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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0

2006년 10월 24일 '낳고 기른 보답이 외로움·서러움'
이태수 | 조회 421

 '낳고 기른 보답이 외로움·서러움'


孝道는 여전히 중요한 미덕 / 자식 없는 게 되레 나아서야

 

옛날 마을 공동체엔 ‘동네 어른’의 말과 지혜, 불호령이 권위의 상징이었다. 질서와 규범, 올바른 정신의 구현은 그런 어른들이 주도했다. 어떤 갈등이나 是非(시비)가 생길 경우 설득력 있는 판단을 내려줬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상담했고, 부도덕한 행위엔 충고와 경고가 내려졌다. 동네 어른이 ‘全天候(전천후) 지도자’였던 셈이다.

동네 어른은 전통적인 敬老孝親(경로효친) 사상과 도덕적 관념의 상징이었으므로 그 권위가 온 마을에 미쳐 질서와 안녕이 지켜지는가 하면, 마을 정신을 구현해 외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런 노인의 판단엔 異說(이설)이 있을 수 없었다.

지난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같이 노인들이 받들어졌다. 특히 농경사회에선 어른의 권위가 거의 절대적이었다. 농사엔 경험이 중시되고, 노인들은 그런 경험이 많았으므로 효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실제적인 능력이 孝道(효도) 사상과 맞물리면서 노인 중심의 문화가 형성됐으며,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엔 노인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연로한 王(왕)과 70세 이상의 文官(문관) 중 정2품 이상 고위관료는 ‘耆老所(기로소)’에 들어가 우대받았다.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만 응시자격을 주는 ‘기로과’라는 과거제도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 같은 국가 정책은 평화로울 땐 ‘충’보다 ‘효’를 중시하며, 효행을 추켜세우던 가치관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노인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혜와 지식은 밀려나고,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시대역행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불합리한 虛構(허구)로까지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도시화와 개인주의화로 치닫는 ‘핵가족사회’에선 지난날과 같은 권위나 설득력의 설자리가 날로 좁아졌다.

효도는 여전히 중요한 미덕이나 시대가 바뀌어 ‘老少共存(노소공존)’의 논리가 필요해졌다고 봐야 할는지…. 노인들이 받들어질 수만은 없게 되고, 나름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이게 돼 버렸다. ‘대구 노인 학대 예방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상담 건수가 564건, 신고는 158건이며, 올해 상반기엔 상담 233건, 신고 89건이었다. 체면 때문에 침묵을 지키는 노인들을 떠올린다면, 실제로는 그 정황이 훨씬 심각할 것이다.

자식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노인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무관심과 忽待(홀대)의 정도도 심해지는 세태는 우려된다. 최근에 또 지병을 앓던 70대 노부부가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에서 동반 투신자살했다. 이런 충격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대구`경북에도 65세 이상 노인이 6월 말 현재 각각 20만 1천여 명, 36만 7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7.9%와 13.7%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의 경우 3만 7천여 명이 ‘홀몸노인’으로 노인 인구의 18%에 이르고, 기초생활수급자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노인 복지시설도 劣惡(열악)하기 그지없다. 대구 지역엔 노인복지시설이 노인 1천 명당 7.1곳으로 22곳이 넘는 전남`전북`충북과 20곳의 충남 등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대구`경북 지역의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다른 어느 곳보다 시급하고 절실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효도와 어른 恭敬心(공경심)의 추락 현상이다. 적지 않은 노인들은 자식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고 한탄하기까지 한다. ‘낳고 기른 보답이 외로움과 서러움뿐’이라든가, ‘차라리 자식이 없는 게 나았을 것을’이라고 푸념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이는 푸념을 넘어선 絶叫(절규)에 가깝지 않은가.

60대 이상의 ‘黃昏(황혼) 파산’도 2년 새 6.3%에서 11.5%로 급증하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명 중 1명꼴에 근접(9.5%)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인 1명당 부양 인구도 7.6명으로, 그 사정은 계속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판국이다. 복지부는 노인 일자리를 내년엔 11만 개로, 2010년엔 38만 개로 늘린다고도 발표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닐는지….

지난 한가위 연휴 때도 歸省(귀성) 행렬은 어김없이 전쟁을 방불케 했었다. 조상과 어른을 받들고 찾는 마음자리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반의반’만 같다면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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