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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0

2007년 01월 02일 '위는 특히, 아래 역시' 달라져야 한다
이태수 | 조회 500

'위는 특히, 아래 역시' 달라져야 한다

 

새해가 되면 옛 선비들은 임금에게 國事(국사)에 대한 글을 올렸다. 계곡 張維(장유)의 ‘새해가 시작하는 때 더욱 申命(신명)의 아름다움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는 그 한 예다. ‘周易(주역)’이 말하는 ‘신명’은 ‘위에서는 아래의 마음을 따라 명령을 내리고, 아래에서는 위의 뜻을 좇아 따르는 것’을 뜻한다.  

‘아래’를 위해 소망의 편지를 보내는 일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다산 丁若鏞(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君子(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 번 새롭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家門(가문)의 몰락으로 벼슬길이 막힌 자식에게 聖人(성인)·문장가·참선비의 길은 막히지 않았다며, 학문에 정진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도 ‘위’는 ‘아래’를, ‘아래’는 ‘위’를 제대로 헤아려 다스리고 따른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따스해질까. 막무가내 ‘코드 인사’와 ‘줄서기’, ‘내 편, 네 편’과 ‘아래위의 갈등’ 등으로 얼룩진 지금 우리 사회에 비춰 계곡과 다산의 이 편지는 소중한 일깨움이요, 깊이 새겨야 할 龜鑑(귀감)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워지고 싶은 갈망이 더해지는 새해다. 갈등과 反目(반목)을 넘어 위를 향해서도 아래를 보면서도 달라지려는 마음을 다지고,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을까. ‘作心三日(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으되, 새해의 결심이 ‘으레 깨지는 것으로 여기는 마음’까지 ‘깨져야 할 固定觀念(고정관념)’이었으면 좋겠다.  

이태 전, 어떤 업체가 사원들의 새해 결심 중간점검을 했더니 아예 결심을 ‘안 한 사람’보다 ‘한 사람’들이 적어도 반걸음 정도는 앞서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크지 않은 공동체 안에서 새 결심 有無(유무)가 이 같은 차이를 빚는다면, 그런 결심이 국가 장래에는 어떤 작용을 하게 될 것인가. 한 사람 한사람의 제대로 된 결심이 모인다면 국가와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쏟아낸다. 지난번 大選(대선) 때 과거와 거꾸로 가려는 사회적 反作用(반작용)이 참여정부를 낳았던 건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달라져도 너무 잘못 달라져 갈등과 고통이 가중되기만 했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다시 거꾸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한 예만 들더라도, 정부 主導(주도)의 ‘지나친 반공’에서 ‘지나친 좌편향’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이 엄청난 변화 때문에 우리 사회의 나침반이 마비될 지경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과연 우리가 탄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아졌다.

별로 과장하지 않아도 ‘총체적인 위기’라는 말이 귀에 못 박일 정도다. 어느 모로 봐도 ‘四面楚歌(사면초가)’라는 말도 실감난다. 그런데도 최고통치자와 추종 세력들이 아래와 주위의 여론엔 아랑곳하지 않고 我田引水(아전인수)의 말, 말, 말이다. 자기변명과 ‘네 탓’만 거듭하면서 오로지 ‘제 길 가기’다.    

한참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가의 복원력이 작용하는 ‘政權(정권)의 반대편’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고 있는 것 같다. 주춤거리던 ‘현대판 선비’들과 나라의 장래를 진정으로 우려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도 날로 두드러진다. 제 정신과 용기를 되찾는 ‘새 희망의 조짐’들이 점차 가시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또 어떤 變數(변수)들과 만나게 될지, 어떤 결과와 연결될는지…. 갈수록 불안해지는 건 ‘요동치는 안개 속 政局(정국)’ 탓이다. 위의 이전투구식 政爭(정쟁) 때문이다. 위와 아래의 소통이나 끌어안기와는 상관없이 오는 연말의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노림수 속출과 수상한 기미들의 행진이 가속화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올해 우리는 더 나은 길로 나아가느냐, 그 반대의 길을 걷느냐 하는 ‘중대한 선택의 岐路(기로)’에 놓이게 됐다. 민생과 국가 경쟁력에 새로운 힘이 돼줄 경제가 살아나야 하고, 갈등과 반목이 相生(상생)과 和解(화해)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 할 수 있는 대선을 치러야 하고, 말기 정권의 레임덕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새해엔 ‘위는 특히, 아래도 역시’ 새롭게 달라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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