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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0

‘따뜻한 카리스마’는 요원한가
이태수 | 조회 489

<李太洙 칼럼> 42-(2006.8.1)

 

‘따뜻한 카리스마’는 요원한가

‘내 편이 아니면 敵’으로 생각 / 고위층 ‘오만과 편견’ 벗어야

 

 

우리의 문화는 원래 감성(感性)이 이성(理性)보다 앞서는 ‘따뜻한 문화’다. 냉정하고 개인주의에 기울어진 서구의 문화와는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 어찌 보면 좀 허황하고 인정에 끌려 있는 듯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면이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따뜻함이 오히려 공동체(共同體) 문화를 남다르게 키워주는 힘이 되기도 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세상은 많이 달라졌으며, 달라지고 있다. 서구 문화의 세례를 강하게 받으면서 전통적인 미덕들이 흐려지고, 이 때문에 갈등만 커지는 형국이다. 따뜻함을 밀어낸 자리에 싸늘함이 들어앉고, 인정으로 얽혀 있던 조직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利己主義)가 몸집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따뜻함이 중심에 놓인 조직이나 사회는 서로 믿고 도우려는 화해(和解)와 친화력(親和力)이 두드러진다. 평화(平和)가 그 안팎을 이루고 감싸기도 한다. 이런 공동체 안에서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힘’이라 할 수 있는 ‘따뜻한 카리스마’가 제 힘을 내고, 아래위 할 것 없이 그런 카리스마를 주고받으면서 따뜻한 울타리가 만들어진다.

‘제3의 물결’의 저자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은 한 세대 만에 제1, 2, 3의 물결을 다 이룬 나라”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과 우리 문화에서 받은 인상이 강렬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모습도, 문화의 특장(特長)들도 날로 이지러지고 허물어지는 양상은 실로 안타깝다.

일단 진화는 됐지만, 얼마 전의 포스코 사태와 현대차 파업이 안겨준 실망감은 너무 컸다. 남에 대한 배려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생각은 뒷전인 채 ‘나’와 ‘우리’만 내세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얼마나 큰 손실과 상처를 안겨줬던가. 우리의 ‘따듯한 문화’도, ‘따뜻한 카리스마’도 온데간데없어져 버린 듯했다.

포스코 사태를 보면서는 이 나라가 정녕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더라도 제어장치마저 마비돼 버렸는지,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가 이같이 ‘너 죽고 나 살자’로 간다면 앞이 보일 리 없다. 특히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현대차의 파업은 이번에도 역시 ‘놀고, 돈을 더 받게 되는’ 한바탕 ‘놀음판’을 방불케 하지 않았던가. 이제라도 반드시 노(勞)가 바뀌어야 하고, 사(使)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더욱 절실한 문제는 도덕성(道德性) 회복을 축으로 ‘윗물’부터 맑아져야 하며, 왜곡된 가치관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약육강식의 저급한 논리에 휘말려 모든 인간관계를 투쟁관계로 인식하는가 하면, 세상은 제자리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조선조의 절정기였던 정조(正祖) 시대의 태평성대(太平聖代)는 ‘군민동락(君民同樂)’과 ‘대동사회(大同社會)’가 키워드였다. 그 전통은 연면히 이어져 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명분은 핑계로, 의리는 깡패사회의 용어로, 선비의 기개인 사기(士氣)는 군대용어로 전락할 정도로 그 뿌리가 흔들려 왔다. 그러나 그런 전통이 국민 정서에서 완전히 밀려나지는 않았다고 봐야 한다. 오늘의 정치판에 좌절감과 허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 정치권을 보라. 비일비재(非一非再)인 구체적 사례들을 들지 않더라도, ‘이전투구(泥田鬪狗)’라는 말마저 무색해진다. 철저하게 ‘내 편, 네 편’이며, ‘내 편이 아니면 적(敵)’이다. 특히 힘을 받고 있는 편이나 그 편의 고위층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가. 오만과 편견과 ‘막무가내 제 길 가기’로 비판이나 쓴소리, 민심(民心)까지도 ‘쇠귀에 경 읽기’가 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복고적인 발상일는지 모르겠으나, 선조들의 ‘덕화(德化)’의 통치술이 그립다. 통치자와 집권층이 휴머니즘 정신으로 백성과 친화적 관계를 강화하면서 사랑과 베풂, 절제의 모범을 보일 수는 없을까. 엄정한 법질서와 그 집행의 자세도 확고히 하고, 보통사람들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따뜻한 문화’ ‘따뜻한 카리스마’를 회복하는 ‘방향 전환’은 정녕 불가능하기만 한 일일까.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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