논문 제목.
 
 
 
 
 
아우 먼저 가고

 

아우가 다른 세상으로 먼저 가고
잊으려 할수록 길이 비틀거린다. 이따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몇 번 바뀐 오늘은 웬일인지
겨우 걷게 된 아우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이름마저
어린 내가 지어야 했던 아우,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고향 집 대문 나서던 때의
멋쟁이 아우. 챙 있는 모자를 쓴, 어머니를 졸라
새로 산 옷까지 차려입은 채, 그 대견스럽던
걸음걸이. 그 봄날이 이토록 아플 줄이야.
총기가 유별나다고 가는 곳마다
입에 오르내리고, 자라고 크면서는
아무나 붙들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남보다 언제나 저만큼 앞서 가던 아우.
남들이 부러워하는 길들 잘도 걸었건만
비뚤어진 세상과는 자주 안 맞아 삐걱거리더니,
더 나은 세상 늘 꿈꾸고 목말라하더니
세상을 버렸다. 그렇게 가버렸다.
술에 젖어 푸석해도 눈빛은 한없이 맑았던,
세상이 어디로 가든 깨어서 흔들리지 않던
그 모습이 이토록 쓰라릴 줄이야. 여전히
세상이 삐걱거려 이토록 눈물 나게 할 줄이야.
 
 
 
 
 
주막에서
-아우 생각
 
 
네가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어김없이
세월은 제 발길 그대로 가고 있다.
늦은 오후 한때 조금 흐렸다 이내 개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바람은 봉두난발,
머리카락 풀어헤친다. 옷자락을 흔든다.
가던 길 멈추고 나무에 기대서서 바라보면
서산 위엔 붉게 타는 노을.
새들은 둥지를 찾아 낮게 날아든다.
발길을 돌리면 마음은 또 젖는다.
너를 더듬어 붉어진다.
 
붉게 젖다가 어둠을 외투처럼 걸치고
주막에 스며든다. 이미 몇 차례 술잔을 비운
네가 담뱃불을 댕겨줄 것만 같아
슬며시 다가간다.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맴도는 시간의 무정을
술에 타서 마시고 또 마신다. 도무지
취하지 않는다. 술이 술을 마실 때야 비로소
가까이 느껴지는 네가 언젠가 했던 말이
안 들릴 듯 나직하게 귓전을 때린다.
술잔을 들었다 놓았다 든다.
 
“형님, 뭘 그러십니까. 더 드시지 그러세요.
이 세상 어디 안 취하고 견딜 수 있겠습디까.”


 


술 안의 저잣거리
-아우에게 1
 
집 없어 키 없어 떠도느니
즐비한 주막들이여
안과 밖 경계선, 저, 산, 속,
곡차방들이여
-이경수, 「술 밖의 금정산 Ⅱ」
 
 
여기가 안이고 거기가 밖인지,
거기가 안이고 여기가 밖인지……
안개와 먼지 세상,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서 떠돈다.
안팎을 뒤집으려다가 맥없이 다시 뒤집혀
이 술 안의 저잣거리,
네가 버린 이 거리를
헤맨다. 헛돈다. 남루한 집과 키,
어느 것 하나 헐겁지 않은 게 없어,
그보다는 마음이 더 헐겁고 무거워
비틀거린다. 술에 젖어
또 술을 부르며 쓰라리게 눈을 뜬다.
네 술 밖의 금정산을, 그 즐비한 주막들을
술 안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
여기가 밖이고 거기가 안인지,
거기가 밖이고 여기가 안인지……
흙비와 눈보라의 세상.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기서 아프다.
 
 
 


너의 풋가슴
-아우에게 2
 

 
번쩍이며 넉넉하게 걸어가던 너의
풋가슴. 깊은 어둠과
단단한 상처까지
아침 햇살의 융융함으로 바꿔 끌어안던
그 초행길들, 그 깊이와 두께를
나는 안다.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카로스 같은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언제나 연민으로 감싸던
강한 듯 여리고 여린 듯 완강했던 네 마음을,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제 육신은 헌신짝, 숨 겨우 쉬면서까지
지율 스님이 황우석 교수와 손 맞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던,
‘우리 시대의 두 얼굴’을 그토록 아파하던
마음을 안다. 세상 사람들이 초월적,
현실적 욕망을 누르면서 서로를 지켜주는
등불이 되기만을 간구하던
그 마음의 불꽃들을 나는 안다.
생전의 너를 모르는 어떤 사람이 그저께
네 글들을 거의 다 찾아 읽었다며
너는 밤하늘의 별이 됐을 거라고 했다.
그 하늘 우러러 반짝이고 있을 네 별을
어두운 눈으로 찾고 또 찾는 중이라 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나는 오늘도 비틀거리는 이 세상 한 모퉁이에서
너의 풋가슴, 새로이 반짝이는
새 별 하나 더듬어 이렇게 글썽이고 있다.
 
 
 
 
 
그 청바다도 두고
-아우에게 3
 
 
 
하늘 떠나 산 떠나, 너는
세상 붉은 먼지 속을 뒹굴다가, 홀연
산으로, 하늘로 되돌아간 거냐.
 
산 너머 아득한 하늘,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그 높은 나라로 가버린 거냐. 상계봉에 올라
숨 한번 몰아쉬고 바라보던 솔바람 소리,
그 사이로 떨어지던 저녁 해,
붉게 저물면서 빛나던 겨울 하늘도, 그 강도
다 버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버린 거냐.
 
하나 둘 보내는 별들의 수줍은 신호에 끌려,
타는 노을 뒤에서 웃는 신(神)들을 만나러,
아니면 술 더 많이 마시려 간 거냐.
눈 먹고 바람 먹고 시 먹는
청사포 겨울 바다, 그 청바다도 두고 이젠
어머니 별 옆의 아들 별로 떠 있는 거냐.
 
범물동 용지봉 아래서 막막해지는 봄날,
자꾸만 젖는 내 속눈썹, 흔들리는 길 위에
이토록 아프게 어둠을 헤집고 있는 거냐.
내 발길을 붙들고 있는 거냐.


 
 
 
배꽃에 달빛 내려
-아우에게 4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李兆年)
 
 
울적한 봄밤, 가까운 산발치에 이르니 만개한 배
꽃들 위에 달빛 희게 내려 눈물 나더군. 보고 싶은
아우야, 네 생전 부산 화명동 달빛 속 물소리 소쩍
새 울음소리 더불어 총총 별들과 탕계통신(蕩界通信)
하던 모습, 조(兆)자 년(年)자 먼 할아버지 시 읊조리
며 술 사랑, 사람 사랑에 괴로워하던 그런 시간들이
달빛처럼 가슴에 안겨오더군. 밤 이슥하니 하늘에,
가슴에 은하를 이루더군.
 
“아버지 별 되시려 그예 탕탕 하늘 올라가실 적
아버지 사랑에 울며
또한 별 되신 어머니 사랑에 울며,
화장(火葬)이 무엇인가
납골당(納骨堂)이 또 무엇인가,
밤 도운 술 사랑 별 사랑 못내 겨워
나, 그예 아침 상여 따라
고향 길 잡지 못 하였네”

얼마나 괴로웠으면 큰절 두루 올리겠다며 조상께
잠 좀 자게 해달라고 애원했을까. 그래도 끝내 아
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간 아우야, 그리운 고
향 길조차 잡지 못한 채 기억도 못하는 아버지, 일
찍 여윈 어머니 따라 별 되려 간 아우야. 그 무정(無
情)이 다정의 병이더냐. 무심고수(無心高手)의 깊은
고독이더냐. 배꽃들 위에 달빛 희디희게 내리는 이
삼경(三更), 너 향한 일지춘심(一枝春心), 잠을 어깨
에 떠메게 하는구나.

 
 
 
 
모자(母子) 별
-아우에게 5
 
 
오늘 밤엔 네 탕계통신(蕩界通信) 받고
새 별 하나 새로 보이더군. 우리 집 앞
산수유나무 가지, 노란 꽃잎들 사이로
보이는 게 분명 네 별이었어.
너의 말대로 탕탕심무착(蕩蕩心無着) 광년,
그 속으로 들어붙음 없이 서얼설 기어 다니는
별, 내 젖은 눈엔 탕탕심유착(蕩蕩心有着)
유난히 영롱한 무심과 무욕의 저 반짝임.
대구 범물동 용지봉 위 먼 하늘에서
네 별 곁까지 다가와 나직나직 속삭이시는
어머니 별, 하나 되듯 안녕히 반짝이며
내 눈시울 더 젖게 하는 저 모자(母子) 별.
 
