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12-11-21 15:13

킬럼-1

대구미술계에 기대를 건다
이태수 | 조회 871

 

대구미술계에 기대를 건다

 

李 太 洙 <문화부장>

 

 대구 미술계는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체질이 특이하다. 서양화는 보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반면 한국화는 그 반대의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근년 들어 대구 서양화단에는 자연주의나 인상파의 화풍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구상(사실)계열 화가들의 활동이 거의 절대적이다. 특히 30~40대들은 새로운 형상성을 추구하며 실험의식이 강한 비구상(추상)이나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경우보다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구상 쪽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 구상계열 화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사실에 충실하고, 확실한 묘사력과 색채감각, 세련된 감수성이 뒷받침되고 있어 종래의 구상회화와는 다소 변별되는 모습을 보인다. 온건한듯 하면서도 은밀하게 새로움을 돋우어 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서양화단에서는 ‘영남화풍’이라는 말이 나돌고, 실제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한국화의 경우는 이와는 대조적이다. 수묵을 위주로 한 남화풍의 그림은 가라앉은지 오래다. 새로운 감각의 채색화가 강조되고, 한국회화의 동질성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젊은 작가들은 재료나 기법 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한국화와 서양화의 구분마저 의미가 없어져가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이 같은 현상은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서구의 방법론을 받아들여 새로움이 강조돼야할 서양화는 오히려 보수적이고, 우리의 전통과 연결고리를 달고 있는 한국화가 혁신 쪽으로 나아간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이점이 바로 대구화단의 기대치를 높여준다. 이 지역 화가들도 이제 국제화시대에 부응하는 증좌라고 감히 말해볼 수도 있다.

 

 ‘ 신대륙 찾기’ 쪽으로 나아가던 서양화가 ‘내실 다지기로 방향을 바꾸고, ’고유의 성‘안에서 그 특성을 갈고 닦던 한국화가 「새 지평 찾기」로 발길을 돌린다는 것은 분명히 흥미롭다. 이 두 가지의 흐름이 궁극적으로 「서양화의 토착화」와 「한국화의 세계화」를 가져오는 동력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 흐름이 만난 꼭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한국회화가 빚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장르 넘나들기나 탈장르의 움직임은 고정관념으로서의 서양화나 한국화를 넘어서서 회화의 새 지평을 열게 해줄지도 모른다.

 

 대구화단은 이제 새로운 도약의 문턱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서양화가들이 허황한 「서구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의 정신과 몸에 맞는 회화를 추구하고, 「실험」이라는 미명 아래 서구의 새 흐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를 넘어서서 새롭게 지반을 다지는 조짐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화가들은 우리의 전통에 맥을 대면서도 진취적인 움직임들을 다각적으로 떠올린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고정관념으로서의 한국화를 지양, 우리그림을 새롭게 일구려는 안간힘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구의 서양화단에는 새로운 미술을 이끌어내려는 창의성이나 실험의식이 강조되기보다는 안이하게 인기에 영합하고 상업주의에 젖어드는 화가들이 적지 않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상(사실)에 기울어지고, 회화의 장식성 추구에 타성이 붙어가는 화가들이 적지 않다면, 이제는 「잘 그리기」의 차원을 넘어서고 「돈 그리기」를 경계하며, 다시 새롭게 태어날 시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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