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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0

2006년 09월 26일 '시장만능주의' 능사는 아니다
이태수 | 조회 448

 '시장만능주의' 능사는 아니다

 

人文學(인문학)이 죽어간다는 自省(자성)과 비판의 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의 ‘인문학 선언’에 이어 전국 대학 교수들의 연대 서명 바람이 일면서 그 불길이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은 80여 개 인문대 학장들이 인문학 지원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학술진흥재단도 올해를 ‘인문학 부흥의 해’로 정하고, 국가 발전 전략과 연계시키려는 실천 방안들을 내놓았다. 학계와 관련 기관들이 손을 잡고 이번 주를 ‘인문 주간’으로 정했으며, ‘열림과 疏通(소통)의 인문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기도 했다. 절박한 몸부림으로 보이듯이, 늦은 감이 있으나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늦출 일이 아니다.

그간 대학사회에서조차 인문학의 위기는 피하기 어려운 현실로 여겨졌다. 危機意識(위기의식)마저 무감각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기가 없거나 취업이 잘 안 되는 인문학 분야는 전공자가 계속 줄고, 통폐합?폐지 등 구조조정의 우선 대상 신세가 됐다.

더욱 답답한 건 이 같은 위기에도 그 관리와 克復(극복)을 위한 움직임이 거의 가시화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문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학과가 없어지거나 다른 학과에 흡수돼 설자리를 잃은 교수들은 허겁지겁 전공을 바꾸는 등 變身(변신)을 시도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2003년 대학 정원 自律化(자율화) 이후 대학별 정원만 관리하고, 학과별 통계에는 신경을 끄고 있는 판국이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역시 바라보고만 있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인문학계는 달랐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적극성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문학계의 내부적 위기 要因(요인)은 무엇인가. 학문적 업적을 공유하려는 열린 자세와 시대적 변화에 둔감한 눈높이, 협소한 전공지식의 반복 전수 등이 위기를 자초하지 않았는지…. 사실 학계에서도 그런 자성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는 학문 내부적 요인보다는 외부적인 데 더 큰 영향을 받아 왔다고 봐야 한다. 대학의 특성화나 차별화와는 담을 쌓은 채  ‘너도 나도’식으로 인문 분야의 학부나 학과들이 만들어졌으며, 안일한 운영을 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市場(시장)만능주의’가 학문의 전당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는 경제적 부가가치 생산에 이익이 되는 분야만 중시되고, 학생들이 모여드는 풍토가 돼 버렸다. 그 결과 대학이 ‘시장판’에 다를 바 없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성과)보다는 그 계획에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 정책이 인문학의 깊이 있는 성찰에 沮害(저해) 요인으로 작용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학자들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연구 계획서를 쓰느라 사회와의 소통을 통한 연구를 소홀히 하면서, 스스로 낡고 고고한 성에 갇혀 있었다고나 할까.

요즘 대학에서는 文·史·哲(문·사·철-문학·사학·철학)은 물론 글쓰기 교육이 도외시돼 지식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자탄이 쏟아진다. 지난날 학자들뿐 아니라 지성인?지식인이라면 인문학적인 바탕 위에서 생각이나 뜻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게 거의 필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어떤가.

대학 교육이 그런 원래의 빛깔을 잃어 간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논리적인 사고나 글쓰기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 같은 바탕이 돼야 응용학문·실용학문도 빛이 나게 마련이다. 달리 말하면, 교양과 문학의 위기, 대학과 고급문화의 위기는 인문학의 衰退(쇠퇴)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벼움과 황금만능주의로 흐르는 현상도, 극심한 價値觀(가치관)의 혼란과 윤리?도덕의 붕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산업화?정보화 사회의 급속한 진전은 뿌리가 튼튼한 지식보다는 바로 쓸 수 있는 정보만 부추기고, 좇았다.  

‘깊은 思考(사고)’를 밀어내고 ‘쉽게 얕게’ 모든 사안을 재단하는 풍조는 경계돼야 한다. 이런 ‘가벼움과 쉬움’ 추구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흔들었으며, 위기에 빠뜨리고 있지 않은가. 인문학이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긴 말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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