 
 
 
 
시적 인간에 대하여
-아우에게 6
 
 
 
파리 한 목숨 죽이기를 두려워하면서
세상과의 싸움에도 역시 힘이 달리는 사람
 
시대의 흐름을 이따금 거스르지만
시대를 앞서 가고 싶은 꿈만 꾸는 시인
 
아우 말대로, 그러나 남과의 싸움에 앞서
나와의 싸움엔 깊숙하고 이골이 난 사람
 
뿌리가 비극적이며 끝내 희극적일 수 없고
바탕이 녹색이며 끝내 어두운 녹색인 사람
 
시를 써온 지 수십 년 흘러도 여태
온몸으로 시를 살아가지 못하는 시인
 
오늘도 손, 머리, 가슴으로 시를 더듬어
여전히 시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 사람

 

 
 
캔터베리 소식
-아우에게 7
 
 
 
오늘 영국에서 또 이메일이 왔더군. 한 해 예정으
로 그곳 캔터베리에 가 있는 가족 모두 안녕하다고,
제수씨는 연사흘 꿈속에서 너 만나 얘기하고 의논도
나눴다고, 너를 가슴 깊숙이 꾹꾹 눌러 안으면서 울
지 않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해져서 돌아오겠다고.
 
재륭이는 요즘 프랑스 등 유럽 여행 떠나고, 채영
이는 꼬박꼬박 학교 잘 다니고 있다더군. 제수씨는
친구들 성화에 파리 친구와 스위스 친구 집과 알프
스를 다녀와 몸살을 앓았지만 이젠 괜찮다더군. 보
내온 요즘 사진 속의 가족, 너도 보면 입이 귀에 붙
을 정도로 흐뭇해질 거야.
 
너 자꾸 채영이, 재륭이 생각하고 있지? 얼마나 대
견하고 예쁜지. 잘 크고 있는지. 그런데 10년 전 너
와 함께 그곳에 있을 때와는 아무래도 다른가 봐. 제
수씨는 채영이와 런던에 가보아도 매력과 감흥이 그
때와 같지는 않더라더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
닌가. 안 그런가.

지금 너 또 술 마시고 있니?
그래, 오늘 밤엔 한잔하지 않을 수 없지.
잔을 높이 들어보지그래.
자, 그럼, 네 말대로 ‘탕탕(蕩蕩)’ 안녕.
 
 
 
 
 
또 저물 무렵
-아우에게 8
 
 
 
그래, 나는 여기 이렇게
네가 쓰라리게 끌어안고 뒹굴던
그 붉은 먼지 속이다. 네가 버린 하늘도
산도 가까이, 깊이 끌어당기며 낮게 헤맨다.
 
네가 바라보던 그 솔바람 사이로 떨어지는
저녁 해. 붉게 저무는, 그렇게 저물면서
빛나는 겨울 하늘과 강, 네가 걷던
그 길들을 더듬어 들여다본다.

어두워지면 별들이 보내는 수줍은 신호도
타는 노을 뒤로 웃고 있는 신(神)도
너처럼 느끼지는 못한 채, 세상이 자꾸만
헐거워진다. 앞이 잘 안 보인다.
 
생각하면 할수록 막막해지는 길 위에서
그래그래, 그러나 나는 여기 이렇게
네가 의연하게 버린 그 붉은 먼지 속을
전전긍긍, 한 알 먼지 되어 떠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던
어느 시인의 오래된 말이 새삼 아프고
‘그냥 죽지요’라던 네 말이 너무 야속해
해 저물 무렵엔 자주 정처를 잃는다.





벚꽃 우물
 
 
 
벚꽃 흐드러진 봄밤의 경주 보문단지, 처음 가본 조
그마한 연못가. 같이 간 한 제자가 감탄사를 연발하더
군요. “아, 저기 벚꽃 우물 안의 달 좀 보세요.”
 
못물에 비친 달 들여다보며 영영 만날 수 없는 아우
생각에 젖다가 담뱃불 비벼 끄고 고개를 들었지요. 웬
조화인지, 그게 정말이더군요.
 
자욱한 벚꽃 사이로 둥글게 뚫린 밤하늘, 그 한가운
데 멈춰 선 듯 떠 있는 달. 음 이월 보름 그다음 다음
날 환한 달의 눈물겹도록 화사한 언저리……
 
시 가르치는 시간 마치고 돌아오려다 수강생 몇몇이
절정 이룬 벚꽃 보러 가자기에, 돌아올 길 멀어 속으로
는 조금 망설이다 이끌리듯 가서 마주친, 그 야릇하게
아릿해지던 순간.
 
밤 깊어 대구로 돌아오는 길엔 달을 품은 벚꽃 우물
이 앞 유리에 어른거렸어요. 가속해도 자꾸만 자동차
의 속도가 떨어지더군요.
 
그 제자의 감탄사도 귓전을 떠나지 않아 시 쓴다는
게 부끄러운 데다, 지난해 이날 밤 아우가 세상 떠나
고 난 뒤 흩날리던 벚꽃들, 낮에 군위천주교묘원 아우
곁에서 본 벚꽃들도 그 우물에 포개져 다가오기 때문
이었지요.


 
 

제4부
 
 
먼 불빛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는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칩거 며칠
-범물 시편 1

 
 
이른 아침, 창을 연다.
소나무, 은사시나무, 잡목들이 보내는
알싸한 공기. 용지봉 자락 스치는 바람이
막 뛰어내리는 햇살 사이로 달려온다.
높은 계곡 응달에는 아직도 희끗한 잔설,
입춘 지난 지 한참 됐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빙점 언저리다.
 
창밖, 내 눈높이의 미루나무 가지엔
까치집 두 채. 그중 한 집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나앉아 이쪽을 바라본다.
까악깍, 무슨 뜻인지 목청 돋우어
몇 번이나 고요를 휘젓는다.
때마침 벽시계의 뻐꾸기 울음,
자동차 시동 소리도 귓전을 때린다.
 
이곳 산발치 마을에 깃든 지 석 달,
몇 날 며칠 아파트 방구들을 지고 있거나
집 안만 오락가락,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에도
좀체 길들어지지는 않는다.
용지봉 철탑 너머로 비행기가 날아가도,
멧새들이 가까이 지저귀기만 해도, 마음은
어느새 저잣거리로 나가 구겨진다.
창을 닫고, 마음에도 빗장을 건다.
돌아서서 다시 나를 들여다본다.

 

 
 
황사 바람
-범물 시편 2
 
 
바깥 향한 마음에 다시
빗장을 지른다. 이틀째 황사 바람.
산발치 담장엔 개나리 노란 꽃잎들이
누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목련꽃들은 피다 말고 다 떨어져 내리고
아직은 뿌리에 힘 모은 잡목들 사이로
날다 말다 하는 멧새 몇 마리,
저희끼리 조잘거리며 햇살을 쪼아댄다.
 
까치 한 쌍 다시 둥지에 들고
키 큰 미루나무가 이따금 몸을 비튼다.
또 사흘째 두문불출, 내가 내뿜은 담배 연기와
되다 만 말들이 천장과 벽을 기어오르다
스러진다. 지나온 길들 애써 지우며
내가 내 속으로 들어간다. 이내 밀려나온다.
 
여전히 어지럽게 되살아나는
저 지워버리고 싶은 길들.
간밤에 뒤적이다 펴둔 탁자 위의 사진첩,
활짝 핀 복사꽃들 사이에 서 있는 내가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주 오래전의 내가 지금 내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바깥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누렇게 이는 황사 바람.

 
 

 
어떤 봄날
-범물 시편 3
 
 
집을 나선다. 가벼운 신발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옷깃 스치는 실바람, 물오른 오동나무.
 
아파트 마당을 한동안 서성거리다가
산기슭으로 접어든다. 조그맣게 얼굴 내민
풀꽃들, 새 잎사귀들을 팔랑거리는 나무들.
 
무슨 새인지, 산벚나무 가지를 포르르
떠난다. 순간, 마음 아릿하게 흔들려
발걸음 멈추고, 눈을 들어 올려다본다.
 
산마루에 한가로이 걸린 구름 한 자락,
그 옆엔 희미하게 졸고 있는 낮달.
진달래 꽃잎들이 저만큼 흩날리고 있다.
 
가던 길을 되돌아 허둥지둥 산길 내려온다.
다시 아파트 마당. 나도 모르는 사이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쫓기듯이
 
번잡한 거리로 나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들, 그 틈에 끼어 달리다 서다 달린다.
-아니,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

촛불이 하나
-범물 시편 4
 
 
눈 감고 나를 들여다본다.
되다 만 말, 식어버린 말들이 뿌옇다.
입 밖으로 나오려다 입술에
말라붙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다 걸린다.
 
뱉어내려 하면 목이 멘다. 말이 안 된다.
길을 잃고,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들끓다 이지러진다. 다시 술렁거린다.
 
찬물 한 잔 들이켜고 줄담배를 피운다.
허공에, 창가에 허옇게 흩날리는
내 마음의 저 그림자들. 연기와 함께
이내 스러졌다가 안 보이게 되살아난다.
 
