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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0

기리고 기다려지는 ‘또 다른 光復’
이태수 | 조회 455

<李太洙 칼럼> 43-(2006.8.15)

기리고 기다려지는 ‘또 다른 光復’

 

위협적 기상 異變․나라 장래 / 그림자․逆風 굳건히 극복을

 

 

큰비, 큰가뭄, 찜통더위 등의 기상 이변(異變)이 빈발하는 이 지구촌도, 우리나라도 재앙(災殃) 앞에 노출돼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올 들어서도 그 참상은 가히 가공할 만했다. 이 같은 인류 생존의 큰 위협 요인들은 사상 유례없는 이변들을 빚는가 하면, 여전히 공포의 대상으로 우리를 옥죄고 있는 형편이다.

재앙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과연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자탄에 빠지곤 했다. 더구나 인간이 바로 그 주범이라는 ‘지구 온난화(溫暖化)현상’ 앞에서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기상재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만도 연간 7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요즘은 온 나라가 전시작전통제권(戰時作戰統制權) 환수 문제를 싸고 더 이상 시끄러울 수 없을 지경이다. 많은 논의가 있었고, 지금도 한창 논란 중이므로 새삼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스스로 큰 재앙을 부르는’ 것 같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는 점은 말하지 않고 넘길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정부의 희망사항대로 간다면 향후 5년간 151조 원, 자주국방(自主國防) 성취까지는 621조 원이나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뜩이나 민생(民生) 문제로 지칠 대로 지친 우리가 그 돈을 떠올리면 ‘미증유의 재앙’에 진배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있겠는가. 안보(安保) 불안을 넘어 나라의 장래에 대한 위협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고위층 부패(腐敗)와 위조지폐 제조 등을 겨냥해 ‘도둑체제(kleptocracy)'라는 용어를 동원해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그와의 싸움을 선언했었다. 이 같은 인식의 바탕에는 그 돈들이 테러 자금과 대량 살상무기 개발 자금 조성의 흐름을 돕는 결과를 부른다는 논리가 깔려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향토 출신 젊은 작가 김영하의 신작 소설 ‘빛의 제국’이 강한 조명을 받고 있다. 남파(南派)된 지 20년이 넘은 간첩과 그의 가족들의 긴박한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자본주의의 소시민으로 바꿔져 버릴 만큼 ‘잊힌 스파이’에게 돌연 귀환 명령이 떨어져 ‘선택의 미로’를 헤매는 기괴한 세상 속의 비루한 인생을 다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이제 입에 오르내린 지조차 오랜 ‘간첩’이라는 낱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돼 버린 현실을 아프도록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 리뷰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그(소설 ‘빛의 제국’ 주인공)는 운명을 잊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일깨움은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우리는 뜨겁게 달아올랐다가도 쉬이 식어 버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민족성(民族性)을 ‘은근과 끈기’라고 규정했던 걸 ‘무효’라고 했다. ‘냄비 근성’이라고 비하되는 사례도 보아 왔다. ‘생각한 대로 살려고’ 하기보다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 데 너무나 쉽게 길들여져 버렸다면 지나친 말일까.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좌우익(左右翼)으로 갈라져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방불케 했던 ‘해방 공간’이 옛일 같잖다. 어쩌면 그보다 더 두렵다는 느낌까지 안 지워진다.

“국가의 진로에 때로는 그늘이 지고 역풍이 몰아치는 수도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더욱 원칙을 굳게 지켜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데 힘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 법복(法服)을 벗은 권성 헌법재판관이 퇴임 때 한 말이다. 판결 때마다 원칙을 꼿꼿하게 지키는 ‘소수 의견’으로 주목받던 그가 헌재(憲裁)의 역할에 대해 피력한 소신이나, 지금 상황의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警告)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음력 칠월이 두 번인 올해의 무더위는 유난스럽다. 잠을 천장에 매다는 듯한 열대야(熱帶夜)도 그렇다. 나라 돌아가는 모습은 그보다도 훨씬 더한 ‘찜통’ 같다. 광복절을 맞으며 ‘빛의 제국’ 주인공이 받은 메시지와는 사뭇 다르게 희망을 안겨주는 ‘또 다른 광복(光復)’의 메시지들을 간절히 기리고 기다려보게 된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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