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12-11-21 15:13

킬럼-1

나무나라의 가시나무왕
이태수 | 조회 990

나무나라의 가시나무왕

 

李 太 洙 <문화부장>

 

 나무나라에는 왕이 없었다. 어느 날 나무들이 모여 궁리한 끝에 감람나무가 적격이라는데 뜻을 모았다. 감람나무는 오래 살아 경험도 많고, 몸에 품고 있는 기름으로 왕이나 선지자를 세우기도 하며, 열매나 둥치로 조각품을 만들 수도 있는 ‘봉사의 나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무들이 감람나무를 찾아가 왕이 돼 달라고 했을 때 뜻밖에도 사양했다. 감람나무는 자신의 기름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므로 어찌 그것을 저버리고 나무들 위에 요동하겠느냐고 했다.

 

 나무들은 다시 무화과나무를 왕으로 삼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찾아갔다. 이 나무도 귀하며, 그 열매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모두에게 유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역시 자신의 아름다운 열매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요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나무들은 또다시 이마를 맞대고 의견을 다각적으로 수렴, 포도나무를 찾아갔다. 그도 왕위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오.”

 

 포도나무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완강한 말에 나무들은 난처해졌다. 왕으로 적격이라고 여겨지는 나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려 할 뿐, 군림하는 자리를 마다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궁여지책으로 가시나무를 찾아가 간청했다. 가시나무는 그 말을 듣자 우쭐댔다. 심지어는 폭언을 하고, 무서운 엄포까지 불사했다.

 

 “너희가 나를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나무가시에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얼마 전 한 성직자가 들려준 이 나무나라 왕 뽑기 우화는 옛날 이스라엘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 이야기이지만 선거열풍이 불고 있는 이즈음 새삼 우리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이즈음 거리에는 4.11총선 바람이 드세다. 곳곳에 국회의원 후보들과 그들의 선거운동원들이 포진, 유권자들의 환심 사기와 자기과시, 공허한 말의 성찬을 벌이고 있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자신을 알고, 자신이 놓일 자리에서 자기 일에 충실할 때 돋보인다. 생각 나름이겠지만 이즈음 선거 분위기는 그 반대편으로 치닫는 느낌마저 준다. 자기를 뽑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그 만남이 괴로움과 역겨움으로 바뀔 때도 적지 않다. 가시나무는 어디까지나 가시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한없이 낮춤으로써 이윽고 높아진 것처럼 우리는 진정 모두를 섬기는 자세를 갖춘, 겸허한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람 됨됨이가 진실하고 겸허하며, 말보다 실천을 잘 하는 봉사자를 요구한다. 자신을 낮추는 인물,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놓일 자리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우리 손으로 선택하는 슬기는 아무리 강조돼도 지나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가시나무와 같은 인물을 뽑아서는 안 된다.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가슴을 열고, 군림하려 하기보다는 겸허하고 성실하게 우리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선량들을 선택해야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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