눈 뜨면, 흐린 하늘 아래 노랗게 절규하는
개나리들. 그 흐드러진 꽃들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목련나무가
남은 꽃잎들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나를 죄어오며 얽히고설키는 기억들,
그 거미줄에 단단히 발목 잡혔는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베란다 빨랫줄에 매달린 속옷가지들이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웬일일까.
무겁게 닫힌 내 마음 좁은 다락방에
촛불이 하나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봄비
-범물 시편 5
 

 
뜰이 젖고 있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새 풀잎과 연둣빛 나뭇잎들을 적시고
붉은 영산홍과 라일락 꽃잎의 보랏빛을
적시네. 내가 몸살로 기진맥진 헤매는 동안,
벚꽃들이 안간힘으로 가지를 붙들다가
꽃비 되어 내리고 있을 때도
키 낮은 민들레, 제비꽃들을 활짝 피우네.
담장 밖 산자락의 은사시나무,
미루나무들이 커다란 잎사귀를 쑥쑥
내미네. 한나절 가늘게 내리는 비는
앓아누운 나를 어루만져주지는 못하네.
비틀대는 내 마음, 창유리 타고 내리며
젖은 북소리를 울리고 또 울리네.
 
 
 
 
 
봄꿈
-범물 시편 6
 
 
 
못물에 비 내려도 이내 가뭇없듯이
구름 지나간 하늘엔 아무런 흔적이 없네.
바람이 스치고 지나면서
나뭇잎들 감질나게 흔들었을 뿐
가면 또 오던 바람, 간 곳이 오리무중.
오래 기다려 핀 꽃들이 며칠 새
다 떨어져 내리네. 지난날은
아무래도 그리운 물거품, 일장춘몽이네.
 
내 곁에 있어도 아득한 사람,
멀리 있어도 언제나 내 안에 있는 사람,
가깝고 먼 사람들 죄다 세월이 가면
그림자마저 희미해져버릴까.
물같이 가는 오늘도
비 내리다 그치고, 찌푸렸다 맑아져
구름이 가고 있네. 꽃이 피고 지고
바람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있네.

 
 

 
밤샘, 천장, 미망
-범물 시편 7
 
 
 
천장이 흔들린다. 누워서 올려다보면
조금씩 다가온다. 온몸 슬며시 끌어당기며
올라가는가 싶더니 다시 미끄러져 내린다.
코앞까지 다가온 천장이 불현듯
완강해진다. 사방연속무늬 끈으로 나를 묶어
들어 올린다. 허공에 뜬 마음도 잡아당긴다.
 
눈을 감는다. 방구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천천히 솟아오르며 내 몸을 잡아끈다.
사방연속무늬 끈들이 풀어지고
천장에 올라붙었던 두 눈이 내려오는 나를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다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시 눈 뜨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닫혀 있는 창. 사방의 벽들이
죄다가 풀리다가, 이윽고 희뿌연 미명.
홀로 비몽사몽, 밤새 켜둔 불을, 이 누추한
몸과 마음의 헛불을 꺼뜨려야 할 때다.
사방연속무늬 천정이 제자리에 드는 동안
미망 밀어내면서 창을 열어젖혀야만 한다.
 
 
 
 
 
길, 길들
-범물 시편 8
 
 
발이 공중에 뜬다. 길 위에
부푼 풍선처럼 마음이 떠다닌다.
가던 길 멈추고, 땅에 발 붙였는데도
길들은 막무가내, 비틀걸음으로 간다.
마음을 붙들면 몸이, 몸을 붙잡으면
마음이 아득하게 길을 벗어난다.
길들이 저만큼씩 가다가 되돌아와
내 앞에 눕는다. 어지럽게 흔들린다.
 
길가에서 아이들이 날리는 풍선과
비눗방울. 바람 따라 떠돌고 있는
풍선 속으로 마음이 들어가 날아다닌다.
날다가 이내 비눗방울 속으로 옮아
들어간다. 눈 감으면 몸도 따라 들어간다.
오색영롱한 빛깔 너머로 잠깐 사이
내려다보며 작아지다가 부서져 내린다.
길들이 제멋대로 나를 끌고 간다.
 




무명(無明)
-범물 시편 9
 
 
아프게 젖은 마음 뒤집어 소나무 가지에 걸어본다.
햇살들이 가깝게 뛰어내리는데도 이내 미끄러져 내린
다. 도무지 마르지 않는다. 솔잎 바늘에 찔리고 헤지며
더 무거워진다.
 
간밤의 악몽 부스러기들도 노란 송홧가루처럼 산지
사방 흩날린다. 밑도 끝도 없이 막막해지기만 하는 세
월. 목마르게 더듬어 찾아 나서던 길들이 희미해져 버
렸는데도 저리 환한 봄꽃 사태, 저 절정의 순간들.
 
꽃잎들과 소나무 위 하늘엔 탱글탱글, 이름 모를 새
들이 날아오른다. 간밤의 음산한 빗소리와 그 둘레, 꿈
속의 잡귀들이 여전히 어룽댄다. 바람은 또 옷자락 날
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내 마음이 지나온 길도 가야할 길도 아프게 젖어 허
공에 흩어진다. 올라가다가 내려오고,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는 저 무명의 그림자들. 눈을 뜨면 뜰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다.
 

 
 
 
광음(光陰)
-범물 시편 10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어쩌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하루가 또 그렇게 가고 있다.
오면 가고, 가서는 안 돌아오는 바람처럼
오더라도 다른 얼굴로 와서는
다시 떠나가는 사람들. 제자리에 선 채로
가고 있는 저 풀과 나무들.
흩어지는 새소리, 물소리 디디며 구름은
산마루를 넘어간다. 허공이 아득하다.
 
발길 재촉하면 시나브로 꽃들이 지고
나뭇잎과 풀들이 흔들린다.
가까운 듯 그는 저리도 아득할 뿐
내 안의 너마저 이다지 보이지 않는다.
세상 모든 길들이 제 길을 가고
흐르지 않거나 바뀌지 않는 거라곤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어쩌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저무는 하루를 이렇게 바라봐야만 한다.
 


.
,
이제야 길을 바꿔
-다시 어머니께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걸까요.
떠내려가지 않고, 떠밀려 다니지 않는
제 길로 돌아오게 된 걸까요. 어머니,
가고 싶은 길로만 가고, 하고 싶은 생각
마음대로 하고, 안 하고 싶은 일은
겨자씨만큼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바람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마음의 시냇물도 흘려보내고, 물가에 앉아
물 위에 이 생각 저 생각 썼다가 지우고 쓰고,
안 지워도 저절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바람과 함께 허공에 흩어질 때도 있지만
그런 길로 늦게나마 돌아온 걸까요.
 
어머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더 많이 가져보려고, 허명과 허욕을 채우려고
떠돌았는지 모를 일이지요. 모르는 게 아니라
그랬던 거지요. 그렇게 떠내려온 게지요?
하지만 이 빈손. 저 바람 소리, 물소리.
지나온 길들을 까마득하게 물러서게 하는,
 
늘 타이르셨듯이 까마귀 노는 곳엔
가지 않으려고 해요. 나 이제야 길을 바꿔
내키지 않는 건 접고, 오로지 가고 싶은 길로만
걸어갈까 해요. 산 입에 거미줄 치더라도
이 외진 길, 사람들이 구겨서 버리기도 한, 그런
길 위에서, 어머니, 이젠 흔들리지 않을래요.
 




제5부
 
 
청복(淸福)

 
 
이른 아침, 창문을 연다. 방 안의
고요와 침묵이 바람 쐬러 가는지,
저마다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바로 메우는 맑은 바람 소리, 물소리.
 
요즘 소식 끊긴 정휴 스님이
설악산 어느 절에서 창문을 여니
갑자기 넉넉함과 희열에 빠지더라는
그 느낌, 그대로 같다. 스님은 그 까닭을
마음의 때가 벗겨지고 가슴 씻기어
내면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라 했다. 그게
청복이라는 토까지 달았던가.
 
안 가지려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저 맑은 바람 소리, 물소리.
안 보이던 길들을 침묵과 고요 너머
가만가만 새로이 열고 있는,
 
 
 
 
 
귀리에게

 
 
겨우내 구름처럼 떠돌다가
따스한 봄, 강가에서 자라는 귀리들처럼
땅에 발붙이고 싶어지는 마음
 
뿌리 더 깊이 내리고 초록 몸 달구어
구름 흐르는 쪽으로 싱그럽게
마음 열어보고 싶게 하던,
 
귀리들이 온몸에 햇살 끌어당기며
허공으로 길어 올리는 땅기운
그 힘으로 열매 잉태하는 동안에도
 
바람에 떠밀려 산 넘고 강 건너 가야 할
시름 덩어리, 마음도 몸도 무거워지면
빗방울로 떨어져 부서질 저 뜬구름
 
이 봄날 한 포기 풋풋한 귀리 같은
그대여, 나는 아무래도 한 점 구름
마음만은 그대 향해 하염없지만
 
햇살 날갯짓하며 뛰어내리는 허공과
밤낮 안 가리고 먼지바람 부는 땅 사이
귀리는 귀리, 나는 뜬구름인 것을.
 
