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6    업데이트: 23-01-25 09:13

칼럼-6

여성시인들의 봄 시——경북신문 2021. 3. 24
아트코리아 | 조회 428
여성시인들의 봄 시——경북신문 2021. 3. 24

 
 
 
 
 구영숙 시인은 봄이 오는 느낌을 이른 봄날 고향의 옛집 마당에 서 있던 매화나무를 떠올리면서 매화 같은 ‘마음의 그림’을 수묵화처럼 담밷하고 정갈하게 펼쳐낸다. 「이른 봄날」에서 시인은 화선지에 매화를 그리며 먹물 번지는 소리를 “고요한 흔들림”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수묵을 “검고 고요한 저녁 빛”으로 바라보면서 그 빛을 매화의 “붉은 꽃잎에 풀어 넣는다”거나 매화의 형상을 “동글동글 / 봄이 벌어진다”고 묘사하고 있다. 시인에게는 봄과 꽃이 간절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여전히 “우레 같은 가슴”일 따름이라 봄이 와도 기다리며 그리워한 지난날의 그 봄과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봄의 모습을 우산의 둥글음 속에 불러들여 들여다보는 김루비 시인의 「둥근 봄날 1」은 “마을에 비도 오지 않았는데”도 “암퇘지 또 배부른 집은/살구나무 우산/공소 종소리 구르는 집엔/벚나무 우산/뒤주 바닥 긁히는 집엔/자두꽃 우산/혼기 놓친 여자 저물어가는 집엔/복사꽃 우산/줄줄이 아기 울음인 집엔/앵두꽃 우산//집집마다 우산이 가득하다”고 노래한다. 꽃을 피운 나무들이 모두 둥근 형상의 우산에 비유되고, 집마다 그 우산을 쓰고 있으며,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듯이 우산들도 각양각색으로 그려져 시인의 마음자리와 우산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새겨보게 한다.
 또 새끼들을 잉태한 암퇘지(풍요), 천주교 공소의 종소리(성스러움), 양식이 떨어진 뒤주(궁핍), 노처녀(독신), 아기들의 울음소리(다산) 등이 집집의 분위기를 달리하는 바와 같이 우산도 살구나무, 벚나무, 자두꽃, 복사꽃, 앵두꽃 등으로 각양각색이다. ‘따로, 그러나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의 공통분모는 둥글음 속의 봄날이다. 시인은 그 다채로운 봄 풍경을 모두 둥글음 속에 아우른다. 둥글음은 생명의 잉태와 생명력의 근원, 생명의 마지막 단계, 완성(이룸) 등 다양한 의미를 거느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 시를 읽으면 그 묘미가 증폭된다.
 한편 강문숙 시인의 「사월 아침」은 아픈 삶을 뛰어넘어 새봄의 사물들과 세상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살아 있음의 기쁨’을 노래한다.
 
움직이지 않는 건 없습니다/시간이 흐르며 등 떠밀기 때문입니다//풀대궁에 붙어서 붕붕거리는 새끼풍뎅이/흔들리면서 자라는 명아주 잎들/돌멩이 들추면 놀란 듯 기어 나오는 쥐며느리/정적을 이겨내느라 사각거리는 공기의 입자들//숨 쉬는 모든 것들은 움직입니다/그 여린 것들이 빈터를 채웁니다/안 보이게 조금씩, 우주를 끌고 갑니다
 ―강문숙 시인의 「사월 아침」 전문

봄빛이 완연한 사월의 아침을 섬세하고 따스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시인은 “숨 쉬는 모든 것들” 중 ‘새끼풍뎅이’, ‘명아주 잎들’, ‘쥐며느리’, ‘공기의 입자들’이 열거된다. 시인은 이같이 조그마한 곤충이나 식물의 한 부분, 나아가 보이지 않는 무생물인 ‘공기의 입자들’까지 들여다보면서 움직이는(살아있는) 생명들을 노래한다.
 이 시는 첨예한 시각으로 봄의 미세한 생명력의 포착을 통해 우주로 상상력을 끌어올린 뿐 아니라 삶의 기쁨을 낮게 노래하는 ‘절제와 겸허의 마음자리’를 떠올려 보이기도 한다. 이 따스한 ‘마음의 그림’에는 절제와 긴장, 균형감각,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어우러져 있으며, 삶에 대한 긍정과 감사의 무늬들이 모든 사물을 부드럽고 넉넉한 시각으로 감싸 안고 있어 마음을 잡아끈다.
 지면 관계로 세 시인의 시만 읽어 볼 수밖에 없어 아쉽지만, 여성시인들의 봄 시들을 여러 편 읽으면서 새봄에는 생명의 절정을 구가하는 온갖 꽃들과 함께 무거운 마음을 추슬러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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