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12-11-21 15:13

킬럼-1

화해와 사랑의 회복을
이태수 | 조회 880

화해와 사랑의 회복을

 

李 太 洙 <문화부장>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환경으로 가지며, 사회는 개인의 관계와 행위를 통하여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인간이 살만한 사회는 규범과 질서가 바르게 서있고, 그 안켠에는 따스한 사랑이 흐르고 있어야 한다. 어떤 자리든 제자리에 놓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성숙돼야 하고, 가진 자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사회는 어떤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산업화가 본격화된, 화려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중병을 앓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그 병리현상은 덧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규범은 혼미해지고, 가치관이 흔들리는가 하면, 인정과 사랑은 메마르고 있다.

 

 오늘의 우리사회에는 개인적 탐욕이 냄비 속의 물처럼 끓어오를 뿐, 공공성의 개념에는 무지하거나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제자리에 놓여 최선을 다하려 하기보다는 위로만 바라보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맞서 아량을 저버리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증오심을 키우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더구나 우리사회의 무규범성은 범죄와 부패를 부르고, 악화된 사회의 규범 속에서의 좌절감을 힘의 논리에 의해 풀려고 함으로써 새로운 규범 형성의 방향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인간 사냥꾼’으로까지 비유되는 흉악범죄단 ‘지존파’의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과 인천시 세무공무원들의 거액횡령사건은 그 극단적인 예로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다. 특히 ‘부유층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가진 자만 골라 납치, 살해했다.’는 ‘지존파’의 저주에 찬 범행 동기는 우리를 경악과 분노로 전율케 했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사회병리구조를 개탄하고만 있을 수 없다.

 

 이번 사건들이 터진 뒤 사회 각계각층의 시각과 진단은 여러 갈래로 엇갈렸다. 어떤 사람은 범인 개개인의 불우한 성장과정에서 축적된 증오심을 특정사회집단, 즉 ‘오렌지족’과 ‘야타족’ 등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증폭시켰으며, 소외계층의 열등의식이 범죄심리를 부추겼다고 진단했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의 분별없는 말과 행동이 ‘힘없고 못가진 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건드리고 부추겼다고 한다.

 

 돈이 지상의 가치로 숭상되는 자본주의의 운명적인 생리현상이라는 시각도 있고, 아무리 우리사회가 병들어 있다 하더라도 ‘지존파’는 예외중의 예외이며, 툭하면 물질만능주의 풍조와 경쟁심만 가속화시키는 교육이 범죄의 온상이라는 지적은 잘못이라는 견해도 있다. 흉악범의 죄는 사회 탓으로 돌려지고, 정신이상자들의 흉포한 살인마저 자본주의 탓으로 돌려지면서 그들에게 면죄부까지 내려지는 세상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밖에 윤리․도덕, 가정.종교, 한탕주의, 윗물의 혼탁, 양심의 결핍 등 갖가지 원인과 처방이 나왔다. 모두 다 일리 있는 지적이고 진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는 일방적으로 사회를 욕하기 전에 경쟁의 규범과 공동체규범을 확립하는 문제이다. 무규범성의 지양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사회)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화해와 따스한 사랑의 회복을 바탕으로 누가 어느 자리에 놓여 있든 제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의 성숙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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