 
 
 
 
봄, 허공
 
 
 
꿈꾸는 힘으로 여기 남아 있는 걸까.
한밤에 꿈꾸고 대낮에도 꿈이다.
이 도가니, 벗어나고 싶은 수렁.
또 그런 꿈속이다.
그 뿌리조차 모른 채 시달린 간밤, 잠 속에서의
꿈길, 여태 아릿한 그 길 위에
햇살 받으며 포개지는, 낮꿈의 풀풀거림.

활짝 폈던 앞뜰의 벚꽃들이 한 이틀
꽃샘바람에 떨어지고, 흙비에 다 져버렸다.
꽃 진 자리에 새잎 돋아나고 열매 맺히듯이
부질없는 꿈 너머 가물거리는 저 허공.
며칠째 두문불출, 굴신하지 않고 바라보는
유리창 사각 틀 너머 저 한 자락 허공,
그 너덜거림. 비듬 같은 꿈 부스러기들.


 
 
 
초롱불
 

 
 
초롱꽃들을 들여다보면 마음 저 깊이에
초롱불 하나 켜집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대 더듬어가는 길 위의 지등(紙燈)처럼
오로지 하나의 초롱에만 불이 들어옵니다.
 
어둠 속을 헤매고, 낯익은 길 위에서도
자주자주 길을 잃고 떠도는 마음,
오늘은 그 바깥까지 환해지는 까닭을
그대는 아시는지요. 헤아리시는지요.
 
멀리 떠나버린 그대, 되돌아올 것만 같아
산 넘고 물 건너 굽이돌아 마중 가는 길,
길섶의 초롱꽃들이 밝혀주는 초롱불 하나의
이 애달프고 고즈넉한 둘레와 그 언저리.





물불
 
 
 
마음이 흔들릴 때 술을 마십니다.
술이 마음을 더 흔들면 또 더 마십니다.
술병 얻고서도 그 위에 술 많이 퍼부어
세상을 술 속에 묻어버린 아우 생각하면서 안타깝고 억울해서 술 술 술, 그 물불에
몸도 마음도 던집니다. 술독에 빠져서
내가 활활 타오릅니다. 물불이 탑니다.
 

 
 
 
마음 노래
-가곡을 위한 시
 
 
 
물을 보면 물이 되는 마음
아래로만 흐르는 물
바람을 보면 바람이 되는 마음
정처 없이 가고 있는 바람 소리
꽃을 보면 또 꽃이 되는 꿈
피었다 이내 시드는 저 꽃잎들
꿈 깨어 바라보면 끝없는 허공
그 속을 떠도는 티끌과 먼지들
오늘도 진흙소가 물 위를 가고
대지와 허공은 찢어지기만 하네
물을 보면 물이 되는 마음
아래로만 흐르는 물
바람을 보면 바람이 되는 마음
정처 없이 가고 있는 바람 소리
 
 
 
 
 
황혼의 노래
-가곡을 위한 시
 
 
 
서녘에 해 기울면 길게 눕는
내 그림자. 무거운 기억들과
기우뚱거리는 저 길들.
날이 저물어도 나는 마냥
웅크리고 서 있네. 스러지는
노을을 끌어당기고 또 당기며
무거운 생각들 다 지우려
안간힘을 쓰네. 낯설고 작은
새들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날개를 파닥거리네. 강가에서
이마 맞대고 어둠을 쪼아대네.
흔들리던 나의 집도 이윽고
둥글어지고, 그 집에 드는
내 마음도 둥글어지네.
 
 
 
 
 
작은 풀꽃
-가곡을 위한 시
 
 
작은 풀꽃 가까이 느끼려고 키를 낮추네
마음 붙들고 조심조심 낮게 내려서네
이마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키 작은 풀들
작아서 앙증스럽고 아름다운 풀꽃 풀꽃들
눈이 부셔 눈을 감을 수밖에 없네
눈 감고서야 더 잘 보이는 우리의 길
그 아득한 길 위에 꽃마차 하나 가고
길들은 둥글고 부드럽게 풀꽃들 끌어안네
풀꽃들이 끝없이 내 마음을 끌어당기네
풀꽃들이 끝없이 내 마음을 끌어당기네
 
 
 
 
 
우리 독도 1
 
 
 
한 많은 한반도의 막내 섬,
아득한 예부터 여기 이렇게 떨어져 앉아
바위가 된 채, 바위보다 고고한 우리 독도여.
누가 뭐라고 왜곡해도, 바람 불고 파도가
높고 거칠어도, 오로지 옥빛 하늘 우러러,
바다 멀리 가슴을 열고 앉았다간 서서
아비에게도, 어미 섬 울릉도에조차
투정 한번 할 줄 모르는 동도여, 서도여.
다정한 오누이같이, 사랑이 식지 않은 부부처럼
오랜 세월 그냥 그대로라도 얼마나 외로웠으며
할 말인들 끝 간 데 있겠니. 차마 입마저 없겠니.
마치 그 크기와 같은 하늘과 바다는 알고,
변함없이 날아드는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들도 알 만큼은 알고 있으련만,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호시탐탐 옆구리를 건드리거나
복장 터지게 하는 나라, 그런 나라 사람들의
창궐하는 억지와 거짓말 때문에
오죽 숨통이 막히겠니. 참다 참다 그것도 유분수라
차라리 태어날 때처럼 온몸이 터지고 싶어
보이기까지 하겠니. 그렇게까지 보이게 하겠니.
일찍이 삼봉도로 불리고, 우산도 가지도였다가
독섬 돌섬이라 독도로 부른 지도 벌써 언제부턴데
코 큰 사람들의 리앙꾸르 암, 호네트 암은 몰라도
다케시마 마쓰시마는 웬 말인지. 도대체
무슨 날도둑 소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그 속사정을 검정꽃잎버섯, 보라쓴맛그물버섯,
대청부채, 솔나리, 왜솜다리 들도 잘 알고
노랑부리백로, 물범, 금개구리, 수달, 맹꽁이인들
왜 모르고 있으랴만, 시도 때도 없이 떼쓰는
나라 사람들아, 진정 하늘이 두렵지 않고
바다가 무섭지 않니. 독도에게 낯 뜨겁지 않니.
한 많은 한반도의 막내 섬,
아득한 예부터 여기 이렇게 떨어져 앉아
바위가 된 채, 바위보다 고고한 우리 독도여.
하지만 네 곁엔 어미 섬 울릉도가 있고,
아비가 있다. 시마네 현이 아니라 경상북도가
눈 뜨고 있으며, 한반도와 세계의 가슴, 변함없는
진실은 한하늘, 한바다에 퍼덕이고 있다.
 
 
 
 
 
우리 독도 2
 
 
 
먼 난바다에 홀로 떠 있으나
내 머릿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섬.
오래전과 얼마 전, 두 차례나
험한 뱃길에 올랐어도 바라봐야만 했던 탓인지
아주 가까이, 더욱 깊이 가슴속에 파고든 고도여.
바위보다, 그 어떤 푯대보다 고고한 우리 독도여.
괭이갈매기, 슴새 들까지 이리도 따라와
시도 때도 없이 날고 있을 줄이야.
떼쓰는 나라 사람들의 억지가
뜬금없고 터무니없으되 이토록 사무칠 줄이야.
 
시인들은 네 이름을 무수히 불렀다.
옛날 잠수함 속의 토끼들처럼
위기 경보를 하며 함께 절규하기도 했다.
어떤 시인은 우리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며
미동도 않는 자세로 우뚝 솟은 파수병(1),
혈혈단신 맨몸으로 우리 땅을 지키려 나간
맨주먹의 섬(2)이라 했다. 인기척이 그리운
사막 같은 대낮 또는 그리운 행성(3)이라는
시인도 있었다. 조상의 담낭이고 자식의 담낭,
조국의 고독(4)이며, 이 캐럿 국토의 보물(5)이었고,
날마다 태어나는 빛의 아들이요, 단군 사직의
제단(6), 반도의 야경꾼(7)이라 불리었다.
우리의 막내 손자(8)나 막내아우(9)로 여기고,
동도와 서도를 오누이나 부부(10)로 보았으며,
또 다른 한국의 영원한 이름(11)이었다.
파도, 바람, 물새도 기역 니은 디귿 리을……로
한글 노래 부르는 시인들의 섬(12)인가 하면,
비바람 몰아치고 태풍이 불 때마다
안부를 걱정(13)해야 했고, 독도 만세를 부르자(14)거나
‘독도여, 함께 가자’(15)고 외치는 시인,
‘독도에서 살으리 살으리랏다’(16)라거나
주민등록을 아예 옮기려는 시인(17)마저 있었다.
 
너를 만나고 돌아온 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온통 네 모습, 견디기 어려운
뱃멀미와 구토였다. 팔을 뻗는 목마름이었다.
울릉도에서의 그 하룻밤, 하루 낮에는 모든 게
울렁거렸다. 아무리 울렁거려도
눈을 바로 뜨고 싶었다. 마음을
바로 세우고 싶었다. 파도가 아무리 거칠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뱃길에서는
눈이 연신 뒤통수에 있었고, 마음은 거기 그대로
출렁거렸다. 머리도 마음도 너무 아팠다.
 
 
<주> 2005년 4월 초 독도에서 열린 ‘독도 사랑 시낭송 예술제’ 중에서 인용. 인용된 구절들은 (1) 성찬경, (2) 조정권, (3) 박정대, (4) 고은, (5) 이기철, (6) 이근배, (7) 이가림, (8) 오탁번, (9) 오세영, (10) 필자, (11) 신달자, (12) 유안진, (13) 오세영, (14) 이근배, (15) 김종해, (16) 김소엽 시인의 시에서 땄고, (17)은 편부경 시인을 말한다.
 
 
 
 
 
내 고향 새실

 
 
고려 태조가 ‘의로운 성’이라 불렀던 의성에는 예
부터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충의효열
옛얘기는 다 접더라도 동쪽에 고즈넉한 새실, 사곡
자랑만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른 봄엔 노란 산수유꽃과 개나리꽃 사태, 작약
과 산수유 국내 최대 집산지요 군락지에다 즙 많고
매운 여섯 쪽 의성 마늘 원조 고장입니다.
개나리를 다른 데 옮겨 심으면 조롱조롱 맺히던 열
매들이 달아나고, 단맛의 배추도 시집가면 딴맛입니다.
씨 없는 감도, 지천의 온갖 약초들도 자랑거리나 사람
들의 인심은 더더욱 따스합니다.
일제 때 일본과 만주를 울분 삭이며 떠도셨던 아버
지는 어린 나를 꿇어앉혀 애국가도 가르치셨는데, 저
윗대 조(兆)자 년(年)자 할아버지처럼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이면 다정도 병인 양 잠 못 이루시다 돌아
가신 응달도 없지는 않습니다.
아직 산천은 의구하나 빈집이 많아져버린 음지리 앞
산 당나무 가지엔 어린 시절에 매달아놨던 옛꿈들이
여전히 새순과 갖가지 꽃들 밀어올리면서 꿈속에 이
따금 아련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내 마음의 십자가

 
 
깊은 밤, 홀로 성호를 그으면
조금씩 낮아집니다. 이마와 가슴,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에 차례로
희미한 불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낮아져야
환한 불이 켜질는지요?
 
날마다 가슴 치면서도
때로는 손이, 발이, 또 어떤 때는
마음이 고장 난 기계입니다.
제동을 걸어도 멈추지 않거나
옆으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프게 뒤척이며
이마 조아려 두 손 모으지만
그분이 대신 짊어지고 매달리셨던
그 십자가는 아득합니다.
불쌍히 여겨 내려다보기만 합니다.
 
도대체 내 마음의 십자가는
언제쯤 가벼워질는지요?
가벼워져서 그분의 눈부심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어두워질수록
환한 불을 켜게 될는지요?
 
 
 
 
 
성모 마리아
 
 
 
어느 하늘도 이보다 맑고 밝으리.
이보다 푸르고 부드러우리.
신록의 한가운데서 은은한 장미 향기로
가까이 오시는 성모 마리아.
오래 기다려온 이 눈부신 오월에는
저희 헐벗고 메마른 마음에
불 하나 밝혀 주소서.
오로지 한 분, 아니 모든 인류를 위하여
오직 사랑으로 믿음의 길을
열고 지키시는 성모 마리아.
수난과 아픔을 넘어 눈부신 하늘을
보여 주신 우리 어머니.
여기 이렇게 무릎 꿇고 이마 조아리는
저희의 빈손을 잡아 주소서.
겸허한 마음 일으켜
그분을 따르게 하시고, 언제까지나
품어 주소서. 불 환히 밝혀 주소서.
저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눈길 돌리고 마음 따스하게 포개어 주는
겸허한 정신을 깨우쳐 주소서.
오늘 밤 낮게 낮게 촛불 밝혀든 저희의
떨리는 이 목숨을 새로이 하소서.
당신 품안에 깊이 보듬어 안아 주소서.

 
 
 
 
천사
 
 
 
그는 꿈속에서 천사를 만난다고 한다.
모습이 다르면서 자세히 보면
다르지 않은 천사를
이따금 만난다고 한다.
 
앙증스럽게 꽃이 피거나
햇살 따스한 날보다는
바람 거칠고 눈보라 사나울 때,
마음 심하게 구겨져 뒤척이다가
칼잠이나 새우잠 들었을 때 그렇다고 한다.
 
희디희게 나부끼는 옷자락, 황금빛 날개,
이 세상에선 보일 리 없는
그런 모습으로 천사는 가까이, 따스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손을 내밀고 함께
어깨를 비비다가도 꿈밖으로만 나오려 하면
가뭇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자주 꿈속에서 헤맨다고 한다.
 
꿈속에서조차 단 한 번
천사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의 꿈이 부럽다.
꿈속에서조차 가위눌리기만 하는
내겐 요즘 그가 바로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옥빛 하늘
-이정우 신부님께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옥빛입니다.
그 하늘에서 햇살은 이 낮은 데로
눈부시게 내립니다. 겨울 꽃들이 그 햇살을
넉넉하게 받듯이, 우리는 이렇게
당신이 걸어온 길을 새삼 떠올립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꿈과 지극한 사랑,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끌어올리는 자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의 길.
당신은 그러면서도 세속을 뛰어넘은
구도의 모습, 그런 고즈넉한 오솔길을
여전히 저만큼 걸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말 없는 말의 깊은 세계를,
젖은 듯, 결이 곱고 촘촘한 듯, 기실은
그 안엔 깊은 메시지들이 완강한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그런 길 위에서 누구나
따뜻하게 끌어안아 사랑과 자유의 말들로
마른가슴에 부어 적시고 또 적십니다.
어떤 때는 어느 산기슭, 들녘, 바닷가쯤에서
아침을 먼저 깨우는 산새 소리,
한낮의 햇살 어린 물결 소리에 귀를 열다가도
저녁놀 진 산그늘 속에서 미리, 미리,
첫새벽에 스러지는 별들을 보십니다.
해가 지면 별과 달을 바라보면서
솔바람이 되고, 나직하고 따스한 노래를
읊조리십니다. 또 어떤 때는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 지귀의 가슴속을, 달마의 머릿속을
드나들다가 노방의 자주빛 앉은뱅이꽃,
아기손가락꽃에도 머물다가, 온몸이 아프거나
슬픈 천사처럼 은빛 날개 달고 어딜 간다고
뒷모습만 보이던 당신은 다시 어김없이
여기서 낮고 부드럽게 우리를 일깨웁니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 옥빛입니다.
그 하늘에서 햇살은 이 낮은 데로
눈부시게 내리고, 겨울 꽃들이 그 햇살을
넉넉하게 받듯이, 우리는 당신이 가는 길을
미리 이토록 떠올리고 있습니다.
 
<해설>
‘그림자의 그늘’에서 ‘회화나무 그늘’까지

 
 
김 선 학
 
 
 

이태수의 열번째 시집
『회화나무 그늘』을 읽으면서 계속 긴장되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곱씹어 보면 이태수 시의 한 특질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이태수의 시를 어려운 난해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시적 조사(措辭)는 일상적인 언어에 닿아 있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어에 닿아 있으면서 읽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것은 그의 시 대부분이 산문적인 수사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산문적 어법으로 이미지를 직조하지 않아도 될 사항을 이태수는 산문적 어법으로 서술한다. 이 경우 산문적 어법이란 주술의 관계가 분명한 문장으로 시의 행(行)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길을 달리다가, 어디로 가려하기보다 그저 길을 따라 자동차를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모두 4연으로 된 작품 「회화나무 그늘」의 첫 연이다. 압축과 내포의 함축적 시어들이라기보다는 지시적, 외연적 언어들이다. 이 작품의 다른 연들도 첫 연과 다를 바 없다. 길-자동차-회화나무로 이루어지는 시적 공간에서 이미지들을 사물로서 다가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설명적 풀이는 시의 언어가 환정적(換情的) 언어라는 리챠즈의 말과는 배반되는 자리에 있다. 정서를 불러 올 수 있는 틈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가 읽는 사람의 정서적 감응의 통로를 좁혀 놓는다면 설명과 진술의 산문적 양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독해를 요구한다. 읽는 사람의 긴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산문의 지시적 진술로 읽으려면 많은 부분 시와 산문의 분별이 모호해진다. 이 자리에서 긴장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무용에, 산문을 걸음걸이(行步)에 비유한 사람은 발레리다. 언어 그 자체에 모든 것을 정착시키는 일과 전달이라는 언어의 기본적 기능에 의지해 지시, 설명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의 차이가 시와 산문의 차이라는 뜻이다. 시를 읽는 일이 마음 편하게 정서를 읽는 사람의 내면으로 불러오게 하는 시적 조사가 아쉽게도 이태수의 시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태수 시들을 읽고 독해하려는 데서 오는 긴장감은 한 편 한 편의 시를 더 곱씹어 보게 하고, 시인이 시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시인의 수사가 힘차게 연결되는 덕목도 갖고 있다.
 
‘여태 먼 길을 떠돌았으나 내가 걷거나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군다. 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화나무가 품고 있는지, 이내 놓아줄 건지. 하늘을 끌어당기며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그 그늘 아래 내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
 
「회화나무 그늘」의 마지막 연이다. 회화나무와 길의 관계를 통해 시인 자신의 삶의 행로를 성찰하고 지금 시인의 존재가 처한 상황을 직핍하고 있다. 얼마간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는 언표에서 운명론적인 시인의 사유를 볼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세계 내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려운 문제인가를 암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태수 시의 강점은 그의 시가 산문적 표현으로 이미지를 직조하면서도 시인의 생각을 강하게 진술 설명하고 있음에서 찾을 수 있다. 긴장해서 시를 읽는 동안 시인의 사유에 다가가게 하는 힘을 그의 시는 산문적 진술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
 
 

시력 34년은 어떤 시인에게 있어서도 결코 예사로운 연치(年齒)가 아니다. 그것은 시작을 유년으로 본다면 청․장년에로 넘어서는 동안까지를 일컫는 매우 길고 의미 있는 기간이다. 70년대에서 시작한 이태수의 시작(詩作)은 이 기간 동안 세기를 넘어서게 되고 지금까지 쉼 없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그림자의 그늘"(1979), "우울한 비상(飛翔)의 꿈"(1982), "물 속의 푸른 방"(1986),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1990), "꿈속의 사닥다리"(1993), "그의 집은 둥글다"(1995), "안동 시편"(1997), "내 마음의 풍란"(1999),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등 아홉 권의 시집을 펴냈다. 2, 4년의 기간을 두고 간행된 시집들은 이태수가 매우 정력적으로 시를 써왔음을 무엇보다 확실하게 말해 준다.
첫 시집에서 ‘그늘’이란 표현을 놓칠 수 없다. 열 번째 시집의 표제에도 ‘그늘’이 있음과 그것은 연관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표제와 그 표제시는 그 시집을 대표하는 시인의 시적 세계를 머금고 있다. 시집의 표제와 그 표제시는 말하자면 그 시집 전체의 시세계를 집약적으로 아우르는 그 시인의 시적 세계의 에피그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집의 얼굴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시집의 ‘그림자의 그늘’이 30년을 넘은 지금 ‘회화나무의 그늘’로 시집의 표제가 바뀌어졌다.
그림자는 태양이 만들어 주는 어두움이다. 밝은 태양이 대상과 관계하면서 자신의 밝음을 어두움으로 만든다. 그 그림자에도 그늘이 있다고 시인은 첫 시집의 표제에서 말한다. 요컨대 어두움의 어두움이다. 시작 30년을 넘어서서 이태수는 어두움의 어두움에서 벗어난다. 길가에 우뚝 선 회화나무가 태양이 만나 이루는 자연 속의 그늘에 그의 시는 착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자의 그늘’이 내면적인 어둠이라면 ‘회화나무의 그늘’은 자연 속에서의 어둠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겠는가. 30년을 넘는 동안 시인은 내면에서 자연으로 나오기까지 ‘우울한 비상의 꿈’을 꾸면서 ‘물 속의 푸른 방’에서,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서 시인의 내면과 세계에 대한 사유의 터전을 가꾸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꿈속의 사닥다리’를 타고 둥근 집 뜰의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이 있는 자연으로 나왔다고 볼 수가 있다.
 
 
깊은 밤, 시를 쓰다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밥도 안 되어주는
시를 쓰겠다고, 잘 안되는 말을 앓고 앓다가
불을 끈다. 다시 켠다.
이불을 뒤집어쓴다. 또다시 일어나 앉는다.
 
자욱한 담배 연기. 허공에 발을 뻗다가
맥없이 발 오그리는 한 포기의 풍란.
담배 연기보다도 부질없는 저 먼지나 티끌들의
떠돎과 목마름, 또는 물거품과도 같이
비루하구나. 이미 늙어버린 내일이여.
 
비루하다 못해 황홀하구나.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뒤죽박죽 고삐 풀린 망아지,
풀어봐도 또 풀어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의 이 기막힌 얽힘. 스스로 만든
재앙만 넘쳐나는구나. 온통 어둠이로구나.

깊은 밤, 시를 쓰다가
누군가가 켜놓은 저 불빛의 흐릿한
흐느낌, 그 언저리를 맴돌고 헤매다가
영락없이 거기가 거기지만, 시를 쓰겠다고
일어나 앉는다. 또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다가
불을 켠다. 불을 껐다가 다시 눈을 뜬다.
-「깊은 밤, 시를 쓰다가」 전문 *굵은 글씨 부분-글쓴이

굵은 글씨 부분을 주목하면 불을 끈다→다시 켠다→일어나 앉는다는 행동이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인 ‘불을 켠다. 불을 껐다가 다시 눈을 뜬다.’와 상관된다고 할 수 있다. 앞의 구절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본다면, 끝 행은 밝음-어둠-그리고 밝음의 행동으로 말할 수 있다.
‘이미 늙어버린 내일’을 ‘온통 어둠’으로 인식하지만 다시 일어나 앉고 다시 눈을 뜨는 세계에 대한 시인의 의지가 그 곳에는 언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그림자의 그늘’ 그 어둠에서 ‘회화나무의 그늘’의 보다 밝은 곳에로의 이행을 알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그림자의 그늘이 내면세계에로의 침잠이라면 회화나무의 그늘은 자연에로의 돌아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일어나 졸음을 밀어내다 마주친 거울엔 바깥을 내다보는 내가 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추돌」, 둘 째 연
 
‘바깥을 내다보는 나’와 ‘안을 들여다보는 나’-이 두 자리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나’ 쪽에 이태수의 열 번째 시집은 자리한다. 그것은 ‘그늘의 그늘’을 천착하던 것에서 이제 바깥인 자연으로 자신의 눈을 착목시키면서 ‘회화나무의 그늘’에 와서 머문다.
시인 자신의 자아가 자연에 놓이는 자아로 이행하면서 갑년(甲年)을 넘긴 원숙한 사유의 결정을 드러내 놓는다. 그래서 다음의 구절을 획득하게 된다. 30년을 넘기면서 이태수는 시적 깨달음의 한 경지에 쟁기와 보습을 들이댄다.
 
그리기 싫은 그림 안 그리려고
제 눈을 찔러 장님 됐던 화가 최북,
하기 싫은 연주를 하느니 거문고를 아예
부숴버린 김성기, 평생 외길 걷기의 그들처럼
가지 않아야 할 길은 버리기로 했다. 그런
 
나만의 새 쳇바퀴를 돌리고 또 돌리면서
느리게, 때로는 속도를 붙이기로 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어두울수록 영롱한
별빛 더듬어 떠나기로 했다. 쓸쓸하더라도
나의 오솔길, 마음 가는 길로만 가기로 했다.
-「마음 가는 길로만>, 부분
 
 
"회화나무 그늘"의 제1부는 이태수의 시적 행로가 그림자의 그늘이라는 내면의 어둠에서 자연 속의 그늘로 나오는 그 과정과 경위를 표출하고 있는 세계다. 산문적인 조사로 읽는 사람을 긴장하게 하지만 힘찬 수사로 되씹으면서 음미할 수 있는 시적 세계 속으로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강한 흡인력을 보여주는 세계다.



제2부의 시들은 자연에 착목한 이태수의 시적 시선이 보다 구체적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작품의 행렬이다. 연꽃, 야생란, 건천(지명), 감포(지명), 오동나무 등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유를 구체화하고 있는 가편들이 제2부의 작품들이다.
 
창문을 연다. 이름마저 잃어버린
야생 난 한 포기 청초하다.
지난해 늦여름, 깊은 산에서 유배된 뒤
세 계절을 이겨내고 여름 문턱에서
홀로 시를 읊고 있는지, 그런 불을
지피고 있는 건지. 유월 이 아침,
진보라꽃들을 온몸에 달고 있다.
촘촘한 꽃잎들이 나를 올려다보지만
잎사귀의 초록빛은 꼿꼿하고 차갑다.
산속이 아니라 지조를 지키려는지,
몸에 밴 절제 때문인지. 수절하며
끝내 숨으려 하는 여인처럼
새치름, 내 마음 흔들어 당기고 있다.

-“야생 난 한 포기”, 전문

시인의 마음을 야생 난의 꽃잎이 흔들어 당기고 있다는 것은 야생 난이란 자연과 시인이 합일되는 자리이다. 이 자리는 시인이 자연으로 융화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건천 지나다가’, ‘다시 건천 지나다가’, ‘다시 감포에서’ 등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다가 시인은 자연의 사물에서 인간을 보려고 한다. 으능나무(은행나무)에서 권국명을, 고요함에서 조두섭을, ‘가을 날’에서 이인성을 보려고 한다. 자연에 착목하면서 거기서 인간의 모습을 찾는다. 그 인간들이 가진 모습을 시인의 자아와 대비시키면서 삶의 근원적인 물음인 죽음에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못 견디는 그리움으로 후박나무 밑에서 울고 / 별의 깊이보다 더 먼 어둠 속에서 / 무명(無明)의 저 쪽으로 고적(孤寂)과 함께 / 얼굴을 뒤척이다가 숨기기도 한다.’(‘어떤 으능나무-권국명 읽기’, 부분)와 같은 하나의 깨달음을 시인은 얻기도 한다. 

날 저물고 새들도 둥지에 든다.
서늘한 바람의 옷자락,
그 감촉에 몸 맡기며 숲길 돌아들면
땅거미 안으면서 어깨 추스르는 나무들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별이 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의 마지막 말들이 뜬다.
차마 잊지 못하고 있는 말들은 저토록
별이 되어 빛을 뿌린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그 별들이 숲에 내린다. 가슴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다른 세상에서 더러는 그리워할 뿐임을
말해주는 건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이내 다시 멀어진다. 여태 애태우던
말들도, 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제각각
허공에 빈 메아리로 떠돌고 있는지……
마음마저 더 어두워지고, 집도 점점
멀어지는, 낯선 저녁 숲길.

-저녁 숲길, 전문


해 저물 무렵의 숲길에서 헤어진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별이 되어버린 숱한 말들에 대한 시인의 사유는 모든 것이 제 각기 다른 세상에서 다른 길 위에 서서 그리워한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마음은 어두워지고 집도 멀어지는 숲 속에서 모든 것이 제각각 떠도는 허공의 메아리임을 확인한다.
로버트 프로스트를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만든 시가 "가지 않은 길"」이다. "저녁 숲길"도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같이 시적 대상이 숲이다. 프로스트는 숲에서 길을 말한다. 두 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택하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표출한다. 그것은 개척정신, 이른바 프론티어라고 말하는 미국인의 정서와 합치되었기 때문에 프로스트는 미국의 국민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숲길을 시적 대상으로 하면서 멀어진 것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나, 숲길에서 많은 사람이 택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시인의 사유를 말하는 것은 모두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저녁 숲길"이 개인의 내적 자아를 그리움이라는 정서로 치장하고 있는 정감의 세계라면, "가지 않은 길"은 시인의 내적 사유를 세계와 현실에 접목시키는 정서의 세계다.
1970년대 유신의 시기를 거쳐 80, 90년대 초까지의 민중의 시대와 문민정부 시대 그리고 세기말 IMF를 겪으면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격동했던 시대를 살아온 것이 시인 이태수가 시작(詩作)을 한 34년의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대자적(對自的)인 사회적 관심과 벽을 쌓고 즉자적(卽自的)인 내면의 세계에 주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그것대로 소중하다.
‘시인은 저주 받은 존재’라고 사르트르가 말했을 때, 의미의 다의성은 있지만 자아에 칩거하는 시인의 비현실적인 즉자적 가치관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보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프로스트의 숲길과 이태수의 숲길을 대비하면 이태수 시의 장점과 그 한계의 한 자락을 볼 수도 있다. 제2부의 시들은 매우 짜임새 있는 가편들이지만 이태수 시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을 여기서 찾는다. 




사뇌가(詞腦歌)라고도 불리는 신라시대 향가(鄕歌)의 세계를 일연(一然) 김견명은 경덕왕의 말을 빌어 ‘기의심고(其意甚高)’라고 "삼국유사"(제2권 경덕왕과 충담사․ 표훈대덕 항목)에 적고 있다. 향가의 내용과 그 뜻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뜻이 매우 높은 향가에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있다. 월명이 죽은 누이에 대한 제(祭)를 올리면서 결별의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신체시가 발표된 20세기 초, 정확히는 1908년 이전의 한국에 한국 한시(漢詩)를 제외하고 모든 시는 음악적 요소인 ‘가(歌)’와 미분화(未分化)되어 있었다. 따라서 문학적인 요소는 그 노래의 노랫말에 해당하였다. ‘가(歌)’와 ‘요(謠)’ ‘곡(曲)’ ‘조(調)’가 장르의 이름에 따라붙는 것은 이 저간의 사정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향가 역시 그 곡조는 모르고 우리는 향찰 표기로 된 그 노랫말을 해독하여 시적 의미를 발굴하고 있을 따름이다.
 
‘생사(生死)의 길은 /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 나는 간다 말도 / 못다 이르고 갔느냐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도 /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彌陀刹)에 만날 나는 도(道) 닦으면서 기다리련다’
 
「제망매가」를 현대어로 풀어본 전문이다. 형제의 죽음을 불교적 세계관으로 말하면서 그 슬픔을 신앙의 경지까지 끌어다놓은 곳에 이 노래의 진수가 있다.
이태수의 시집 "회화나무 그늘" 제3부는 불귀의 객이 된 아우에 대한 간절하고 애타는 시적 절규이다.
 
아우 먼저 보내고, 관에 흙을 뿌리며
선생님처럼 ‘좌르르 하직’했습니다. 아우는
눈감으면서도 그랬듯이 아무 말 않고
말을 다 잃은 나는 아무도 안 보이는 데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요. 울고 있는지요.
봄날인데도, 선생님 말씀대로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입니다.
모든 게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아우는
여기에서의 그 빼어남 펴다 말고
모두 팽개쳐버리면서
형님! 하는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고,
처자식은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불현듯
‘초월적 지상’을 ‘지상적 초월’로
바꿔 버렸습니다. 선생님, 아프게도
‘다만 여기는 / 열매가 떨어지면 /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입니다.
내가 툭 떨어져 흔들리는, 그런 세상입니다.
-「하관(下官)-목월 선생께」, 전문
 
아우의 박사 학위논문 「초월적 지상과 지상적 초월」이 함의하는 아우의 죽음과 그 운명에 대해 형인 시인은 오열을 넘어서는,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자신의 존재가 툭 떨어져 흔들리는 슬픔을 감득한다. 제3부의 이 간절하고 절절한 ‘사제곡(思弟曲)’은 이태수의 산문적인 시적 수사가 적절하게 자제되기도 하면서 오히려 그 산문적 수사의 힘이 슬픔을 가중하여 읽는 사람에게 감동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고 있다.
시집 "회화나무 그늘" 제4부는 부제로 된 ‘범물시편’이라는 연작이다. ‘범물’이라는 ‘산발치 마을’, 즉 자연으로 시선을 돌린 시인의 생활과 사유의 시적 표현이다. 제4부에 ‘범물시편’이라는 부제가 붙지 않은 유일한 작품 「먼 불빛」에서 자연으로 시선을 착목시킨 시인의 모습은 이제 그 자연에서 자아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한다.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먼 불빛」, 전문
 
 
‘무명의 불빛’, 그것은 시인이 자연의 회화나무 그늘에서 확인하는 깨달음의 언표(言表)가 아닐는지. 내면에서 자연 속에 자아를 던져놓고 얻게 되는 사유의 결실이 아닐는지.
제5부의 작품은 두 갈래로 나누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는 시인의 내적 자아가 성찰한 단상들이다. 후반부는 행사시로 보이는 작품들이다. 전자의 시들이 시적 구성에서 짜임새를 보여준다면 후자의 시들에는 산문적 어법이 두드러져 있다.
 

허균은 그의 「성수시화」 첫머리에서 최치원의 시를 두고 ‘천박해서 웅혼하지 못하다.’고 일갈하였다. 이유를 소상히 밝히지 않고 최치원이 당나라 사람인 ‘정곡과 한악 같은 무리’의 시와 같다고만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가을밤 내리는 비」 절구(絶句) 한 수(首)가 가장 좋다고 했다.
시를 말하고 해설하고 논한다는 것은 허균이 최치원을 말하듯이 분명한 평가에 귀착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시인들은 제 각기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시로 펼치고 있다. 그 세계의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를 논단하고, 시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시 존립의 터전을 황폐화 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만화방창한 날에 백화난만한 꽃밭처럼 각각의 개성과 향기를 가지고 존재하여야 그 터전이 풍요로워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태수의 시집 "회화나무 그늘"이 가진 시의 세계를 천착한 이 글은 아무래도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가 가진 장점의 한 켠에는 한계성이 도사리고 있고, 그 한계성이 오히려 이태수의 시를 더욱 이태수의 시답게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이 글은 일관되었을 것이다.
‘그림자의 그늘’이라는 암울한 자아의 세계에서 ‘회화나무 그늘’이라는 자연에 착목하기까지 이태수의 시세계는 아우의 죽음으로 더욱 침울해지지만 자연을 통한 성찰로 인해 한 깨달음의 영역으로 근접하고 있다.
시인의 즉자적 세계인식이 대자적 세계인식보다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이 강요되는 것은 다원적 가치관이 존립해야 하는 문학의 세계에서는 획일화에 해당한다. 그것은 시를 포함하는 문학의 전체주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평>
 
길의 현상학
 
이 진 흥(시인)

 
<1>
이태수 시인은 1979년 첫 시집 "그림자의 그늘" 이후 30년 만에 10번째 시집 "회화나무 그늘"을 상재하였다. 공교롭게도 첫 시집과 이번의 시집 제목에 ‘그늘’이 들어있어 그의 키워드가 그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시집을 관류하는 시적 기본어는 ‘길’로 보이고, 우리는 이 시집을 길의 현상학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우선 시인 자신이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인의 말’에서 “이 열 번째 시집을 먼저 일찍 세상을 떠난 아우를 기리며 지나온 길들에 바친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은 세상을 떠난 그의 아우와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길(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집의 제 3부는 그야말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우에 대한 간절하고 애타는 시적 절규”(김선학의 해설)로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시집은 ‘시인의 말’에서 보이듯 그의 ‘지나온 길들’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으므로 그 ‘길들’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흔히 우리는 삶의 여정을 길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한다. 우리는 그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헤어진다. 그 길에서 나무와 돌과 강을 만나고 골짜기의 꽃과 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을 가는 존재이며 길은 삶의 내용이 된다.
그런데 길이란 우선 물리적인 통로이다. 길은 그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서 오솔길과 한길 혹은 산길과 들길로 나뉘기도 하고, 뱃길과 철길이 되기도 한다. 길은 우리의 눈길이나 손길 혹은 발길이 되기도 하며 삶의 수단이나 방도를 나타내는 살 길이나 손쓸 길로 불리기도 하고, 군인의 길이나 시인의 길이 되기도 하며, 인생길 혹은 진리의 길(道)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길은 매우 다양한 양태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시인들은 그것을 다채로운 삶의 은유로 즐겨 쓰는데, 특히 이태수 시인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그의 시적 주제로 혹은 사유의 단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조금만 그의 시를 눈여겨 보면 도처에 길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예컨대 이 시집에는 길이라는 시어가 전체 67편의 작품 중에서 36편에 등장하고, 한 작품 「마음 가는 길로만」에서 무려 11회나 나타나기도 한다. 한 시집에 그렇게 많은 ‘길(들)’이 등장하는 것을 시인이 의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길의 빈도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은 시인의 무의식이 그것을 절실하게 찾고 생각하고 붙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을 해명하는 데는 바로 이 ‘길’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2>
시인은 “어느 봄날, 눈 딱 감고(32(괄호 안의 숫자는 인용된 시집의 쪽수임))” “서른네 해나 돌리던 하나의 쳇바퀴,/내가 돌던 그 바퀴에서 뛰어(16)”내렸다면서 지금까지 “서른네 해 동안 외길을 걸어온 신문사를 떠나 조금은 자유로워졌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안 가고 싶은 길은 가지 않기로”하고 오래 꿈꿔온 “가고 싶은 길을 가기로 했다(32)”고 한다. 그리고 나서 보니 이제야 자신이 “잘 들여다”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더 잘 보이므로 두렵고 아득해진다.(16)”고 고백한다. 두렵고 아득해지는 것은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낯설기 때문이다. 우선 표제시(24-25)에서 ‘달려온 길들’과 ‘가야할 길’에 대한 불안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길을 달리다가, 어디로 가려하기보다 그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 백 년 정도는 그랬을까. 마을 초입의 회화나무는 제자리에서 오가는 길들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 따라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나처럼 뜬금없이 머뭇거리기도 했으련만, 두껍기 그지없는 회화나무 그늘.
 
그 그늘에 깃들어 바라보면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며 펄럭이는 바람의 옷자락. 갈 곳 잃은 마음은 그 위에 실릴 뿐, 눈앞이 자꾸만 흐리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는지,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여태 먼 길을 떠돌았으나 내가 걷거나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군다. 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화나무가 품고 있는지, 이내 놓아줄 건지, 하늘을 끌어당기며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그 그늘 아래 내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
—「회화나무 그늘」 전문
 
시인은 “그저 길을 따라”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선다. 그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본다. 그 나무의 그늘은 “두껍기 그지 없”고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이제는 “눈앞이 자꾸만 흐”려지고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구는데, 시인은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회화나무의 두꺼운 그늘 아래 붙잡혀 있다.
그야말로 미토스적인 정황이다. 분석심리학을 빌린다면 아마도 늙은 회화나무는 꿈속의 현명한 노인 혹은 거인(또는 신)이고, 두꺼운 그늘은 시인의 깊은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그림자)일 것이다. 현명한 노인은 시인에게 이름 모를 새들을 시켜서 지저귀지만(말을 건네지만) 딱하게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낯선 것은 두려운 법, 시인은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그래도 이젠, 길 없는 길로/바꿔 탄 쳇바퀴를 돌리고 돌려야(17)”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낯익은 길로 걸어왔지만 이제 시인은 “늘 가던 길이 낯설어진다(26)”고 한다. 낯선 것은 불안하게 한다.
일상인은 낯익은 사물의 겉모습만 스쳐보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을 잊고 산다. 그러나 일상성이 깨지면 사물은 갑자기 낯설어지고 그 낯설음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실존을 각성케 한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본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문득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 때부터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고립되면서 그는 일상성에 매몰되었던 자신의 실존과 조우하는 것이다.
시인은 낯익은 일상성을 깨뜨리고 낯선 정황 속에서 자신을 각성하는 실존이다. 그는 노력하므로 헤맨다. 길 잃고 헤매는 것은 그의 숙명이다. 시인은 지금까지 “떠밀려 다니던 길(32)”을 버리고 이제는 “가고 싶은 길” 혹은 “오래 꿈꿔온 길(32)”로만 가겠다면서 돌리던 쳇바퀴에서 뛰어내렸지만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다시 “바꿔 탄 쳇바퀴(17)”일 뿐이다.
오히려 이제는 “거미줄에 단단히 발목 잡혔는지/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91)”고, “지나온 길도 가야할 길도 아프게 젖어 허공에 흩어(97)”지며, 길들이 제멋대로 그를 “끌고 간다.(96)”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시인은 다시 멀리 희망의 “불빛 한 가닥(83)”을 발견한다.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먼 불빛」 전문
 
돌아보면 지금까지 삶은 떠돌고 헛돈 일이며 남은 것은 바람과 먼지뿐이다. 그리고 저물기 전에 또 어딘가로 가야 한다. 버릴 수 없는 짐을 지고 허공의 메아리를 들으며 등 떠미는 먼지와 바람에 밀려 또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게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돌아보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멧새들의 따스한 지저귐(50)”이 들려오고, “마음 비우고 길 다 버리고” 보면 “가르마처럼 열리는 숲 속 길,//햇살 뛰어내리며 되비추는/우리의 저 오솔길 한 줄기(51”>가 보인다. 그것은 마치 눈먼 일상의 거부할 수 없는 시지포스적인 노역 속에서도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인 것이다.
 
<3>
생각건대 인간은 길을 찾아가는 혹은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대자로서의 인간은 즉자인 사물과 달리 미완/결핍의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기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자유의 길을 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의 앞에는 많은 길(들)이 있다. 길이 많아서 역설적으로 인간은 길을 잃고 헤맨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맨다.(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고 말한다. 여기서 ‘헤맨다(irren)’는 말은 길을 잃어 헤맨다는 의미이다. 그런 뜻에서 헤맨다는 것은 자신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앞에서 우리는 이 시집을 길의 현상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집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길’에 관한 분명한 의미를 시인 자신이 시집의 뒤표지에서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낯익은 길을 걷고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지만 “안간힘으로 그 길을 버리거나 벗어나 헤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낯익은 길에 다시 발길이 닿아 있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낯익음과 낯설음의 사이를 전전하면서 ‘물 위의 기름방울’ 같은 존재자로서의 갈등과 모순을 고백한다. 즉 “‘지금·여기’를 뛰어넘고 싶”어 하면서도 “다시 ‘여기·지금’을 끌어안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두 겹의 마음’이 빚어내는 갈등과 모순과 반복이 바로 자신이며 마치 ‘물 위의 기름방울’처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헤매면 헤맬수록 길들은 아득하게 물러”서지만, “그래도 길을 나서며 꿈을 꾼다.”고 한다. 마치 저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헛도는 쳇바퀴를 돌리면서 그는 이제 “초월에의 꿈이 점차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과도 가까이 손잡고 있는가 보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위 존재망각의 일상성 속에서 피동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횔덜린의 말처럼 인간은 그러나 지상에 시인으로(dichterisch) 살고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일상의 낯익은 길에서 비일상의 낯선 길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태수 시인은 그의 오래된 쳇바퀴에서 뛰어내리지만 그가 내린 곳 역시 “바꿔 탄 쳇바퀴(16)”일 뿐이다. 그래도 시인은 다시 길을 나서며 ‘초월에의 꿈’을 꾸면서도 그것이 “점차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과도 가까이 손잡고 있”다고 느낀다. 초월에의 꿈과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 사이에서 ‘물 위의 기름방울’로 떠도는 시인의 실존적 고뇌를 노래한 것이 시집 "회화나무 그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